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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셜록 홈즈의 세계 |  | |
| 홈즈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1900년에서부터 지금까지 셜록 홈즈는 2백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는 천 번 넘게 나왔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을 제치고 부동의 1위로 기네스북에 기록된 캐릭터로 무수한 패러디와 모작들을 낳았으며, 전세계적으로 1천여 개의 셜록 홈즈 연구 모임이 존재한다. 셜록 홈즈. 뭐라고 곁가지를 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다 여의치 않다. 고작 명탐정이라는 흔한 수식어밖에는 떠오르질 않으니. ‘명탐정 셜록 홈즈’. 그러고 보니 완벽한 문장 아닌가.
셜록 홈즈 전집을 다 읽었더라도 잘난척은 잠시 미뤄두길 바란다. 그에 대한 찬양도 이 책을 읽은 후에 하길 당부한다. 「셜록 홈즈의 세계」를 읽기 전에는 셜록 홈즈를 안다고 말하지 마라! 이 책은 작가 코난 도일의 생애와 홈즈와 왓슨의 연대기는 물론, 56편의 단편과 4편의 장편에 근거해 홈즈가 만난 적수와 범죄자들, 사건을 해결했던 역사적 배경 등 조사할 수 있는 자료는 샅샅이 뒤져 기록해두었다. 런던 경찰청, 미국의 범죄 조직들, 범죄 소설의 양상들까지 영화 스틸컷과 초판본의 삽화 등 풍부한 사진 자료들을 곁들여 서술하고 있어 홈즈 백과사전이라해도 무방할 정도다.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거지만 셜록 홈즈가 젠틀맨이었다는 환상은 여지없이 깨진다. 그는 의뢰가 떨어지면 몇 일이고 날밤을 까며 거기에 집착하지만 사건이 없을 때는 권태로움을 이기기 위해 코카인을 즐겼다. 멍청하고 둔한 이미지의 왓슨은 사실은 근육질의 만능스포츠맨이었으며 너그러운 심성의 소유자였다는 것도 새로이 알게 된다. 이 둘을 창조한 작가 코난 도일은 홈즈와 왓슨의 모습이 적절히 섞여 있었다. 책에서는 의사에서 탐정 소설 작가로 전환하는 여정과 실제 범죄 사건에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피력해 억울한 자의 누명을 벗겨주기도 한 일화가 소개되기도 한다.
홈즈의 심볼이 된 모자, 외투, 담배 파이프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도 풀린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홈즈의 탐정술을 논하며 현대의 수사법과의 유사점을 찾는 장이다. 법의학 실험실이 홈즈의 거실보다 더 정교하다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홈즈에게는 분명 그만의 효과적인 추리 기술이 있다. 홈즈의 추리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재미있는 홈즈의 추리여행」가 있다. 홈즈의 추리 방법을 인용해서 가설과 추론의 일반적인 논리를 설명하며 홈즈의 추리 비법을 분석하고 있다.
홈즈 이전에는 범죄 소설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탐정 소설이라는 장르를 확고부동하게 확립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추리, 범죄, 탐정물 중에는 셜록 홈즈의 영향권에 걸리지 않는 작품이 드물 정도다. 이안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는 홈즈의 후계자이고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은 대부분 그의 적자다.
「셜록 홈즈의 세계」에 대한 치사를 저자인 마틴 피도 혼자에게만 돌려서는 안될 노릇이다. 이건 셜로키언들이 없었다면 절대 존재할 수 없었을 책이니까 말이다. 은공은 그들의 몫이다. 셜록 홈즈의 세계를 구축한 숨은 실력자들인 셜로키언. 그들은 전세계적으로 흩어져 있고 다양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이 홈즈에 빠진 이유는 제각각일지라도 셜록 홈즈를 향유하는 것만은 만국 공통일 것이다. 이들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코난 도일의 부주의함(연도표시의 오류나 왓슨의 결혼 횟수 등)에 개의치 않는다. 셜로키언들은 홈즈와 왓슨을 실존 인물로 보고 작품을 근거로 삼아 그들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 부담없고 재미있는 셜로키언 놀이는 70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가능한 많은 판본을 사들이고 논문을 발표하고 잡지를 발행하며, 기발한 홈즈 전기를 펴내고 주석판을 내기도 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가 무언가에 열광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령 009의 심리에 묘하게 전이된다거나, 나처럼 쥘 베른의 동굴에 빠져 나이가 먹도록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상의 것을 불멸로 만드는 마음. 홈즈의 경우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진짜 명성이라는 거는 광고나 상업적인 성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펩시 광고를 타고 다녔던 스파이더맨의 유명세는 홈즈에 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도 셜록 홈즈의 비서는 매주 스무 통에서 마흔 통에 이르는 편지를 받고 있고 발렌타인 데이나 크리스마스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의 카드가 세계 각지에서 날라온다고 한다. 홈즈의 명성은 지금 이 시간에도 불멸을 향해 가고 있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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