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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탄의 미녀 |  | |
| 아, 나는 하는 일마다 잘된다니까!
미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다는(물론 최근의 스티븐 킹만큼 읽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티븐 킹 이전에는 가장 대중적인 작가였던)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이 우리나라에 소개된지도 꽤 되었다. 몇몇 비메이저 출판사에서 선구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계약도 없이 출판했다가 자취를 감추곤 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보네거트의 팬들은 잽싸게 책을 사들여야 했다. 이렇게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은 우리에게 철저하게 비대중적인 소설이다. 소수의 광팬을 거느린, 풍자와 블랙코미디로 무장한 컬트소설인 것이다.
유머는 코드가 맞지 않으면 함께 웃기가 힘들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네커트의 유머가 바로 그렇다. 그의 유머는 지나치게 미래적이고 과학철학적이며, 그래서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이다. 적당한 지적냉소주의에서 역사와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데 익숙한 독자가 아니라면 그의 소설은 한마디로 ‘어처구니없음’으로 다가온다.
보네거트는 존 바스, 도날드 바셀미 등 미국 포스트모던 작가로 분류되는데, 포스트모던한 작가들이 그렇듯이 지식의 종언을 선언한 리오타르가 무색하게 현학적인 면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그조차도 지식에 대한 조롱, 인간정신의 나약함에 대한 조롱이다. 그래서 보네거트의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카프카를 떠올리며, 밀란 쿤데라가 정의했듯이 ‘카프카적 상황’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인간 조건에 대한 탐색을 극한에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라 느끼게 된다.
카프카적 상황이란 영문을 모른 채 소환을 당하는 것,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미로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것 등등을 말한다. 이것이 카프카적 상황으로서의 인간의 삶이다. 그 상황은 삶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지만, 보네거트는 그런 삶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도 발버둥치는 인간들을 조롱하고 마침내 그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웃을 수 있게 만든다. 하기야 카프카도 자신의 소설을 쓰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하니까, 카프카야말로 포스트모던 작가일 것이다.
그러므로 카프카를 읽고서 낄낄거리며 웃었던 독자라면 분명 보네거트가 마음에 들것이다. 혹은 이미 카프카를 읽었기 때문에 보네거트의 유머가 카프카의 뒷북을 울리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네거트는 카프카보다 더 SF적(카프카의 소설은 다분히 SF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이고 더 웃긴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커트 보네거트에 대해 말하는 것은 ‘개똥’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을 개똥이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플레이보이: 당신 책 중에서는 시간의 모든 순간들은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야릇한 시간관을 보여 주는 것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어떤 의지가 담긴 행위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지요. 세상을 개선하겠다는 의지와 이런 시간관은 잘 맞지 않는 것이 아닙니까? 보네거트: 이걸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 다 개똥이라구요. 플레이보이: 그야 물론이죠.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1973년)
그러나 똥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악취미이긴 하지만 즐겁다. 우리가 똥에 대해 말할 때 우리의 뇌는 배설의 쾌감을 상기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타이탄의 미녀」(원제 : The Sirens of Titan, 이강훈 옮김, 금문)는 94년에 새와물고기에서 나왔던 《저 위의 누군가가 날 좋아하나봐》(노정혁 옮김)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적이 있던 소설이다. 2001년에 「자동 피아노」, 「챔피온들의 아침식사」 등을 출판했던 금문에서 보네거트의 소설을 조금씩 다시 찍고 있는 것이라 봐도 될까. 1959년에 발표된 이 소설이 바로 보네거트를 일약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그 소설이란다.
「고양이 요람」(새와물고기)이라는 그의 다른 소설의 가장 앞장에는 “용기와 품격이 있는 남자, 케네쓰 리타워를 위해서”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다음 장을 넘기면 당신은 웃고야 만다. “이 책에 담긴 모든 것은 거짓이다.”라고 써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첫 장에서 당신이 웃지 않았다면 그 다음 장을 넘겨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웃었다면, 그의 소설을 단숨에 읽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라. 간혹 중간에서 형이상학적인 유머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타이탄의 미녀」, 이 소설은 철저하게 카프카적 상황을 뒤집는다. 카프카의 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뭘 해도 재수가 없고 거기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나쁜 상황에 빠지는 인물들이다. 보네거트의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뭘 해도 재수가 좋은 놈들이다. 노엘 칸스턴트가 대표적이다. 그는 수표책 한 권과 성경 한 권으로 사업을 일구고 갑부가 되었다. 그의 돈버는 시스템은 이런 것이다. 우선 성경 창세기의 첫 문장을 읽고서 그것을 알파벳으로 하나씩 분해한 뒤 그 알파벳의 머릿글자를 가진 회사들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결과는 카프카적 상황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낙원에 도달하지만, 결코 그것을 원한다고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그저 저 위의 누군가가 좋아할 뿐이고, 우리는 똥 덩어리다.
이 소설의 원작에는 ‘인간이 가진 궁극적인 의문을 제기할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고자 한 소설’이라고 표지에 써있다고 한다. 물론 보네거트식 농담이다. 이런 것에 속아서 이 소설을 빼드는 일은 없기를.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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