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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기억
무섭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자정 무렵이었고, 「붉은기억」이라는 맨 앞에 있는 단편소설 하나를 읽었을 때는, 이미 시간은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만큼 나는 중간 중간 이 책을 덮었다 다시 읽었다를 반복했던 것이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추리소설, 공포소설이라는 타이틀만으로 겁먹은 소설은 이제껏 없었다. 그러나, ‘일본’ 공포소설이나, ‘일본’ 공포영화는 은근히 무서운 것이 사실이었기에,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내용을 채 읽기도 전에, 나는 어쩌면 무서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이 소설은 소름 돋는 이야기들이었다. 까맣게 잊혀졌던 기억, 기억 속에서 새로운 기억으로 뒤틀린 기억, 자신도 어쩌지 못할 만큼 충격적인 기억, 결국은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서 정신이상자로 만들었던 기억,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의 뱃속에서 탯줄로만 느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살갗기억. 이 모든 기억들이 소름끼치도록 생생하게 다가왔다.

기억이라는 테마로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다니, 놀랍기만 했다. 아무런 굴곡 없이 시작되던 스토리들이 어떤 작은 실마리 하나를 깃점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곳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그 흐름은 참으로 으스스했다. 보통의 추리소설처럼 어떠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추리도 필요 없었다. 보통의 공포소설처럼 어떠한 괴물의 등장을 기대할 것도 아니었다. 주인공의 기억이 추리의 전부였고, 주인공의 기억속이 온통 괴물이었다.

이 소설들을 한 번 더 빛내주는 부분은 결말 부분이었다. 잊고 싶은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 강간, 질투들의 한 가지 이유는 ‘사랑했기 때문에’였다. 사랑만큼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잔혹한 범죄자이기도 한 소설 속 인물들이 이토록 가엾게 여겨지는 것도 아마 사랑의 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섭고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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