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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이토록 많은 것을 잃어버렸으니……
그리운 것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쉬운 것은 서서히 그 흔적을 지워 가는 것이라 해야 할까.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분명 어딘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하고야 말 것, 소멸을 전제로 한 존재. 그러므로 아쉬운 것은 곧 안타까운 것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것과 머지 않아 사라질 것들을 담아낸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은 아쉬움과 그리움이 야트막하게 숨쉬고 있는 책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해보자고 타박타박 길을 나선 세 사람은 길을 나선 지 6년 만에 잊혀져 가는 사물과 사람의 풍경들을 담아냈다. 봄에는 봄나물 캐는 아낙네와 다랑논과 구들장논 등이, 여름에는 비 맞은 농심을 감싸주던 도롱이, 뱃사공과 줄나룻배가, 가을에는 두메산골 농부의 파대치기, 맷돌과 확독 등이, 겨울에는 두메산골 아이들의 얼음배타기, 고콜과 화티 따위가 잊혀진 것들을 대표한다.

모두 220 컷의 사진에 담긴 풍경과 사물들은 농촌 깊숙한 곳에서나 가까스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나마 어떤 것들은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자취를 감춘 것도 있다. 사라진 것은 사물들만이 아니다. 사진 속에서 부젓가락으로 화롯불을 뒤적이고 있는 할아버지, 부엌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있는 할머니는 이미 몇 년 전에 세상을 떴다. 당신들이 소중히 여기던 옛것들과 수명을 같이 한 셈이다.

˝산비알 뙈기밭이라고 그냥 묵힐 수야 없지, 밭은 한번 묵으면 그냥 풀밭 되는 거여.˝
기껏해야 마당보다도 작고 봉당보다는 쬐끔 큰 밭이건만, 할머니 허위허위 뙈기밭에 와서는 잡풀 숭숭한 밭고랑에 호미질을 퍽퍽. 입학식날 처음 줄 서는 아이들처럼 삐뚤빼뚤한 고랑 구덩이마다 깜장콩알 뿌려놓고, 종다래끼보다 낡은 광목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 훔치신다. (p.32)

시인 이용한의 구성진 글은 사진과 더불어 읽는 맛을 더한다. 시르락시르락, 철벅철벅, 호롱호롱, 타닥타닥, 쩌렁쩌렁 등 우리말의 장단과 호흡을 잘도 살려냈다. 자연스런 우리네 몸동작에서 나왔을 이런 의성어들 역시 옛것을 아끼고 보듬는 시인의 입이 아니면 영 잊혀지고 말 것들이다.

허리춤에 차고 씨앗을 뿌리던 종다래끼, 지친 농부를 태우고 세월아 네월아 걸어가던 소달구지, 화로, 똥돼지간, 성주와 성주단지 …. 이토록 많은 것을 잃어버렸으니(혹은 잃어버릴 테니) 남아 있는 우리 삶은 얼마나 남루한가. 책의 뒤표지에는 크기와 모양이 서로 다른 다섯 개의 바가지가 콩, 팥, 동부, 깨, 고추씨 따위를 한 움큼씩 담은 채 옹기종기 놓여 있다. 초가집이 사라졌으니 박도, 바가지도 이제 흘러간 풍경에 지나지 않을 터. 사라지는 것들은 예고가 없다. (이현희 imago@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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