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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중인격 |  | |
| 고통 속에서 출몰하는 ´수많은 나´들, 끔찍하지만 끌어안아야 할
´다중인격´이란 말 그대로 여러 개의 인격이 한 몸 안에 있는 걸 의미한다. 원인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정서적·신체적인 폭행, 특히 성폭행 때문이라는 데 많은 정신과 전문의들이 동의하고 있다. 1994년 미국 정신병학 협회에선 그 동안 다중인격 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로 알려진 병명을 해리성 정체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로 바꾸었다. 그리고 해리성 정체 장애를 앓는 환자의 90%가 여성으로 확인됐다.
「다중인격」은 그러나 여자가 아닌 남자의 이야기다. 글쓴이 캐머론 웨스트는 다중인격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적 증상들에 관한 논문으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겪는 다중인격 장애를 극복하려고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 책은 캐머론 스스로가 겪은 다중인격 장애의 구체적인 양상들을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엮은 논픽션이다. 히치콕 류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이 전편에 물씬 넘치지만, 단순히 흥미 위주로 이 책을 읽었다간 사후에 밀려들 엄청난 혼돈과 불안감에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을지도 모른다. 캐머론은 24개나 되는 자신의 분열된 자아들을 일일이 탐색하고 그 존재들의 출몰 원인을 꼼꼼히 체크해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썼다. 그건 캐머론 스스로가 자신에게 가하는 가혹하지만 엄정한 자기시술이다.
이 책은 캐머론이 〈친구들〉이라 표현한 24개의 인격체들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그 몇몇을 소개하면 이렇다.
소울
일찍이 나타난 인물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내게 버티고 살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지금도 그의 존재가 느껴지지만, 치료중에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
와이어트
명석한 두뇌를 가진 10세 소년으로 자주 나오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사물의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을 즐기고, 사람들에게 말붙이기를 좋아한다. 건들거리면서 왔다갔다할 뿐 아니라, 수를 세거나 도형과 패턴을 공부하는 등 쉴새없이 움직인다. 와이어트는 특히 낱말을 좋아해서 독특한 방식으로 사물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페어
점잖고 영적인 존재. 시인이며 마술가로, 인격체들이 균형 잡히고 자연스런 힘들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한 마디로 평화와 안식 그 자체다. 핵심 그룹의 일원인 페어는 우리를 자기 품에 가만히 안아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인격체 모두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나이대에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지닌 ‘또다른 자아’들이 캐머론의 일상에 불쑥불쑥 침범해 들어온다. 아내와 성행위를 하는 도중 튀어나와 “싫어!”라고 외치는 어린 인격체가 있는가 하면, 어린 아들과 음식을 만들거나 함께 놀아줄 때 그의 안에 있는 다른 인격체들이 출몰해 아들을 놀라게 한 일도 있다. 때문의 캐머론의 아내는 ‘다중인격 장애자의 배우자 모임’에 나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조언을 듣기도 하고,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심리치료사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해리성 정체 장애 증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고통을 앓는 당사자가 스스로의 다중인격을 부정하려는 데 있다고 캐머론은 말한다. 그는 그것을 ‘부정의 칼날’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제게 가장 나쁜 게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카일이 아빠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 리키가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또는 정신 병원에 다시 가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칼날입니다. 저는 그것을 ‘부정의 칼날’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제 몸 위를 지나갑니다. 다섯 살이 되기 전부터 깨어 있는 시간이나 잠든 시간이나 늘 그것에 시달렸습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부정하는 것,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을 부정하는 것, 내가 다중 인격 장애자임을 부정하는 것…….˝ (414쪽)
이런 신랄하고도 절박한 문장이 나오기까지 캐머론이 얼마나 심한 고통 속에서 분열된 자아들과 대치하고 싸워왔을 지를 상상해보라. 그건 고통의 깊숙한 곳까지 스스로의 칼날을 헤집어 균열된 자아의 원형들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끔찍하지만, 고통을 앓고 있는 그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먼저 긍정하고 끌어안아야 할 고통의 근원이 바로 거기에 있다. 자신이 다중인격 장애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그가 가진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사실. 캐머론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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