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서재 결혼 시키기(양장) |  | |
| 책 읽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
책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역시 책을 사랑하는 부모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글자놀이, 말놀이, 책놀이를 즐기던 그녀는 자신만큼이나 책을 좋아하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결혼한 지 5년. 그 사이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커피잔, 음반, 심지어 양말까지 공유했으나 아직 그들 사이에는 남남인 것이 있었다. 바로 책이다. 남편의 서가와 아내의 서가가 분리된 상태였던 것. 그러나 ´완벽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그녀와 남편은 서재를 결혼시키기로(다시 말해, 합치기로) 하였다 한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유난히 책을 사랑하는 그녀, 앤 패디먼이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발행하는「시빌리제이션(Civilization)」지에 ´평범한 독자의 고백´이라는 고정 칼럼으로 연재한 것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던 글들이다. 책을 사랑하는 그녀라고 해서 두꺼운 안경을 쓴 채 현학적 허영심에 빠져 지적 우월성을 늘어놓을 것이란 오해는 절대 금물이다. 책꽂이 이야기, 레스토랑에 가면 우선 메뉴판의 오자를 찾아내는 식구들에 관한 우스운 이야기, 그녀에게 처음으로 성적 짜릿함을 느끼게 했던 소설책과 그 책의 귀퉁이에 적어놓은 몇 마디 감탄사에 대한 이야기 등은 경쾌하면서 재미있다. 한 마디로 이 책에 실린 18편의 독서 에세이는 해박하면서도 즐겁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정작 내가 이 책을 출퇴근 시간, 그리고 퇴근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꼬박 이틀에 걸쳐 정독하고, 그러고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자꾸 뒤적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첫 번째 독서를 통해서 이 책이 한 애서가(愛書家)의 독서편력에 관한 것임을 정의했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그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되었다면, 그 후 두 번, 세 번 틈틈이 지속되는 독서의 반복은 ´책에 대한 책´을 읽는 재미에 바쳐졌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다른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도 꽤 유용한 정보의 보고이다. 가령,
3월 17일, 오츠는 동상에 괴저까지 걸린 두 발 때문에 다른 대원들마저 지체된다는 것을 깨닫고 극 지방 탐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씩씩한 말을 했다. ˝밖에 좀 나갔다 올 텐데,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소.˝ 그는 비틀거리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텐트 밖으로 나가더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날은 그의 서른 두 번째 생일이었다. (p.48)
와 같은 구절에서는 아문젠보다 34일 늦게 남극에 도착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한 남극 탐험가 ´스콧´ 일행의 남극 탐험기를 뒤적이게 만든다. 뿐만 아니다.
˝정말로 책을 사랑하던 때가 있다. 책이 쉰 살을 넘기만 하면 그 모습과 냄새와 촉감이 무척 좋았다. 시골 경매장에서 1실링을 주고 책을 떨이로 사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다. 그러나 책방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책을 사지 않게 되었다. 책을 한번에 5천 권이나 만권씩 덩어리로 보게 되자, 책이 지겨워지고 심지어 약간 역겨워지기도 했다.˝(p.207)
´동물 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의 글을 인용해 놓은 위의 구절에 가서는 새삼 고등학교 때 읽은 이 작가의 소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지고, 시간과 여력만 있다면 책이 지겨워 지기 시작했다던 그 시점에 쓴 작품과 이전의 작품을 놓고 신랄하게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이 책의 표제 ´Ex Libris´는 책 소유자의 이름이나 문장을 넣어 책표지 안쪽에 붙이는 장서표라는 뜻의 라틴어. 짐작컨대, 책을 사랑하고, 진정 어린 마음으로 책과 함께 뒹굴 줄 아는 그녀에게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Ex Libris´가 있을 터. 우리에겐 과연 몇 개나 있을까? (이현희 imago@libro.co.kr/리브로)
by www.libro.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