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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과 오른손
난 왼손잡이야!
“나를 봐 내 작은 모습을/ 너는 언제든지 웃을 수 있니/ 너라도 날보고 한 번쯤/ 그냥 모른 척 해줄 순 없겠니// 하지만 때론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가 똑 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패닉 1집, <왼손잡이>)
‘왼손잡이’라는 말은 써도 ‘오른손잡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왼손잡이라는 말에는 이미 비정상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룹 패닉의 노래 가사처럼 그들이 세상을 망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왼손 사용을 경계하고 터부시할까. 왼손잡이가 장애인이나 동성애자만큼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정상적이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언제부터 왼손 쓰는 것을 터부시 하게 되었을까. 아니 왜 사람들은 양손이나 왼손이 아니라, 오른손을 주로 쓰게 되었을까.

사실 왼손과 오른손의 사용은 인류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문제임에도, 막상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거의 없다. 왼손잡이는 세상을 사는 데 불편할 것이라는 막연한 경험론이나 왼쪽은 불길하다는 속신(俗信)만이 난무할 뿐이다. 역사 민속학자 주강현의「왼손과 오른손」은 이렇듯 상식의 수준에서 맴돌던 왼손과 오른손의 문제를 인류 문화사의 필터로 걸러낸 지식의 담론체계 안으로 끌어들인다.

저자는 우선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의 구분이 진화론이나 유전학적 관점에서 100% 설명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출생 비율이 대략 9 : 1 정도 되지만, 21세기에 들어 왼손잡이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만약 그것이 전적으로 유전적 문제라면 그렇게 갑자기 증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오른손 우세손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 역사에서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오히려 왼손잡이가 교육과 통제에 의해 오른손잡이로 전환하는 과정, 즉 양쪽의 ‘유동성’에 관심을 갖는다. 그것의 전환 과정에 바로 인류 문화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다.

이 책은 왼손과 오른손이라는 주제 풀이를 위해 다양한 학제간 연대를 추구한다. 고고민속학, 역사민속학, 도상학, 그리고 지리학에서 공간과 장소, 아동교육학에서 왼손잡이 문제, 미술사의 좌우대칭, 건축학적 공간 개념, 유전학과 진화론의 연관성, 복식사에서 패선의 양상, 언어학상의 의미, 종교학에서의 성속 구분, 철학에서의 음양오행, 한의학에서 몸에 대한 남좌여우(男左女右)의 양상, 문화적 통제와 헤게모니, 정치학적 좌우 논쟁, 좌우 도형의 문화 상징 등이 바로 그 재료들이다.

특히, 저자는 왼손과 오른손의 문제가, 끊임없이 좌우대칭과 분할, 방향설정을 통해 편향된 인류 문화사를 만들어 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 동쪽과 서쪽, 인문과 자연, 문인과 무인, 낮과 밤, 심지어 정치적으로 좌파와 우파라는 인류 문화의 도처에서 발견되는 이항대립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구별 짓기’와 ‘짝짓기’가 교묘하게 결합된 인류 문화의 힘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강요한다. 중간이란 있을 수 없다. 결국 소수의 왼손잡이를 택한 사람들에게는 ‘희생양’ 딱지가 붙게 되고, 일단 왼손잡이가 희생양으로 선택되면 종교적 금기로 묶여지며, 터부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이런 전통을 ‘민속전통’으로 명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왼손의 문화사를 통해 우리들이 감지해야 할 것은 “마이너리티에 대한 재인식,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에 대한 접근이며, 단지 왼손의 문화사 자체만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마이너리티 문화 전반에 대한 새로운 인식(p.33)”인 것이다. 이런 인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편가르기와 패거리 문화, 중앙과 지방, 영남과 호남, 재조와 재야, 승자와 패자, 여성과 남성,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 남과 북, 전쟁과 평화, 예수 천당과 불신 지옥, 삶과 죽음, 신과 인간, 빛과 어둠의 이항대립을 뛰어넘는 변증의 지평을 꿈꾼다. 그것은 ‘천지가 나와 한 뿌리이며(天地與我同根) 만물이 나와 한 몸이다(萬物與我同體)’라는 민속 전통의 세계관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박정철/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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