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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무질서한 것이 좋다 |  | |
| 유쾌한 행복은 탈선, 미친 짓, 무질서에 있다
재미있고 유쾌한 책이다. 약간은 위악적인 제목이 재미를 암시하는 루치아노 데 크레센초의 《나는 무질서한 것이 좋다》(정경옥 옮김, 한길사)는 모두 18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졌는데 하나하나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어, ‘컴퓨터 속의 무질서’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컴퓨터는 질서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인데 컴퓨터 바이러스는 이 완벽한 질서를 파괴하는 무질서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 프로그램 판매자에 대해서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최근에 내 컴퓨터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 집에 온 기술자들도 내 컴퓨터가 갖고 있는 바이러스 수를 정확히 검사하지는 않았다. 내 생각에 먼저 그들은 ‘17일 금요일’이라 이름 붙인 바이러스를 내 컴퓨터에서 떼어내고 하느님만이 언제 폭발할지 알고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더 야비한 다른 바이러스를 내 컴퓨터 안에 넣어놓았다.” 이쯤 되면 이 책이 단순히 유쾌하거나 재미있는 책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글쓴이는 한때 IBM 이탈리아 책임경영자였다.
질서와 무질서로 대비되는 두 세계를 글쓴이는 넘나든다. 우리는 흔히 질서의 세계가 좋은 것이라 믿는데 과연 그런 것인가 묻는다. 글쓴이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행복과 기쁨은 오히려 무질서의 세계에 있다. 이를 예증하기 위해 글쓴이는 이 책을 쓴 것이다. 글쓴이는 “행복을 살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기다림을 보상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것, 탈선, 미친 짓, 무질서 등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글쓴이가 질서의 세계를 버리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질서의 세계 없이는 무질서의 세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글쓴이는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우리에게 무질서가 주는 행복을 누리라고 유혹한다.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 한 줄기에 꽤 많은 가시가 난다. 우리는 장미 한 줄기에 대략 몇 개의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몇 개의 가시가 어느 곳에 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런 세계가 복잡성의 세계다. 주사위를 굴리면 무엇이 나올지 정해져 있는 세계가 질서의 세계이고 예측할 수 없는 기후가 혼돈의 세계라면 우리는 질서와 혼돈의 복합체인 복잡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는 사실 복잡성의 세계이다. 처음 에피소드에 등장한 복권도 복잡성의 한 예이지 무질서의 예는 아니다. 즉 누군가 당첨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누가 당첨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확한 지식의 결여로 이 책은 조금 치기 어려 보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으랴! 읽어서 행복하고 유쾌해질 수 있다면! (탁석산/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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