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히말라야 설인 |  | |
| 인간의 삶과 함께 살아가는 전설, 예티
˝상당히 오래 전의 이야기인데, 드레모(카라코룸 지역에서 부르는 예티의 다른 이름)가 후쉐 마을에 사는 한 처녀를 동굴로 납치해서 동굴 속에 가둬놓고 살았대요. 그녀의 오빠들이 사방을 헤매며 동생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 개가 산 속을 헤매다가 동굴 속에 있는 그 처녀를 찾아냈어요.(...) 오빠들은 얼른 개를 앞세우고 다시 동굴을 찾아 나섰고, 결국 동굴 속에 있는 동생을 만났어요. 그리고 동생을 데려가려고 했죠. 그런데 시간이 벌써 6, 7년이 지난데다가, 그 사이 동생은 예티 아이를 두 명이나 낳고 기르고 있더래요......˝ (p.329)
이것은 1997년 카라코룸(Karakorum) 산맥에서 발티스탄 출신의 한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그렇다고 신도 외계인도 아닌 정체 모를 생명체가 지구상에 버젓이 살고 있다는 이 뜬금없는 이야기는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불과한 것일까?
이 책은 설인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2만 킬로미터나 되는 아시아 대륙의 산악지대를 횡단한 한 산악인의 이야기이다. 2미터가 넘는 키에 온 몸은 털로 뒤덥힌 괴물, 네안데르탈인의 후예다, 단순한 동물이다, 히말라야의 은자다 등 상상과 신비의 영역 속에 꼭꼭 숨은 채 온갖 추측과 소문만을 남긴 예티. 최고의 산악인이자 오지탐험가로 알려진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가 그를 찾기 위해 오지 히말라야를 직접 발로 뛴 12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메스너가 예티와, 아니 예티라고 추정되는 뭔지 모를 물체와 맞닥뜨리는 것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마치 흥미진진한 탐험소설의 클라이막스를 보듯, 첫 장부터 호기심과 긴장의 고삐를 바투 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설인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나선 단순한 탐험 기행기와는 다르다. 2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대장정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횡당한 메스너는 인간이 원하는 대로 자연을 찢어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맞출 줄 아는 현명함을 보여준다. 그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삐뚤어진 신념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산악인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아름다운 정신은 이 책을 탐험기와는 다른 무엇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인내와 의지의 세월, 12년이 마침내 내놓은 결과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온갖 억측과 호기심의 주인공 예티는 그저 히말라야에 서식하는 독특한 형태의 곰일 뿐이었다. 결말을 이렇게 미리 말해주면 너무 시시하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예티의 실체를 밝혀 내거나 예티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허구성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메스너가 밝혀 낸 것은 예티가 ´곰´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예티의 진정한 의미이다.
예티는 파괴와 개발의 손이 닿지 않은 ´원시 영역´의 상징이다.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공간, 그것은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파라다이스로 재구성되어 인간의 삶을 신성하고 무한하게 만든다. 그러나 티벳의 강점과 함께 시작한 개발 정책은 히말라야를 점점 오염시키고 있고, 미지의 상징이었던 예티 또한 서구의 얄팍한 호기심과 상업성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히말라야의 예티는 어느새 미국 영화에 나오는 킹콩과 닮아버린 것이다.
미지의 세계는 늘 정복자의 손에 의해 파괴되거나, 자본가의 손에 의해 상품화되었다. 자신의 인식 너머에 있는 세계를 참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인류의 고질병인 듯 싶다. 메스너는 자신이 비록 예티의 수수께끼를 풀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티의 전설은 지금도 히말라야 산간 지방 원주민들의 삶 속에 살아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알 수 없는 상상의 세계, 내가 살고 있는 지루하고 고달픈 이 곳의 저편에 다른 어떤 세계가 존재해주기를 바라는 인간의 근원적 바램을 예티가 대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예티의 존속은 바로 야생 산악 지대의 존속과 그 운명을 나란히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김연정/리브로)
by www.libro.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