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화로 그려가는 ‘아름다운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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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화로 그려가는 ‘아름다운 황혼’

휠체어에 의지한 채 왼손으로 펜화를 그리는 ‘할머니 삽화가’가 있다.
조복경(趙福慶·75·서울 성북구 보문동) 할머니가 그 주인공. 프랑스 예술원 회원인
원로화가 김종하 선생의 부인인 조할머니는 10년전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오른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왼손만 겨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조할머니는 일상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각오로
하루종일 펜과 화판을 붙들고 펜대보다 단단한 의지로 투병생활을 해오고 있다.

조할머니가 펜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년전 남편인 김종하 선생을 따라 프랑스에
갔을 때였다. 당시 취미삼아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병든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다.

거동뿐 아니라 말하기조차 불편한 몸이지만 조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드린 후
화판과 마주해 하루를 보낸다. 어색한 왼손으로 그려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처음 걸음마를 딛듯 어렵게 어렵게 왼손을 숙달시켜 나갔다.
실패해서 버리는 작품이 없을 정도로 정신을 집중해 작품을 다듬었다.
이렇게 그린 작품이 지금까지 1,000여점. 조할머니는 그 작품들 중 90여점을 가려 뽑아
작년 명동성당에서 첫 전시회를 가졌다.
전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람객들이 밀려들어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조할머니는 최근 대기업 이사직을 그만둔 후 뒤늦게 소설가로 변신한 ‘늦깎이 작가’
손성재(孫性載·52·왼쪽)씨의 첫 창작소설집 ‘노란 머리핀”에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조할머니는 “하루종일 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지만 손씨의 글이 맑아 삽화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흔쾌히 맡았다. 그는 삽화 하나를 그리는 데 16시간이 걸릴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모두 16작품을 실었다.

손씨는 “노년의 외로움과 힘든 투병생활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할머니의 정신력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며 “삽화도 작품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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