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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사는 이야기
평범한 택시기사이지만 주의연씨의 삶은 천사의 그것과 같다.헌혈증 1500여장과 성금 1300여만원을 모아 불우이웃을 돕는 것도 모자라 조만간 재미동포에게 신장을 기증하러 미국으로 떠난다. “나누며 살면 참 행복하다”는 주씨는 자신을 ‘헌혈전도사’로 불러주길 바랐다.


#1.‘흡혈귀’와 ‘천사’.

전북 전주 대광운수 소속 택시 기사인 주의연씨(46·전주시 인후동)는 극단적인 별명 둘을 가지고 있다.

앞의 것은 회사 동료들이 붙여준 ‘섬뜩한’ 애칭이고 뒤의 것은 병원 관계자들이 존경심을 담아 부르는 별명이다.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피를 빼도록 ‘헌혈’을 권유한다. 또 짬이 나면 전북대병원과 예수병원 인공신장실 등을 오가며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보호자를 만나 도울 방법을 찾는다.‘헌혈전도사’임을 자처하는 그는 이같은 일을 7년째 계속하고 있다.

주씨 택시를 타는 손님들은 그가 불쑥 내미는 전단지를 받고 당황한다.거기엔 앳된 얼굴의 사진과 함께 애절한 사연이 실려 있다. 사진의 주인공은 대부분 초·중·고생.생활보호대상자의 딸로 골수암과 싸우는 이진주양(15·유일여고 1년)의 얘기도 있고 백혈병으로 투병하는 강일주군(6)의 글도 있다.

“헌혈증 한 장, 백원짜리 동전 하나도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사연을 읽던 승객들의 코끝이 찡해 올 즈음 주씨는 뒷좌석에 성금함이 놓여 있음을 살며시 알린다.

처음엔 겸연쩍어 하던 손님들이 목적지에 내릴 땐 100원짜리 동전을 비롯,지폐를 내놓기도 한다.이제까지 모인 성금이 1300여만원. 차속에선 물론 전단지 연락처를 보고 나중에 보내온 것을 모두 합친 헌혈증만도 1500장에 이른다.


#2.신문읽기와 방송청취.

그는 운행중 라디오에서 나오는 딱한 사연에 귀를 쫑긋하고 짬이 나면 신문의 귀퉁이까지 읽는다.

“어느 날 신문에서 ‘백혈병을 앓는 어린이가 많은 양의 수혈을 받아야 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모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때부터 급히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헌혈증을 모으기 시작했다.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거나 동사무소 등을 방문해 사정 얘기를 듣고 이를 A4 용지에 빼곡히 인쇄해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이같이 해서 모아진 성금과 헌혈증서는 그동안 투병중인 30여명의 학생들에게 전해졌다.지난 해 3월엔 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공고생 오모양(17)에게 헌혈증서 30장과 600여만원을 전달했다. 올해 9월엔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투병중이 여고생 이모양(16)에게 성금 100만원과 헌혈증 150여장을 전했다.

지난 5월엔 보름간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지냈다.자식처럼 돌보던 한 고등학생이 끝내 백혈병으로 숨지자 앓아 눕고 만 것이다.

헌혈은 그에게 오래된 버릇이다.정읍 태인에서 태어난 그는 30년 전인 전주공고 2학년때 팔을 처음 내민 뒤 지금까지 100여차례나 헌혈 침대에 누웠다.


#3.“해도 너무 합니다. 우리 갈라섭시다”

지난 99년 3월 주씨가 장기기증 등록을 하자 부인 안계선씨(44)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폭탄선언을 했다.

“이젠 같이 못살겠어요.한참 커가는 아이들도 있는데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안씨는 바깥 일에만 신경쓰고 집안 일은 제대로 챙기지 않는 남편이 야속하던 차에 신장, 골수는 물론 사후 시신까지 기증키로 했다는 말까지 듣고는 이제 그만 헤어지자며 목소리를 높였다.실제 그동안 주씨는 남편과 가장으로선 낙제점이었다.

슈퍼마켓을 근근히 운영하다 9년전부터 택시 핸들을 잡았으나 한달에 100만원 남짓한 월급마저 봉투째 갖다 주질 않았다.환자들 병문안 가서 안쓰럽던 차에 냅다 얼마씩을 떼어주곤 했던 것.

지금 세들어 사는 20평 정도의 집도 어느 교회의 예배실로 쓰이던 창고 같은 곳이다. 방을 둘로 나눠 4명의 가족이 쓰고 있으나 바닥에 난방이 전혀 안돼 겨울나기가 쉽지 않다.다행히 부인이 집에서 아기 놀이방을 운영하며 살림을 책임지고 있지만 이마저 겨울철 넉달간은 추워서 문을 못 연다.

주씨는 여고 1년생인 딸 희선(15)이가 “뜨신 물 나는 집에서 한번 살아보면 좋겠다”는 말을 할 때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그러나 고교 3학년인 아들 상훈(17)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한 듯 벌써 15번이나 헌혈을 했다.


#4.신장기증하러 미국으로.

주씨는 연초 미국 텍사스에 사는 동포 이용훈씨(38)에게 자신의 신장 한 쪽을 떼주기 위해 미국으로 간다.장기기증 서약 이후 2년 반만에 적합성 검사를 통해 조직이 같은 이씨를 찾은 것.

‘헌혈 전도사’ 주씨는 이같은 일을 남몰래 하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자신의 뜻에 동감하고 같이 참여해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부러 ‘소문’을 낸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주씨는 지난 달 대한적십자사의 헌혈봉사 금장을 수상했다.지난 4월엔 유종근지사로부터 ‘새천년 새전북 선행상’을 받았다. 또 지역신문에 곧잘 이름이 오르고 지방방송에 화제의 주인공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을 더욱 푸근하게 만드는 일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을 때다.

“아직은 학생이라 돈을 보내기엔 부담이 돼 헌혈증을 보냅니다.얼마되진 않지만 좋은 일에 쓰이길 바랍니다”

얼마전 전주교대에 다닌다는 이새별씨가 헌혈증 4장과 함께 보낸 편지글이다.그는 이 편지를 받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주씨는 헌혈이나 장기기증을 알리는 스티커를 많이 만들어 더욱 많은 사람이 동참할 수 있도록 홍보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또 조금 넓은 창고를 구해 장애인과 홀몸 노인들을 모시며 살고 싶다는 꿈을 내보인다.

“모두 내 자식이나 부모 형제라고 생각하면 남을 돕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주씨는 “작은 정성이지만 나누며 살면 참 행복하다”며 오늘도 운전대를 힘차게 부여잡는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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