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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과 영광 |  | |
| 열대 멕시코에 펼쳐진 신의 미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라는 〈주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에게 권세와 영광을 바치는 축도가 아니다. 권세와 영광은 하나님의 편이라기보다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유혹하고 기만하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유혹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인간들의 가치다. 그 속에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권세와 영광을 좇거나, 그것에 좇기거나, 그것 때문에 나락으로 떠밀리며 방황하는 인간들의 마음 속에 소스라치는 환영으로 명멸한다. 인간의 편에서 본 권세와 영광이 그렇듯, 하나님 역시 거대한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주기도문´에서 제목을 따왔다는 그레이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의 원제는 「미로와 같은 길들」이었다. 멕시코 군사혁명 정권의 교회 탄압 정책으로 무너진 교회. 신부들은 결혼을 강요당한다. 만약 신부가 결혼을 거부하면 그 자리에서 체포돼 사형당한다. 「권력과 영광」은 결혼을 끝까지 거부하고 위장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살아 남은 한 신부의 모험을 그린 소설이다. 그러나 그의 모험은 자발적인 신념에 의한 게 아니다. 그는 순교를 할만큼 용감하지도 않고, 결혼을 해서 신부직을 그만둘 자신도 없기 때문에 도망다닌다. 그러나 그를 신의 현현으로 생각하는 신도들과 아이들에겐 그런 도피가 영웅적인 행동으로 여겨진다. 실제로는 나약하고 비굴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그지만, 폭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고단한 정신을 의탁할 메시아가 필요한 법이다. 그가 아무리 술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알코올 중독자(그는 ‘위스키 신부’라 통한다)에다 여신도와 관계를 맺어 딸까지 있는 실패한 신부라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건 불구가 된 세상이 신의 대리인에게 내리는 가혹한 형벌, 속죄양의 수난이니까.
그레이엄 그린은 「제3의 사나이」, 「애정의 종말」등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선과 악의 갈등이나 인간의 나약함을 통해 신의 존재를 표현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영화로도 유명한 위의 작품들말고도 그는 내란 속의 인도네시아를 다룬 「조용한 미국인」, 콩고의 나병원을 배경으로 한 「다 타버린 인간」등,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스릴러 풍의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나 그의 스릴러는 단순한 추리 소설을 넘어 종교적인 함의가 짙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그런 점이 그의 작품들을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의 외양을 띠게 한다.
그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비천함과 사악함에 찌든 상태로 어디로든 열려있으나 어디로도 갈 수 없는 미로 속에서 방황한다. 어디로든 열려 있다는 건 그 미로의 막막함을 의미하고,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건 그곳에서 한발만 비껴서도 절망과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져드는 걸 말한다. 그럼에도 그 미로를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거기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뿐이다. 환영으로 오락가락하던 신의 계시가 그 순간 분명해진다. 「권력과 영광」의 타락한 신부가 마지막에 찾는 길도 바로 그 길이다. 어떤 타의(신의 의지나, 신의 실험일 수도 있는)에 의해 파멸과 비굴 속으로 빠져들었던 그는 결국 신의 영상을 실제적으로 획득한다. 그러면서 현실을 초극한 ‘권력과 영광’의 성전으로 들어서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육신의 죽음이라는 신성한 제의(祭儀)가 필연적으로 개입된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열대 멕시코의 건조한 풍토는 삶의 가시밭길을 의미한다. 거센 모래바람과 뒤섞인 사악한 정권의 횡포나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수난의 은유로 해석하는 것 역시 하등 무리가 없다(물론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게 더 좋다). 문제는 그런 디테일들이 역설적으로 환기시키는 인간의 나약함과 신성이다. 이 상호대립적인 관계는 대립적인 만큼 서로의 음영을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그레이엄 그린은 이런 신성과 속된 허약함을 분리시키지 않고 그것들이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방식을 거시적으로 묘파한다. 거기에 어떤 프로파간다나 집단적 이념에 대한 맹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레이엄 그린은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와 인물 심리와 배경의 기기묘묘한 앙상블을 통해 그 속에 배인 성령과 복잡한 심리의 미로를 통찰해낸다. 공산주의자였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이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가 가진 지성과 신성이 어떻게 육화돼있는지를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말년에 그레이엄 그린은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명됐지만 1991년 사망하고 만다. 세속의 ‘권력과 영광’이 그에게는 여전한 신기루에 불과했던 것일까. 아니면, 위스키 신부처럼 죽음 직전의 1초 동안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영원히 누렸던 것일까. (강정 igguas@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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