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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송어낚시 |  | |
| 미국의 송어낚시에 대한 차가운 명상
워싱턴 주 타코마에서 태어난 독일계 일곱 살짜리 소년은 어느 늙은 술주정뱅이에게서 ‘미국의 송어낚시’에 대해 듣게 된다. 그 술주정뱅이는 마치 송어가 진귀한 금속이라도 되는 양 설명했다. 그 말에 소년은 ‘은silver’을 떠올렸지만, 꼭 그렇다고도 볼 수 없었다. 소년의 가슴속에 새겨진 그 느낌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건 아마도 송어 강철이 될 것이다. 송어로 제련한 강철. 그 연상은 다시 철강도시 피츠버그와 앤드류 카네기로 이어진다. 소년의 가슴에 처음 새겨진 송어란 바로 성취와 야망과 부유의 미국이었다. 그리고 몇 십 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된 그는 송어가 단지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송어는 미국적 삶, 그러니까 미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은 허클베리 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다시 출간된 리차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는 1960년대에 브라우티건을 일약 문학적 스타로 만든 대표작이다. 1984년 「문예중앙」별책부록으로 처음 번역됐으며 한국에도 많은 팬을 만들었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1950년대 비트 무브먼트와 1960년대 플라워 무브먼트 등 격변기 미국을 뒤흔들었던 사회적 분위기를 그대로 담은 책이다.
브라우티건과 마찬가지로 짤막한 에피소드의 연쇄를 통해 소설을 파편화시킨 바 있는 커트 보네거트는 1960년대 미국소설의 특색을 ‘파편적(fragmentary)’이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런 파편적 형태의 가장 대표적인 소설이 바로 「미국의 송어낚시」다. 이 소설은 모두 47개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됐는데, 미국의 송어낚시를 중심에 두고 얘기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각 단편간의 연관성은 많지 않다. 이 소설이 이처럼 파편화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소설의 전반에 흐르는 이미지가 폐허와 죽음에서 비롯한 상실감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브라우티건은 이에 대해 “상실감은 곧 폐허와 죽음과 연결되고, 폐허와 죽음은 현대 미국, 나아가서 현대 서구문명의 정신적 풍경과 연결됩니다. 이런 상황하에서는 모든 것이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계보적 연결과 연속성에 단절이 생기게 되지요. 따라서 모든 것은 총체성과 연대감을 상실한 채 파편적이 되어버리고 또 파편적인 것만이 의미를 갖게 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파편화는 이 소설이 등장한 시대와 관련해 몇 가지 중요성을 띄고 있다. 먼저 형식상 개인을 획일화, 패턴화시키려는 사회적 음모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담았다는 점이다. 브라우티건은 195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비트 무브먼트를 경험한 바 있다. 브라우티건은 쿨 비트에 가까운데, 마약·섹스·광기 등을 강조하는 핫 비트와 달리 이들은 선(禪)적인 직관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파편화된 에피소드란 다시 말해 선에서 말하는 화두와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고물 자동차를 타고 서부를 향해 떠났던 선배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송어낚시」역시 미국의 정체성에 대한 탐색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 미국이란 제국화된 지금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허클베리 핀의 ‘아메리카’를 뜻하는 것이다. 케루악이나 브라우티건이 여행을 통해 찾으려 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내면적인 개념의 미국이다. 이는 소로우나 에머슨이 발견했던 자연과 비슷하며 이 자연은 장자가 말한 자연과 비슷한 개념이다.
「미국의 송어낚시」가 지닌 가장 훌륭한 장점은 바로 문장이다. 브라우티건은 헤밍웨이 이래 미국 현대소설이 보여준 절제된 문장의 모범을 보여준다. 브라우티건이 짧은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파편화된 경장편을 많이 쓴 까닭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짧은 단편집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브라우티건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는 그의 단편들을 읽어야 한다.
이번 번역본에서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역자의 각주다. 브라우티건의 문장은 선적인 여백 속에 담길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데 역자의 각주들은 그 여백에다 구체적인 풍경을 ‘친절하게’ 그려 넣었다. 예컨대 ‘빨간 입술’ 장에 대한 주석에서 “그러므로 입술과 빨간 입술(항문)은 똑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배설을 잘못 처리하면 곧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에, 브라우티건은 무책임한 배설을 경고한다”는 식의 설명은 조금 놀랍다. 물론 역사적 상황이나 주변정황을 알 수 없는 국내의 독자들에게 역자의 ‘친절함’이 도움은 되겠지만 말이다.
(김중혁 vonnegut@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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