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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리아
낭만파 예술가들의 영원한 팜므 파탈
조르주 상드는 그녀가 쓴 소설보다는 요란한 남성편력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보들레르는 그녀를 두고 ‘변소’라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상드를 거쳐간 남성들은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정점에 올랐던 인물들이다. 플로베르와 들라쿠르아, 쇼팽 등 민감한 영혼을 가진 남성 예술가들은 상드의 노골적인 관능과 뜨거운 열정 속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능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냈다. 그러니 그녀를 변소라고 표현한 보들레르는 어떤 점에서 옳았다고 할 수 있다. 낭만주의 예술의 엑기스들이 조르주 상드라는 하나의 통로에서 걸러지면서 비로소 빛을 발했으니 말이다.
「렐리아」는 조르주 상드가 1833년에 처음 발표한 소설이다. 이후 1839년과 1854년에 각기 다른 수정본을 펴낸 것으로 보아 상드 자신이 무척이나 애정을 갖고 있었던 작품이라 여겨진다. 1854년도 증보판에서 상드는 이렇게 밝힌다.

“이 책은 진실하게 쓰여졌다. 거의 치명적인 내적 고통, 전적으로 심리적이고 정신적이며 그리고 종교적인 고통, 인생의 이유와 목적을 추구하지 않은 채 사는 사람들에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번민을 느끼게 하는 고통의 무게에 짓눌린 채 쓰여졌다.”

강렬하고도 시적인 문체는 상드 자신의 열정적인 모습이 문장으로 투사된 듯, 예민함과 뜨거운 관능이 농염하게 녹아있다. ‘렐리아’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은 상드의 제2의 필명이 됐을 정도로 작자와 꼭 빼닮았다. 때문에 이 소설은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에서 연상되는 것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스테니오와 트랑모르 등 각기 다른 열정과 성격을 지닌 렐리아의 연인들에게선 시인 뮈세나 쇼팽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겹친다. 쇼팽의 현란하고도 구슬픈 야상곡이 책 속에서 울려나오는 것도 같고, 낭만적 열정을 노래하는 뮈세의 섬세한 표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작품의 주요 인물들은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여러 가지 유형이나 사상들을 대변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상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이상과 사랑의 형태를 몇 개의 인물 유형들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렐리아와의 불안정한 사랑 때문에 방탕한 생활에 빠졌다가 자살하고 마는 스테니오가 미래에 대한 신뢰나 희망 등을 상징한다면, 늪 같이 혼미한 사랑에서 빠져 나와 최후까지 남게되는 트랑모르는 고통으로 인한 체념과 금욕주의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뉘스는 렐리아에게서 받은 경멸 때문에 생겨난 무신론을 상징한다. 결국 마뉘스는 렐리아의 목을 조르고 미치광이가 된다. 영원한 의심, 정신적 불모, 목적 없는 인생의 환멸이라는 선고를 받은 ‘구제불능의 렐리아’는 그리하여 영원한 절망과 고통을 표상하게 된다.

「렐리아」는 상드 스스로가 자신의 육체적, 본능적 열정을 고백한 일종의 수기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외형을 띠고 있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감정을 환기시키고 본능과 밀착된 흥분을 일으키는 문장들은 낭만주의 문학 특유의 정서적 일체감을 고양케 한다. 때로는 끔찍하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한 주인공들의 고통과 상처들이 끈적끈적한 문장 속에서 선연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상드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유독 분류가 곤란하고 노골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일테면 조르주 상드라는 이름 앞에 퍼부어진 숱한 도덕적인 힐난의 선두에 ‘렐리아’가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렐리아’는 상드의 육체에 도려낼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게 들러붙은 가면이다. 그 처연하고도 노골적인 가면의 고백을 듣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불끈불끈 달아오르는 어떤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건 정신마저 불태우는 육체의 관능이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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