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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홀리데이
긴 고통 후의 휴식, 그 설레임의 시선
사람들은 누구나 일탈을 생각한다.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거운 중압감을 느낄 때, 막연한 현실적 극한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탈출의 충동에 사로잡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적인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일탈보다는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수단으로 휴식(혹은 휴일holiday)을 택하기 마련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푹 쉬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생활의 또 다른 활력을 되찾는 것 같다. 사람들은 휴식 속에서 예전의 치열함이나 만성적인 피로감에서 벗어나 또 다른 느긋함과 생활의 여유를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휴일이 있어야 하고 또한 휴식이 필요한 모양이다.
이병천 소설 「홀리데이」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내용을 길게 늘이고 있지도 않다. 마치 피로한 심신을 쉬어서 다시 생기를 되찾은 사람들처럼 그의 시각은 새롭고 신선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 소설들이 한 편의 글이라기 보다는 피로감에 지쳐 누일 곳을 찾는 현대인의 ´몸´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소설에 대한 인상은 인물로부터 비롯된다.

´롤리타의 사랑방´에 화상 전화를 연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 비밀스럽게 서로 벗어 던진 속옷도 직접 보여줄 수 있을 듯 했다. 언어라는 불편한 도구를 써서 따로 증명해보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우리들 사이버 키드´ p.88)

모든 것을 일부러 ´말´로 만들어낼 필요조차 없는 공간에서, 아니 말이 그 자체가 불편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말이 아닌 ´몸´이 자신의 피로감을 보여준다. 그의 소설 속의 인물은 모두 현실 속에 지쳐 있고 상처를 가지고 있거나 어두운 빛을 띈 인물이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어화 넘차 고려장´), 섹스 비디오 테이프로 파탄을 경험하는 여가수(백조들 노래하며 죽다), 가짜 대학생 노릇을 하는 여학생(´가보지 못한 길´) 등 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은 우울하고 지쳐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인물들이 현실에서 본 듯한 혹은 봄직한 인물들을 연상시키는 것은 우리 현실을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 무료하고 피로한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는 작가가 가지고 있는 현실적 감각과 느낌이 돋보인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이다. 마치 소설 속의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마치 큰 피로감 끝에 찾아오는 희망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넓은 어깨처럼 우울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고 지켜준다. 그리고 서로 전혀 다른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그로부터 이야기는 가파르게 정지한다. 무언가 작가가 할 이야기가 좀 더 남았으리라는 기대를 어김없이 뛰어넘으면서 말이다.

하릴없이 나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아내가 실컷 울도록 놓아들 심산이었다. 정화(淨化)의 효험을 구하는데 눈물만큼 좋은 약은 따로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투명한 액체만을 뚝뚝 떨어뜨릴 뿐 흐느끼지 않는 그녀만의 독특한 울음을 약간은 뻔뻔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빼꼼하게 바라보았다.(´홀리테이´, p.37)

그러다 보니 그의 소설을 읽다가 마칠 무렵에는 달콤한 긴 잠에서 화들짝 놀라 깨어난 것처럼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이다. 단편적인 꿈들을 연달아 꾼 날, 그 꿈의 여운 때문에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듯이 그의 소설집 「홀리데이」를 읽는 동안 나를 붙잡았던 것은 그러한 연한 단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기분 좋은 생동감이었다.

그 때문일까? 이 소설은 새로운 감각과 기지가 엿보인다. 지치고 힘겨운 것에 대해서 회의적으로도 보지 않고 방임하고 있지도 않은 이 소설 속에는 삶과 사람에 대한 진한 향기가 묻어난다. 이 소설은 힘들고 지친 이들을 쉬어가게 하면서도 그나마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야기를 전달해주면서 현실 속에서 지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손을 뻗어 끌어안는다. 마치 긴 휴식 끝에 이제야 삶의 평온함을 되찾은 사람들처럼, 이병천의 소설집 「홀리데이」는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 대신 소박하지만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무덤덤한 관심으로, 냉소적인 시선보다는 깊은 배려와 이해의 감정으로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그 휴식의 세계가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병천의 「홀리데이」를 통해서 나와는 또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면서 자신의 심신 또한 잠시 휴식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장재진/리브로 명예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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