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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난 작가들
엿보기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누군가를 엿보기, 훔쳐보기 동작이 지나친 것을 일러 관음증이라고 한다. 엿보기 자체가 하나의 증상, 곧 병이 되는 것이다. 관음증을 가리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본성이라고도 말하는 이가 있는 것을 보면, 이 병이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가(´본성´이라는 면에서), 또 얼마나 떳떳하지 못한 짓거리인가(´추악한´이라는 면에서)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 우리 모두는 엿보고 싶은 욕망, 속닥거리는 귀엣말이라도 훔쳐 듣고만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의 ´우리가 만난 작가들´은 우리가 ´보편타당´하게 지닌 엿보기의 욕망에 가장 충실한 책이라 말해 마땅할 것이다. 이 책은 문화부 기자인 김광일이 만난 사람들과 그가 속닥속닥 나눈 대화를 옮겨 적은 것으로, 여기서 그가 만난 사람들이란 공선옥, 김영하, 김주영, 박성원, 배수아, 백민석, 법정, 송기원, 은희경, 전성태, 정영문, 조경란, 최인호, 하성란, 한강, 황석영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16명의 우리 작가들이다. 덕분에 독자인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소설이라는 허구의 장르 속에 자아를 감춘 작가들의 내면을 한껏 엿보며 때로 음흉하게 웃을 수 있어 참 좋다.

저자 김광일 기자는 우리의 ´엿보기´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매개자로서 뿐 아니라, 작가가 아닌 일반 시민(혹은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써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작가들의 내면을 읽고, 그들의 솔직한 단면을 이끌어내는 산파구실을 톡톡히 한다. 가령, 여수에서 씨 다른 자식들을 홀로 키우는 공선옥으로부터는 ´돈 벌어오는 남자를 만나서 그 사람의 애를 많이 낳고 싶다´는 절박한 바람을 듣고, 요즘 장편소설 ´상도´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작가 최인호로부터는 ´허락된다면 나는 글을 쓰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불굴의 의지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뿐인가, 우리시대의 큰 작가 황석영은 김광일 기자에게 영어(囹圄)생활에 대해, 그 긴 세월이 어떻게, 얼마만큼 그를 변화시켰는지를 들려주기도 한다.

˝예술은 삶의 자잘한 디테일이 축적돼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감옥은 독서마저도 관념화시켰습니다. 감옥에서 책을 읽으면 몇 가지 기둥과 줄거리만 남고 디테일이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일반수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지요.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그들의 도둑질 경험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젊은 교도관들과도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낄낄대고, 나를 놓아가며 풀어헤쳐 버렸습니다. 그러자 나 자신이 굉장히 넉넉해지고, 건강도 점점 좋아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p.249)

때문에 작가들의 내면을 깡그리 엿보게 하는 이 책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문학적 상식과 지적 소양이라기 보다 엿봄에서 오는 ´쾌감´일 뿐이라고 짐작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건 오산이다. 작가 내면의 이해는 곧 그가 쓴 작품에 대한 이해와 직결되는 것. 김광일 기자와 16명의 작가가 나눈 내밀한 대화는 곧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말이 된다. 은희경의 성격과 외양을 말하면서 은근히 그의 작품을 말하는 구절이 특히 그러하다.

˝그녀의 전략은 이중으로 비꼬기입니다. 비꼬지 않는 척 비꼬는 것이고, 애무하는 척 가슴을 찌릅니다. 그녀의 소설은 사람을 무작정 빠져들게 하면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만, 그 수준에 끝난다면 사실상 은희경의 소설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문학적 아이큐가 함량 미달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위로 뒤에 까칠까칠 검의 쇠비린내를 느껴야 하는 것이고, 그녀와 헤어지고 난 뒤에야 앗, 그것은 내 가슴을 베어버린 칼이었네라고 깨달으면서 살갗 위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p.135)

그러니까 이 책의 미덕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얼굴 표정, 손동작 하나에서도 동굴 속 같은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 우리의 ´엿보기´ 욕망을 배려하였다는 점, 인터뷰라는 형식적인 장치를 통해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작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기회를 제공하였다는 점, 나아가 문학 평론처럼 어렵지만은 않은 쉬운 어법을 사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작가와 작품의 이해를 돕는 징검다리의 구실을 하였다는 점.

참, 마지막으로 하나 더, 조선일보 한영희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이 시원스럽게, 그리고 정겹게 실려 있다는 점! 그러므로 여기 실린 16명의 작가 중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가가 단 한 사람도 들어있지 않다 해도 이 책은 분명 한 권쯤 품에 지니고 있으면 좋을 책이다. 엿보기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이현희 imago@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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