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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하철도의 밤(양장본) |  | |
| 남루한 현실을 박차고 오르는 은하열차
언제쯤이었을까. 가상세계와 현실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던 시절이 제게는 있었습니다. 아마도 예닐곱 살 무렵이 제 ‘어눌함’의 전성기였겠지요. 지금도 저는 그 시절 제가 꿈꾸던 또다른 세계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여기서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냐. 지금 이 집도 우리 집이 아냐, 물론 엄마도 아빠도 진짜가 아니지. 이 순간만 넘기고 나면 나는 본래 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러니 조금만 참고 견디자’라는 발칙한 다짐과 함께.
부모님께는 일종의 ‘작은 배신’일 수도 있는 이런 다짐은 어른에게 야단맞았을 때, 갖고 싶은 것을 못 갖게 될 때 처럼 ‘현실에 대한 불만’이 생길 때에 슬그머니 싹트곤 했죠.(물론 그렇지 않을 때는 착하고 행복한 아이였고요.) 그때 제가 ‘나는 돌아가리라’고 야무지게 다짐했던 공간은 별이 많고 기차가 하늘을 나르고 만면에 미소를 띄운 사람들은 ‘발을 땅에 대지 않고’ 뛰어 노는 곳이었답니다.
찬란한 물빛 표지, 너울거리는 억새풀 위를 가뿐하게 날고 있는 기차와 소년이 담겨있는 책 「은하철도의 밤」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던 저의 유년기를 상기시켜주는 아주 반가운 책입니다. 애초에 이 소설은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으로 시작하는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모태가 되었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작 책의 내용은 만화영화와 상당히 다릅니다. 단지 은하계를 비행하는 기차가 공통적 소재로 등장할 뿐, 이 책 속에는 망토를 휘날리는 주근깨 소년 철이도, 긴 금발머리가 너무나 어여쁘던 메텔도 없습니다. 대신 가난한 해달조끼 소년 ‘조반니’가 등장하죠.
가난한 시인이자 동화작가이자 농업연구가로 살다가 나이 서른 일곱 되던 해에 폐렴으로 사망한 미야자와 겐지는 왕따 소년 조반니와 그의 허름한 가정사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이는 이 소설 전반에 ‘현실적인 그늘’이 됩니다. 모르긴 해도 이 작품이 작가가 죽은 지 반 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많은 어른 독자들의 가슴에 물큰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남루한 현실을 박차고 오르는 환상의 이야기라는 것 말예요.
병든 엄마, 집안일을 말끔히 처리하고 일터로 나간 누나, 감옥으로 갔는지 바다로 나갔는지 알 수 없는 아빠 그리고 별을 너무나 사랑하는 수줍고 착한 소년 조반니. 친구들의 놀림을 피해 달리고 또 달리다가 풀밭에서 지쳐 잠든 조반니의 모습은 대책 없는 꿈과 낭만만을 안겨주는 ‘동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어른들 이상의 삶의 무게를 견디는 조반니에게서 우리들은 어쩐지 동료의식을 느끼지요. 그리고 그에게 마법처럼 날아든 은하 열차, 그가 본 해오라기 새의 풍경들에 우리는 덩달아 환호하게 되는 거죠. ‘야호! 우리에게도 그날이 왔다!’ 하면서.
그래요, 몇 차례의 폭우가 지나가고 다시 폭염 속을 비틀비틀 걷고 있을 이들을 위해 저는 이 책을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꽂아둡니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유년시절의 꿈과 마법들을 추억하시길, 그 추억으로 인해 현실도 가상인듯, 꿈인듯, 마술인듯 내내 미소지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현희 imago@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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