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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민씨는 무슨 말을 꺼낼까 말까 망설였다. 이제까지 늘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만 만났지 한번도 황만근과 단둘이서만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는 탓도 있었다. 그런데 황만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똘똘하기 잘도 돈다.”
“뭐가 말씀입니까.”
민씨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저 빌(별)들 말이라. 시계맨쭈로 하루도 쉬지 않고 똑딱똑딱 나왔다가 들어갔다, 나왔다가 들어갔다 하지 않는기요.”
마을의 반푼이, 아니 열 달에서 두 달 모자라 태어난 팔푼이 황만근으로 하여금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이런 능청스러운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소설가는 많지 않다. 금방 황만근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듯한 대화하며 황만근의 죽음에 어울리지도 않는 묘비명을 기운 자리 보이지도 않게 갖다 붙이는 구성은 성석제 소설을 읽는 맛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번에 출간된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제2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인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한 일곱 편의 중단편을 한데 모았다. 이 소설집에 실린 ´천애윤락´의 표제에는 다음과 같은 주석이 붙어 있다. “중국의 시인 백낙천의 ´비파행´에 나오는 구절 ‘同是天涯淪落人’에서 인용. 다음 구절은 ‘相逢何必曾相識’인데 대략 번역하면 ‘모두 다 아득히 먼 곳을 떠도는 외로운 사람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이다.”이 주석의 ‘同是天涯淪落人’은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인물들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좀 모자라는 농부 황만근,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에 등장하는, 사기, 간통 등의 하찮은 전과 탓에 지방선거에도 나갈 수 없는 지역사회의 친목계원들, 천덕꾸러기로 태어나 천하제일의 미남으로 자라고 향기로써 보는 이의 영혼을 사로잡는 ´천하제일 남가이´, 온갖 불운의 한가운데만을 걸으면서도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천애윤락´의 동환 등은 모두들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약간 빗겨나 아득히 먼 곳을 떠도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의 예외적인 삶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개인의 삶을 둘러싼 이 세계의 질서가 얼마나 완강한지 보여준다.

이 점에 대해 문학평론가 정호웅은 “그들의 유목적 떠돎은 그들과 맞지 않는 이 세계의 질서에 대한 분노, 대결 또는 개혁의지와는 거의 무관하다. 그들의 떠돎은 그러므로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는 소설의 기본형식 너머 또는 이전에 놓여 있다”며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이념 실현을 위해 험로를 걷는 인물들의 여로를 즐겨 다루어온 우리 소설 일반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 여로를 우리는 성석제적 여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전혀 사실처럼 보이지 않는 얘기를 능청스럽게 밀고 나가는 성석제의 독특한 문체는 이런 예외적 개인들의 삶을 다루는데 있어 빛을 발한다. 시인 김정환은 “소설을 읽다 날밤 새던 대학시절 습관을 성석제 소설이 30년만에 되찾아준다”고 했는데, 이런 특징은 그의 소설을 우리 이야기의 전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모든 이야기는 재미있다. 소설은 이야기다. 모든 소설은 재미있다”로 이어지는 삼단논법의 좋은 예로 성석제의 이 소설집은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설을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문제겠지만. (김연수 larvatu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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