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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일기
반쪽난 얼굴의 예수, 스스로의 진실을 밝히다
예수의 실제 얼굴에 대한 얘기들은 역사적으로 분분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성화 속에선 대개 길고 갸름한 말상으로 그려져 있으나, 일설에는 예수의 출생지나 핏줄 등을 고려할 때 선이 굵고 눈이 부리부리한 팔레스타인 농부의 얼굴을 상상하는 게 더 정확하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예수의 얼굴이 제대로 그려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예수의 얼굴은 2000년의 시간을 단박에 소급해 늘 현재적으로 그려진다. 서구인들에게는 백인의 어떤 전형을,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얼굴을 닮은 예수가 있다. 그리고 미국 소설가 노먼 메일러에게는 자신의 인생역정 속에 투영된 그 자신만의 예수가 있다.
「예수의 일기」에서 노먼 메일러는 예수의 일생을 인간적인 측면에서 조명한다. ‘일기’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에서 예수는 일인칭의 화자로 등장한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뱃속에 잉태됐을 무렵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겪었을 고뇌와 갈등까지 추체험하면서 자신의 인간됨을 되새긴다. 그럼으로써 신성의 아이콘으로 항상 인간보다 높은 위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던 예수의 실체가 피와 살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간들과 수평의 위치에 놓인다. 신화와 성령의 신비를 고이 간직한 채 지상으로 내려온 예수는 인간들의 고통과 갈등 속에 뒤섞인다.

어쩌면 노먼 메일러는 예수의 그런 모습을 통해 현대 문명의 우상신화와 기독교의 독단을 비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독법은 그 타당성만큼이나 고루하고 진부한 예수 끌어내리기 작업에 그칠 수 있다. 언뜻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안정효 옮김, 고려원) 등이 겹쳐 떠오르기도 하는 이 작품은 신성과 메시아적인 압도감으로부터 해방된 예수의 얼굴, 살이 부르트고 피부가 갈라진 인간 그 자체로서의 예수의 초상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그 탓에 핍박받는 사람들의 대속자이자 희생양으로서의 예수의 이미지, 자칫 종교적 억압이 될 수도 있는 메시아로서의 성령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그런 의례적인 요소들은 오히려 예수와 부대끼고 뒤엉키는 모든 인간들의 삶의 모습들 속에 눅진하게 녹아 있다. 신성은 바로 그 범속한 인간들의 모습 속에 살아있다.

이 작품의 첫장에서 노먼 메일러의 예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급적 진실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마가와 마태, 누가, 요한 들은 그들의 교회를 확장시키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씌어진 다른 복음서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복음서들 중 어떤 것들은 내가 죽은 후 나를 따르기로 마음먹은 유대인들만을 상대로 씌어졌고, 또 어떤 것들은 유대인을 미워하지만 나만을 믿은 이방인들을 상대로 씌어졌다.”(p.8)

이런 진술은 이 작품이 누천년 간 이어져 내려온 예수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오해에 대해 예수 자신이 스스로의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읽힌다. 또는, 그 동안 일방향으로 전파되거나 억지주입된 성경의 다의적이고도 미묘한 자구들이 스스로의 입을 열어 숨은 의미를 실천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담긴 예수의 행적을 세세하게 좇고 그 행적들을 통해 피와 살이 도는 예수의 인간상을 역추적한 노먼 메일러의 집념은 그 자체로 예수의 고행과 표일하게 겹친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한 반전운동과 도저한 반골정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노년의 작가는 예수의 생애를 자신의 일생 위에 겹쳐놓음으로써 서구문명의 초석부터 재고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순간, 한 명의 개체로서의 노먼 메일러는 인류의 정신사라는 거대한 주제 앞에서 저 스스로를 옭아맨 영혼의 대속자가 된다. 약간의 과대망상과 원시적인 도전정신마저 느껴지는 이런 자발적 고행은 그 모든 무모함에도 불구하고 값지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예수가 되어 다시금 중얼거리는 성경구절들은 그 어떤 경전해석보다 절박하고 육체적이다. 노먼 메일러는 이 작품을 통해 그 자신을 문학이라는 십자가에 매달고자 했던 것일까. 이 책을 번역한 작가 조성기가 아무런 역자의 말도 적어놓지 않은 건 예수의 행적을 기록했던 숱한 제자들이 진실을 반으로 쪼개 예수의 얼굴을 가려놓았다는 깨달음이 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그렇듯 예수는 너무도 인간적인 번민과 고뇌 속에서 자신의 시적 열정과 성스러움 탓에 고통받던 존재였다. 따라서 그는 해석보다는 감화가 더욱 절실한 인물이다. 이 작품을 읽고 그의 열정과 진실에 온몸으로 전율하는 걸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교회에 걸린 그림에서가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서 예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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