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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의 희생자 김수영 |  | |
| 시를 위한 희생인가 시에 의한 희생인가
현재 고려대 아세아문제 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는 문광훈 교수는 김수영을 대뜸 ‘시의 희생자’라고 부른다. 시에 의해 희생된 건지, 시를 희생시켜 삶을 도닥였는지, 희생이란 단어에 모종의 종교적 함의까지 숨어있는 건지, 혹시 공연한 경배와 강요된 원칙을 스스로에게 주입하려는 지식인의 자기위안은 아닌지 하는 의문들을 솔직하게 밝히고 싶게 만든다. 그런 돌발적인 의구심에 휩싸여 두터운 양장본으로 포장된 「시의 희생자 김수영」의 첫 장를 연다. 매우 촘촘해 보이는 문장들의 응결된 행간으로 들어선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눈이 딱 밝아진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동감일 수 있다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시가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그러나 그것은 삶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시가 발생하는 곳은 사회 역사적 진공관이 아니다. 그것은 나날의 생활, 이 생활이 지닌 분주와 번쇄, 무의미와 절실 그 한가운데서 기록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어떤 것에로도 환원될 수 없는 독자성을 지닌다. 이 환원 불가능의 고유성 속에 시 예술의 주권성이 있다. 그러나 시가 환원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보다 더 큰 가치 범주는 있다. 나는 그것이 삶이며,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머리말〉P. 19)
이 책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던 소위 ‘김수영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여타의 글들과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글쓴이 나름의 개인적인 기록들에 덧대어 김수영을 얘기하고, 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하면서 결국에는 시와 삶, 세계와 개인의 총체적인 얼개를 더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는 이 책의 주된 내용이면서, 삶의 뒤편으로 살짝 빠져 나와 삶의 배후를 보살피다가 다시 생활의 한가운데서 생활에 핍박받고 고뇌하는 강한 낙차의 진자운동을 펼쳐 보인다.
그러고 보니 시의 운동성이란 게 그렇듯 시간의 축을 종횡으로 오가며 세계의 숨은 원리를 육체적으로 드러내는 게 아닐까싶다. 시는 언어로 지은 의미의 집이 아니라, 언어로써 언어 바깥의 실재를 포획해내려는 삶의 예민한 촉수인 것이다. 시는 생활의 안쪽에서 발아해 삶의 바깥으로 수시로 튕겨 나가려는 현실의 육체를 이중으로 옭아맨다. 시인은 무시로 닥쳐오는 미지에의 예감 속에서 현실을 새로이 구축하려는 욕망을 끊지 못한다. 문광훈 교수가 개인적 애정과 삶에의 소망, 그리고 죽음에의 경원 등을 한데 겹쳐 김수영을 얘기하는 핵심이 바로 이런 시와 삶의 양가적인 운동성에 있다.
“생활 속의 나, 거리를 걷고 나무를 쳐다보며 밥을 먹고 쉬기도 하는 나는 하나의 통합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글을 읽고 쓸 때의 나는 확정된 자기동일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반성 없는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반성할 때에도 때로는 어떤 내적 불일치를 느낀다. 단지 글의 반성 속에서 이 균열성은, 그 의식적 작용으로 하여 줄어든다고, 혹은 교정 중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라는 말을 통해 나를 포괄할 수 없다. 나는 언제나 나 속에서만큼이나 나 밖에도 있다.”(P. 314)
김수영의 시를 인용하고 비평적인 안목과 통찰을 섞어 삶과 시의 근거를 살피는 글쓴이의 이런 노력은 이 책을 범상한 문학비평서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게 만든다. 이 시는 김수영에 대한 절절한 애정고백인 동시에, 삶의 내재적 복합성을 통찰해내는 철학적 아포리아이자 비평의 본의를 제고하면서 올바른 작품해석의 정도를 질정하는 날카로운 비평서이기도 하다. 김수영을 통해 김수영 바깥으로 나가 김수영 이후의 근대적 개인의 삶과 시인의 역할, 문학의 진정한 현실참여를 논하고 싶다면 이 책은 그 치열한 방법론을 제시해준다.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삶 자체의 충일한 열정과 자기반성, 그리고 스스로의 허위에 대한 진솔한 긍정이 있기에 가능한 내용들이다.
이 책은 죽은 김수영의 무덤에 헌사될 경어체의 애도문이나 시의 뒤편에 숨어 곰살스럽게 자구의 의미를 풀이하려 드는 백색의 문장을 넘어 산 자들의 현실과 삶의 질곡들을 보듬는 적실한 통찰이 된다. 시인 김수영의 초상이 아닌, 자연인 김수영으로부터 발화된 개인성과 보편성의 삼엄한 고리들. 그리고 그것들의 치밀한 연쇄와 쉼 없는 운동성. 이 책은 그런 중층적인 화음으로 구성된 산 자와 죽은 자의 내밀한 육담이다. 그러면서 보편의 바다에 닻을 내린다. 김수영은 어쩌면 이 책 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미 시에 의해 희생되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시는 현실에게 희생당할 것이니까.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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