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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잔 |  | |
| 수백 개 버전을 출산한 완력의 원작소설
타잔의 창조자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1912년 펄프 매거진 「All-Story」에 타잔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이래 만화, 영화, TV 드라마 등 여러 가지 버전의 타잔이 존재했었다. 어깨 끈이 달린 원피스형 스타일의 옷을 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활을 맨 타잔이 있었는가 하면, 손바닥만한 가죽 한 장으로 국부를 가린 잘 빗어 넘긴 고수머리의 타잔도 있었다. 이 모든 타잔의 원형이 되었던 소설 「타잔」이 국내에 완역 출간되었다. 소설은 우리가 지금껏 정확히 알지 못했던 타잔의 탄생 이전 스토리부터 시작된다.
의외로 간단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타잔의 인기는 당시 유행이었던 이국취향 탓이 컸다. 거기에 공주 같은 여자와 야수의 모습을 한 남자의 로맨스가 적절히 버무려지고 모험과 활극의 요소가 결합되었다. 우리가 좋아하고 영웅시하는 캐릭터의 출신성분은 고급문학 출신이 아니라 대개 싸구려 문학 출신이다. 타잔 역시 펄프 매거진용이라는 출신답게 자신의 이미지를 무수히 복제하고 파생시켰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타잔에게 구출된 제인은 타잔의 강한 팔뚝에 안겨 흐릿해진 정신으로 초면인 그와 키스를 하게 된다. 교육받은 백인 여성이 부끄럽고도 짜릿한 키스를 부지불식간에 하게 만들고 혈통을 모르는 야만인의 뒷모습에도 감탄을 연발할 만큼 타잔은 멋진 외모를 자랑한다. 소설은 내내 타잔의 용맹함과 남성적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때문에 여자는 물론 남자에게까지 사랑 받는 우상이다.
정글 속에서 자라난 타잔은 거친 남성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순수하게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폭력적인 사냥꾼으로서 그는 스스로를 ‘위대한 살인자’라 일컫는다. 타잔의 매력은 냉혹하고 잔인한 룰이 지배하는 밀림에서 그 빛을 발한다. 밀림은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비인간적 세계다. 짐승의 무리에서 일인자라는 권좌를 틀어쥘 수 있는 원시성은 문명인 제인에게 성적인 매력을 흠씬 뿜어내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문명의 세계에서 타잔이 가진 능력은 솔직히 말해 기껏 서커스에서나 인정받을 종류다. 그러나 원시적 모습을 한 그가 밀림과 그 짐승들과 교감할 때 우리는 한없는 부러움을 느끼고야 만다.
사실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타잔은 이런 환경 친화적 인물이 아니다. 타잔은 책을 읽고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문명을 배우는 매우 영특한 존재다. 그는 원숭이들과 닮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부끄러워하며 원숭이들의 뭉툭하고 큰 코와 털을 부러워하지만, 글을 깨우친 후에는 원숭이들과 달라지려고 노력한다. 원숭이들처럼 자신의 얼굴에 수염이 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면도를 하고 자랑스러웠던 볼기짝에 짧은 옷을 만들어 걸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이 인간은 밀림의 다른 인간 즉, 흑인과의 교류를 문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백인 집단과 만났을 때 비로소 타잔은 문명과의 첫 접촉이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도 희고, 나도 희다’라고 중얼대며 백인과 타잔은 인간으로 대등하다고 느낀다. 물론 흑인은 식인행위를 하는 밀림의 특이한 짐승이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안 좋은 점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어린 시절 흠뻑 빠졌던 이야기의 이면을 봐야 한다는 걸 들겠다. 어린 시절의 영웅들이나 그렇게도 되고 싶었던 공주들의 이야기를 들춰보면 모두 편견의 이야기들이다. 콩쥐전은 계모, 즉 재가한 여자는 못된 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신데렐라를 비롯한 공주들의 이야기는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구제해주어야 하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타잔」을 읽는 기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든 좋은 것은 그 안에 실제로 좋은 것이 있어서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우리의 욕망의 형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되풀이되어 쓰여지면서 변모한다. 동화 속의 영웅과 공주들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그것에 좋은 내용, 좋은 이데올로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작품 안의 이데올로기는 언제나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게끔 만드는 그 질긴 형식이다. ‘이 소설은 이야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스티븐 킹의 「타잔」에 대한 찬사는 원시성과 대면하는 인간의 공포와 쾌락의 이야기인 그 형식에 주어지는 찬사이다. 타잔의 이미지는 원판 타잔과 많이 달라지고 앞으로도 갱신될 것이지만, 밀림에 남겨진 아이의 생존 이야기는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돌아올 것이다. 개개인의 이유와 그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현실에서 우리가 ‘아아아∼’를 외쳐보고 싶은 한 타잔은 앞으로도 계속 모방될 것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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