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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리 버드 |  | |
| 인간의 선을 희생으로 실천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미 풀었다고 생각한, 혹은 살아가는 데 전혀 무익하다고 여겨지는, 그래서 더 이상 거론되는 것조차 유치하다고 여겨지는 이 질문에 답하고자 평생을 노력한 작가가 바로 허먼 멜빌이다. 그의 유작「빌리 버드」또한 작가가 「모비 딕」의 이스마엘의 입을 빌려 “하버드대학이요, 예일대학”이라고 선언했던 바다 위에서 일어나는 인간사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밝혀두건대 이 책은 경쾌하게 책장을 덮을 수 없는 쪽에 가깝다. 그러니 언제나 ‘꼭 읽어야 할’이라는 단서가 붙는 고전이라는 이유만으로 「빌리 버드」를 주목할 필요는 없다. 「빌리 버드」는 다른 많은 소설들이 그러하듯 인간에 관한 구태의연한 질문을 반복해서 던지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것은 멜빌 생전에 널리 칭송되지 못했던 이유임과 동시에 사후 ‘상징주의 철학적 작가’로 평가받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수병 빌리 버드와 하사관 클래가트의 대립관계를 그린 이 소설의 플롯은 그가 쓴 여타의 작품들처럼 단순하지만 빌리와 클래가트라는 인간 유형은 전혀 단순하지 않다. 우리 하나하나가 말로는 도대체 설명할 길 없는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뱀의 지혜를 보여주는 흔적’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결코 ‘비둘기 같지도’ 않았으며 ‘세인트 버나드 종의 개에게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자의식을 가진 빌리는 영국 해군의 눈에 띄여 강제 징집된다. 준수한 외모와 선한 인품으로 모두의 사랑을 받지만 클래가트 하사관에게는 예외이다. 악의 화신으로 대표되는 클래가트는 빌리가 가진 순진무구함 자체에 경멸을 느끼고 그에게 선상 반란의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빌리는 클래가트와의 대질에서 단 한번의 주먹질로 살인을 저지르고 군법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다.
> 선과 악의 대립은 인간의 역사가 쓰여진 이래 계속되어온 것이자 수많은 소설의 캐릭터를 선과 악으로 명찰을 달아 나누어 볼 수 있을 만큼 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왔다. 선과 악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몇 백 개 정도는 거뜬히 가능하게 하는 주제이다. 멜빌은 클래가트라는 ‘태생적인 악’과 충돌하고 비인간적인 군법에 의해 짓밟힌 빌리의 선함이 어떻게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실천되는지를 이야기한다. 빌리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죽음과 흡사하게 그려지는 것을 보면 희생이야말로 선이라는 인간 본성을 명징하게 표현하는 전제이자 고결함을 드높이는 조건처럼 느껴진다.
“갑판장의 두 부하가 죄수의 몸뚱어리에 대한 마지막 준비를 재빨리 끝마치자, 예수처럼 다 이룰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빌리는 고물 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죽음을 한 발 남겨두고서 그의 입에서 나온 유일한, 조금도 더듬지 않고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비어 함장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P. 153)
고전을 읽기란 참 어렵다. 꼭지를 연 수도처럼 감상이 콸콸 쏟아지지도 않고 단순명료한 주제는 오히려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나 고전은 언제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근원적이면서 낯간지러운 질문들을 자처해서 떠안고 영원히 지속되는 문제들로 거론하고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미 해결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가 그것을 계속해서 묻고 있는, 어느 시점에서나 명쾌한 답은 있을 수 없는 종류의 심각한 주제이다. 때문에 이것은 인생의 무수한 비극 중 하나이며 멜빌이 생애의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가지고 간 인식이었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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