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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대지의 아픔을 안고서 꽃핀 여성문학
“난 여자가 되고 싶지 않고, 차나처럼 상처를 입길 원치도 않고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고 엄마처럼 아랫배가 불쑥 나온 뚱보가 되고 싶지도 않고 남자들이 날 때리길 원치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무 핑계나 대서 혼자 집으로 오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날이 어둡더라도 말이다.” (p156)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의 주인공 ‘나’는 초등학생 여자아이다. 이 여자아이는 안경을 낀 같은 학년 남자친구 하비에르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아이가 집에 바래다주는 것을 뿌리치기로 마음 먹는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아이와 사귀게 되면 그때부터 ‘나’는 여자가 될 것이고, 여자가 된다는 것은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는 상처를 입는 것을 목격한 경험이 있다. 어느 날 피를 철철 흘리고 돌아온 언니에게 어머니는 ‘이제 여자가 된 거야’라고 말했었다. 열 세편의 소설 중에서 엽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장 짧은 분량을 가지고 있는 이 단편은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여성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초경을 시작하는 언니의 육체적, 정신적 변화를 관찰하면서 아이는 사회(여성 자신들을 포함한)가 여성을 어떻게 억압하는지에 대해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또 다른 소설 <훌륭한 어머니처럼>은 모성애의 모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도 있듯이 모성애는 여성 안에서 불가항력적인 에너지를 발휘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올바르기만 한 것일까. ‘어머니’라는 명목 하에 여성에게 요구되는 책임은 너무나 많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많은 부분을 삶에서 제외시킨다. 출장지에서 전화를 걸어온 아버지는 이미 육아에서 한 걸음 떨어진 일상 밖의 사람이다.

소설 속의 어머니는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늘 바쁘다. 컵과 접시를 깨뜨린 아이들 때문에 그녀는 손바닥에 깊은 상처가 났고, 화장실 바닥에 넘어져 다리를 삐었고, 급기야는 젖먹이의 손가락에 눈을 찔려 각막이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모성애로서 극복되어야만 하는 것. 이러한 극단적인 외상의 설정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밖으로 꺼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한없는 사랑이란 인간이 살아오면서 미화시킨 어떤 고정관념은 아닌지, 훌륭한 어머니로서 지켜져야 할 덕목들은 한 인간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인습이 아니었는지 의심을 품게 된다.

우리에게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라틴 아메리카 여성 작가들의 단편들은 이렇게 다양한 여성의 삶을 그들 나름대로의 식으로 한보따리 풀어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질곡 많은 역사,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보았을 법한 자아의 정체성,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그리고 있다.

신비로운 잉카 문명, 인기있는 칠레 와인, 브라질의 삼바축구 등 라틴 아메리카는 신비와 정열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피로 얼룩진 식민의 역사,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쿠데타, 그다지 훌륭한 여건이 되지 못하는 토양 등은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그 땅의 우울함을 고스란히 안고서 꽃핀 여성문학은 아름다움과 독을 다 가지고 있는 양귀비 꽃처럼 매혹적이다.(고지혜 gomgom@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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