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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가족, 깊고 아득한 옛우물로의 귀환
2001년부터 2002년까지 각 문예지에 발표한 신경숙의 단편을 묶은 책이 나왔다. 이 책에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부석사’를 비롯해 ‘종소리’ ‘물 속의 사원’ 등이 실려 있다. 그 동안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해오던 그녀는 이제 자신의 문학적 선로에 명확한 선 하나를 그었다. 섬세한 사유와 예기치 못한 결말을 보여준 장편 「딸기밭」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시도했던 신경숙은 이번 작품집을 통해, 이미 어느 경지에 이른 프로가 뛰어넘기 힘든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만의 단정한 문체나 문학적 화두인 ‘가족’이라는 명제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도 여전히 가족 공동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과의 단절, 고독, 소통의 어긋남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갈등의 꼭지점에 ‘가족의 부재’라는 원인이 존재한다. 신경숙은 1990년대의 다른 여성 작가들과 달리 그녀의 작품에서 가족에 대해 보수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조경란의 「가족의 기원」에서 가족의 해체가 언급되고, 공지영의 「착한여자」에서 부부관계가 아닌 새로운 형식의 가족 공동체가 제시되었을 때에도 신경숙은 가족에 대해 일관된 생각을 고수했다. 신경숙 문학에 있어 가족은 모든 상처의 원인이자 또 다른 한편으로 고통을 치유하는 약이기도 하다.

이번 소설집에 들어 있는 ‘달의 물’에서 눈여겨지는 점은 가족의 모습이 과거의 ‘아름다운’ 기억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그 동안 들추지 않았던, 이면의 생채기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알고 보면 노화처럼 정상적인 것이다. 언젠가 단란했을 가족은, 가족을 상징하는 존재인 ‘우물’이 시멘트로 막혀버린 것처럼 병든 아버지와 이혼한 오빠, 조카 등으로 이제 그 흔적만이 남았다. 그로 인해 주인공은 숨막히는 괴리감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 저기 우물 말이에요. 그거 다시 옛날처럼 해놓으면 안될까?” 해야 할 말이 너무나 많은데 내 입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말이 튀어나왔다. “어쨌거나 물이 찰랑찰랑 있었는데 물이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메워놓고 시멘트로 발라놓으니 어째 내가 숨을 못 쉬겠어, 아버지.” (p185, 달의 물)

여기에는 돌아갈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서글픈 관조가 느껴진다. 변해버린 고향, 그리고 그 고향이 의미하는 존재의 시원에 대해 체념한 것 같은. 하지만 ‘달의 우물’의 아쉬움은 표제작 ‘종소리’에서 해소된다. 살을 맞대고 함께 사는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너무나 많은 벽을 쌓아 두며 다른 개체로 존재하는 남편과 아내. 작가는 그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가족관계의 회복을 시도하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의 삶의 방식을 자기화하여 이제 어머니로서의 의미까지 아울러 자리매김한다. 이로 인해 부부는 친밀성을 되찾을 조짐을 보여준다. 이렇듯 ‘막혀버린 우물’을 찾기 위한 대안은 다른 땅의 수맥을 짚고 다시 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우물을 계속해서 파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포기해서는 안되며, 이를 통해 부유했던 현대인들은 다시 진정한 보금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고지혜 gomgom@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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