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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 근로자를 돕는 노동부 퇴직자들의 모임 |  | |
| 매주 일요일 오후 1시30분 서울 구로동 조선족교회 1층은 어김없이 인파로 북적인다.
1000만원의 빚을 지면서까지 ‘코리안 드림’을 좇아 왔지만 임금체불,산업재해에 소박한 꿈마저 산산조각
나버린 재중동포(조선족)들이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눈물과 한숨을 토
해내고 있다.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얘기를 꺼내는 그들의 앞에는 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올리며 묵묵히 마
음과 귀를 열어주는 ‘은발의 천사’들이 있기 때문이다.교회에서 마련해준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일요
일마다 상담을 나누는 이들은 바로 30년이상 노동부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들로 구성된 ‘외국인근로자
를 돕는 노동부 퇴직자들의 모임’ 회원들. 이들은 언제나 힘없고 핍박받는 노동자들의 편이 되고자 이같
은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 조선족들의 사연을 접했을 때 60∼70년대 근로기준법은 커녕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찾기 힘
들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그리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어머니의 땅’에 대한 원한만
품고 돌아갈 그들의 뒷모습이 비수처럼 느껴졌습니다”
퇴직자 모임 회장을 맡고 있는 신현호씨(74·전 노정국장)는 “현역 때의 경험을 살려 조선족들의 임금체
불,산업재해 관련 상담을 해주는 것이 ‘아름다운 노년’을 만드는 길이라 여겨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
다.
신회장의 제안으로 2년전 결성된 ‘퇴직자모임’에는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종만씨(66)와 권중학
(64),김주숙(69),오탁(67),이건혁(61),이영우(68),이지원(68),장규식(77), 박영조(60)씨 등 모두 10명이 참
여하고 있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한 박영조씨가 최근 합류했다.
지난 2000년 5월7일 교회에서 마련해준 사무실에 의자며 책상을 들여놓고 첫 상담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노동부에 곳곳에 퍼진 후배들과 현역 노무사로 뛰고 있는 동료·후배들의 아낌없는 지원사격이 든든한
‘빽’이다.
이들은 지난 2월말까지 한주도 빠짐없이 매주 일요일 5시간 가까이 상담소 문을 열어 739건을 상담하고 5
억여원에 달하는 ‘눈물 젖은 돈’들을 되찾아 주었다.
하지만 현역 못지 않은 베테랑인 이들에게도 힘든 일은 있다.바로 밀린 임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근로기
준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입건 송치돼 벌금만 조금 물면 되는 점을 악용하는 악덕 기업주들을 설득하는 일
이다.조선족들의 어려운 형편을 얘기하며 사정해보기도 하고,때로는 은근한 압력도 넣어보지만 좀체 쉽
지가 않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나이먹은 양반이 웬 브로커짓이냐는 오해와 험한 욕설도 듣고 곤욕도 많이
치뤘습니다.하지만 우리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피해자들을 상담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다 보면 그런 정
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더군요”
충분히 체불임금이나 산재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몰라서 당하는 게 안타까워 백방으로 수소
문해 업주(사용자)들을 만나기도 하고,노동사무소와 법원을 뛰어다니기도 하다보면 하루가 모자랄 지경
이지만 ‘은발의 천사’들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다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
점 줄어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래도 요즘 들어서는 업주들의 인식이 많이 나아지고,조선족들도 변하면서 한결 일처리가 쉬워졌다는
‘은발의 천사’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지난해 5월 공사현장에서 죽은 남편의 산재 유족보상금을 받아
내준 것을 꼽았다.
부부가 어렵사리 한국땅을 밟았지만 남편의 추락사고로 자포자기에 빠진 부인 김모씨(42)는 지푸라기라
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김씨의 이런저런 사정을 듣고 ‘은발의 천사’들이 내린 결론은 김
씨의 남편은 산재보험 적용대상인 ‘노임도급’ 근로자라는 것.
이 때부터 이들은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담당자를 끈질기게 설득했다.근로복지공단 본사와 지사를 오가
는 질의와 설득 끝에 2주일여만에 유족 보상금 6525만원을 받아준 날,유족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함
께 울었다.
“우리를 통해 3개월치 밀린 임금 200만원을 받게 된 한 조선족 청년은 몇개월째 잊지않고 전화를 걸어 안
부를 묻곤 해요.고맙습니다를 연발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괜시리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
고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하죠”
인터뷰 내내 제대로 대화를 잇기 힘들 정도로 상담자들이 몰려들었지만 얼굴 한번 찡그리거나 언성 한번
높이지 않는 ‘은발의 천사’들은 곱게 물든 은빛 머리카락 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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