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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고영민님]

내가 5학년 담임을 맡았던 해가 거의 끝날 무렵인 12월에 정순화라는 아이가 전학왔다. 전라도 지방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는데 모든 시험이나 평가도 끝났기에 나는 그 아이에게 별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순화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그다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은 아니었다. 전학을 와서 그런지, 아니

면 가난해 보여서인지 아이들에게 인기도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순화는 6학년초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후 순화는 곧잘 찾아와서 내게 편지를 주고 상냥하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 학교를 다닐 때 사

귀었던 순화의 유일한 친구는 학교에서 가장 문제아로 꼽히던 불량아로 다른 아이들에게는 따돌림을 당

했었다. 요즘 아이들은 영악해서 친구를 사귀는 데도 손익계산을 잘해서 그런걸까?


그런 순화가 크리스마스때 내게 선물을 했다. 서툴게 포장한 선물과 카드를 가져왔는데 포장을 풀려 하

자 한사코 집에 가서 열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집으로 카드와 선물을 가

져왔다.


아무 느낌 없이 포장을 풀었는데 열심히 포장한 흔적이 역력했다. 선물은 여성용 지갑이었는데 시장에서

흔히 2~3000원에 살 수 있는 비닐 지갑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선물 앞에 눈물이 흘렀다. “아

아…” 그 지갑은 헌 지갑이었다. 정성스레 닦은 것 같은 꽃무늬 비닐 지갑은 모서리가 조금씩 해어져 있

었다. 지갑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작고 낡은 사진도 나왔는데 아마 순화의 어머니인 것 같았다. 카드에는

서툰 글씨지만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선생님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크리스

마스에 너무 마니 드시지 마시고요! 살쪄요. 글구 방학도 잘보내세요― 선생님, 저는 항상 선생님을 존경

하고 있어요. 글구 사랑해요!


메리 크리스마스 선생님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누가 무슨 선물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상표를 선택했는지 혹은 선물할 것인지

를 말한다. 순화는 엄마의 지갑을 몰래 갖고 와서 선물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엄마의 지갑 중 하나를 얻어

서 선물했는지도. 순화는 정과 사랑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걸까? 가난하고 지저분하며 공부도 못하고 호감

도 주지 못하는 순화를 모두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던가? 유난히 무딘 내가 아주 평범하게 대한 것이 그

아이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꼭 선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일까? 빛바랜 증명사진이 들어 있는 낡

은 비닐 지갑을 볼 때면 내 가슴이 메어 온다.

[리더스다이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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