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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남자의 가방 |  | |
| 사물의 이면을 확장시키는 조형적 시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 세계에 질서를 부여해가는 과정-무질서와 혼돈으로부터 탈출하여 질서와 균형의 세계로 영입해가는 과정이다. 비록 내면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날지언정, 표면적으로는 대상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인식능력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세계를 재단하고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있어야 할 진실과 없어도 되는 진실, 옳은 것과 그른 것 등 무수한 가치판단 기준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선명할수록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증명할 수 없고 분별해낼 수 없는 것들만큼, 정돈된 의식세계를 위협하는 것은 없을 테니까.
이 책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몸을 중심으로, 다시 그 몸을 둘러싼 일상적 사물로 조심스레 확장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왜 하필, 반전도 없고 특이성도 없는 ‘친근함’과 ‘일상성’일까? 우습게도 질문이 곧 답이다. 즉 반전도 없고 특이성도 없기 때문이다. 대체 손가락이나 의자 따위에 무슨 의미와 상징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저자가 그들을 파헤치는 것은, 질서의 틀을 벗어나 사물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그래서, 이면이 있을까 싶을 만큼 너무나 친근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는, 저자가 미술가라는 사실과 운치 있게 맞아떨어진다.
“식탁이 만든 새로운 공간은 음식의 섭취 과정인 식사를 생리적이고 사적인 차원에서 떼어내 문화적이고 공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식탁은 가히 정신과 육체, 문화와 자연의 분리, 그리고 나아가 갖가지 사회적 차별의 상징물이라 할 만하다. 그것을 사용하면서 살아온 우리들이 무의식에 각인된 그러한 분리를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p.76)
“그네의 줄에 매달려서든, 흔들의자 위에 앉아서든 사람들은 일상적인 중력의 질서로부터의 일탈을 경험한다. 물건이 균형을 잃으면 금세 지상에 쓰러뜨리는 것이 우리를 지배하는 중력의 질서이다. 쓰러짐으로써 그 물건은 새로운 균형을 찾게 된다.”(p.110)
책의 한 귀퉁이에 삽입된 저자의 작품들(드로잉·조소품의 사진)은, 이 책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구체화시킨 결과물처럼 보인다. 악수를 하던 두 남자 중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통째로 삼키는 과정, 화분에 꽂힌 막대기 위로 연결된 의자, ‘정신적 근친관계’라는 제목으로 개와 인간의 옆얼굴이 나란히 그려진 것 등 익숙한 대상들이 낯선 상황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낯설다’라고 느끼는 것은, 각각의 대상들에게 애초부터 정해진 자리와 가치가 있다는 편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질서의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보이는 사물과 보이지 않는 진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시선을 유일무이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저자가 발견한 이면 또한 주관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다. 즉 숨어 있는 이면이 꼭 사물의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 모두가 진실일 수도 있다. 그러면 사물의 이면을 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분명, 소용이 있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실의 전부가 아님을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주는 ‘낯섦’은 거기까지다.
단어 선택의 이면
1)탈출: 사람들은 마치 무질서와 혼돈이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안과 두려움을 간직한 채 서둘러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2)위협: 사실 그것은, 그동안 쌓아올린 세계를 단 한순간에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포에 가깝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복되기 전, 질서의 상태로 재빨리 귀환해버리고 만다.
3)미술가: 일부분만을 표현하고자 해도 이미 그 전체를 입체적이고 조형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4)조금만: 0과 1사이의 간격처럼, 아주 가깝지만 무한대로 멀 수도 있는 정도.
5)이면: 이면이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것에는 이미 반대의 개념(분리, 구분, 질서의 개념)이 들어 있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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