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글 나누기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아지, 우리 강아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한 개들
어느 날 사업차 술 한잔 하고 들어오던 P는 문득 자기가 ‘개만도 못한 인간들 틈에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개집으로 들어간다. P 부인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친구 K. P를 끌어내러 개집에 들어간 그 역시 ‘네 마음 내가 다 안다’며 주저앉은 채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강아지, 우리 강아지」 는 이처럼 개보다 못한 사람들 속에서 때로는 사람보다 나은 개를 통해 위안을 받아온 글쓴이의 개 이야기다. 글쓴이가 난생 처음 가져본 ‘나의 개’ 돌쇠부터, 군대 제대 말년을 함께 한 개하사, 동물원 호랑이에 놀라 죽어버린 범 무서운 줄 알았던 하룻강아지, 친구집에 빌붙어 사는 것을 눈치채고 표독스럽게 짖어대던 주인집 늑대개, 천방지축 날뛰어 온갖 심적 물적 피해는 다 끼쳤던 토토 등 다채로운 개 이야기가 펼쳐진다. 더군다나 개집에서 개와 함께 술마시고, 개도 받을 수 있는 전화가 나오기를 고대하는 P와 K같은 애견가 친구들마저 있으니 글쓴이의 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질 수 밖에 없다.

이인환의 놀랄만한 입담은 성석제표 소설을 연상시킨다. 그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진짜냐?”라고 묻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친구의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이인환 역시 “진짜냐고 묻지 마라.”고 뻑 소리를 질렀다고 하는데, 그 또한 이해된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소설가로서의 천성을 버리지 못할 것이 틀림없는 그로서는 매번 진짜냐 가짜냐를 가리는 것은 대단히 피곤한 일일 것이다. 소설가란 원래 진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이야기를 꾸미기 마련이고 나중에는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야기 한 자신도 헛갈리기 때문이다.

「강아지, 우리 강아지」는 글쓴이가 겪고 들은 개 이야기의 형식을 취하지만 흥미진진하고 능수능란한 이야기 전개, 웃음을 자아내는 유쾌한 과장 등이 잘 짜여진 한 편의 소설 같다. 이 책 역시 그저 ‘개 이야기는 개 이야기다’라고 하니 독자는 실제든 허구든 낄낄거리고 웃다가 가끔 코끝이 시큰해지는 것을 견뎌내면 될 듯하다.

마냥 웃고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이 책을 읽다가 가슴 아파지는 대목을 만나면 좀 당황스럽다. 사실 글쓴이는 그다지 감상적이지 않다. 강아지가 죽자 흥분해서 호랑이 꼬리를 잡은 때를 회상하며 그런 분노가 나이를 먹을수록 사그라들고 있음을 인정할때도, 어머니가 동생을 갖자 포기해야 했던 첫번째 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서도 그저 담담하다. 상관과의 갈등으로 자신의 개를 잃고 인간과 삶에 회의를 느꼈을 때조차도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2절까지 불러 제끼는 걸로 끝냈을 정도다. 구박하던 강아지가 죽고 나자 생선뼈나 찬밥 남은 것만 봐도 눈시울을 붉혔다는 고백이 그나마 가장 감상적이다. 그러나 이것저것 따지지 않은 순수함으로 주인을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최우선의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버려지기도 했던 개들에 대한 회상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던 사람에 대한 회상과는 또 다른 서글픔이 묻어난다.

나도 개라면 할 이야기가 많고, 친구 중에 애견가도 많지만 「강아지, 우리 강아지」의 뒤를 이어 이야기하는 것은 사양해야 할 듯하다. 어떤 이야기라도 그 뒤를 이어 이야기 하는 것은 가수 바로 다음에 노래 부르는 꼴이고 달변가의 말을 받아 말하는 꼴이 될 테니 말이다. 그래도 입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는 전염성 때문일 것이다.

비오는 날이면 길 한가운데 서서 온몸으로 그 비를 다 맞은 채 청승 떠는 개를 알고 있다.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더니 꼬리를 흔들고 소리까지 내면서 기대여 오는 개를 본 적도 있다. 홀로 내버려 두면 낑낑거리며 울어대고 무슨 일인가 해서 가보면 안심한듯 고개를 떨구는 개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외로움이나 사랑받고 싶음을 표현하는 데 이처럼 솔직한 동물이 있을까. 또 그만큼 자신의 온 사랑을 쏟아붓는 데 아랑곳하지 않는 동물이 있을까.


by 리브로
 
비즈폼
Copyright (c) 2000-2025 by bizforms.co.kr All rights reserved.
고객센터 1588-8443. 오전9:30~12:30, 오후13:30~17:30 전화상담예약 원격지원요청
전화전 클릭
클린사이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