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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이발사
우정, 망명자 같은 삶을 덥히는 따뜻한 숨결
“「피카소의 이발사」라……, 피카소가 유명하니 이제 별 사람이 다 나서는군.”
이 책을, 한 평범한 사람이 유명인과 스캔들을 내고 또는 그의 곁에서 잠깐 일하고 출판하는「내가 아는 누구 누구」라는 류의 책으로 오해해서는 안되겠다. 이 책의 저자들이 피카소의 이발사 에우헤니오 아리아스를 찾아갔을 때 그는 이런 말로 거절했다고 한다.
“피카소와 나의 우정은 우리 두 사람만의 것이오. 아주 사적인 것이란 말이오. 나는 그분 덕을 보려고 한 일이 한번도 없었고,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오.”

피카소는 아리아스의 이런 면 때문에 그를 신뢰하고 아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오랜 설득 끝에 책은 출판되었고, 「피카소의 이발사」는 살아 생전 이미 천재라는 이름으로 추앙받았던 화가 피카소의 삶과 피카소의 가장 평범한 친구였던 아리아스의 삶을 담고 있다. 피카소를 존경하는 아리아스의 시각만을 반영하지 않고 나름대로 균형잡힌 시각으로 피카소의 삶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아리아스의 진실되고 유머러스한 증언이 중간 중간 인용될 때이다. 그는 투우에 대한 피카소의 열정이라든지 조국 스페인에 대한 사랑, 수많은 여성들과의 관계, 가족과의 갈등, 작품과 미술 이야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전해주어 화려했던 피카소의 명성 뒤에 자리잡았던 고통과 고독을 짐작하게 한다.

또 새로운 피카소를 발견하는 것 외에도 평범한 한 인간의 의미있는 삶과 만나게 된다. 학교를 그만두고 어린 나이에 이발사로 일해야 했던 아리아스는 프랑코 독재에 반대하는 정치적 신념을 유지했던 자신의 삶 이야기도 들려준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면서도 흔들리지 않은 소신 있고 낙관적인 목소리, 많은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유와 열정을 잃지 않은 그의 목소리는 피카소를 사로잡았듯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성장 환경이나 여인을 사랑하는 방식 등 여러 면에 있어서, 괴팍한 천재였던 피카소와 성실하고 합리적이었던 아리아스의 삶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렇듯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의 교류는 단단한 벽 틈새에서 자라나는 한 포기 풀처럼 경이롭다. 그들의 관계는 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스페인에 돌아가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살아야 했던 망명자로서의 삶을 함께 나누면서 더욱 깊어졌지만 모든 우정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리라. 삶이 망명자의 그것처럼 여겨질 때 바로 내 곁에 있음을 알리는 누군가의 따뜻한 숨결 같은 것 말이다.

아리아스는 피카소의 모든 것을 헤아렸고, 세계 주요 도시 어디에나 자신의 작품이 걸려있지만 시골 마을들은 텅 비어 있다고 아쉬워하는 피카소 생전의 말을 기억해 피카소로부터 선물받은 작품들을 모아 자신의 고향에 피카소 박물관을 세운다. 피카소 작품 한 점이면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백지 수표를 주며 작품을 팔라고 했을 때도 그는 응하지 않았다.

훗날 독일의 한 텔레비전 기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오. “아리아스 씨, 저는 전 세계의 박물관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곳은 처음입니다. 여기는 예술과 우정의 박물관이니까요.” (p.232)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한정된 한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필 수 있는 것이 예술만이 아님을 「피카소의 이발사」는 한 평범한 이발사의 삶을 통해, 그와 피카소와의 관계를 통해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by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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