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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 홈
엄마, 엄마가 생각하고 있는 모든 죄의식들을 용서해드릴게요
어떤 이야기들은 종종 겉껍질에서부터 우리에게 특정한 감정을 맛보기를 종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해외 입양 한국인 여기자의 뿌리 찾기’라는 부제가 전해주는 또렷한 메시지는 「커밍 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말 그대로 부제일 뿐, 책을 펴서 전반을 읽기 전까지‘울어 줄 준비’가 된 우리의 기대를 자꾸 저버린다. 김지윤이라는 고운 한국이름을 가진 7 살배기 꼬마는 1977년 미국으로 입양되어 케이티 로빈슨으로 살게 된다. 공항에서 모든 입양아들이 겪는 것처럼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낯선 이국 땅, 피부색이 다른 부모를 만나러 떠났던 날부터 1997년 친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오면서 본격적으로 뿌리 찾기에 들어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가고 있다.
그녀의 양부모는 동양계든, 흑인이든 유색인종이라고는 없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살고 있는 로빈슨 부부였다. 생면부지의 남의 나라에서 케이티가 처음 겪게 되는 무서움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주는 캄캄한 단절감이었다. 언제라도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어린 케이티는 생애 최대의 발작을 일으키며 ‘여기서 당장 죽어버릴 거야’라고 협박까지 한다. 그러나 그녀는 곧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빨리 한국말을 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후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극구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자신이 입양아처럼 보이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고, 미국 가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믿으며 그들의 성격과 습관까지 흉내냈었다. 그러나 외모는 물론 성격도 가족들과 판이하게 달랐던 그녀는 다시 혼자만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가족이라는 안락한 존재감을 어디서건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뿌리 찾기, 근원에 대한 물음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열망이다. 그녀는 그 뿌리라는 것이 고작해야 ‘과거의 환영’이라 부르는, 엄마가 머리를 매만져 주던 어린 시절의 짧은 기억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짧은 기억들이 주위를 맴돌고 그녀는 지치지도 않고 그 따뜻한 영상이 자신의 몸을 감싸는 상상을 한다. 케이티는 엄마를 찾기 위해 1년간 남편 존과 함께 한국에 머무른다. 돌아온 한국 땅, 다시 찾은 가족들은 행복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는 이미 일흔이 넘은 노인네였고 한국 땅에서 결혼을 세 번 한 인물로 많은 사람들과 척을 지고 살고 있었다. 케이티에게 다시 만난 아버지는 가부장적 가장으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려는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다. 그녀에게 이제 완벽한 아버지 상은 사라져버렸다. 책의 후반부는 계속해서 종적이 묘연한 친 엄마를 찾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죽었다고 절망하기도 했으나 케이티는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시카고에 살고 있다는 풍문을 들은 채 케이티는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케이티는 자신의 회상록에서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모국을 따끔하게 나무라고 원망하고 있지도, 낯선 땅에서의 생활이 상상만큼 혼란스럽지도 않으며 슬프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막 입양을 와 엄마와 할머니가 그리워 거의 죽을 듯이 악을 써대는 어린 시절을 기술하는 책의 앞부분에서도 눈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노인네가 된 아버지를 만나 눈물의 상봉을 하지만 희한하게 우리의 눈물샘을 터놓고 자극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눈물을 훔치는 대목마저 건조한 묘사로 일관한다. 미국에서 언론단체가 주는 상을 여러 번 받은 전적이 있는 기자라는 직업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녀의 담담함이 오히려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그것은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씌워진 상처에 대한 자기 방어적 본능이 아닐까.

그녀는 이제 이 뿌리 찾기에서 가족의 소중함과 미국에 있는 양부모의 가족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심리적으로 거부해온 미국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의 비극적 해체. 그녀는 구성원간 애증이 교차하는 그 가족과 화해할 것을 결심한다. 이 책의 뛰어남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생각하듯 뿌리 찾기를 미화하지 않는다. 상이한 두 문화를 가로질러 그녀가 도달한 곳은 완벽한 가족은 없다는 것이다. 완벽한 뿌리도. 머지않아 자신도 아이들에게 의심받을 수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가족과 정체성의 갈등에서 생기는 상처를 돌보는 보편적 시선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이 잡고 있던 짧은 환영을 놓아준다.


by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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