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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 |  | |
| 정원은 나만의 소왕국이 아니랍니다
원예가를 두고 계절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의 정원에서 나지막한 협주곡을 들으며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아침 일찍 새소리에 깨어 아직 이슬도 마르지 않은 싱싱한 꽃을 한아름 잘라와 꽃만큼이나 상큼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라 꿈꾼다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원예가는 기꺼이 흙에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꽃을 감상하기보다는 땅에 코를 박고 있기를 즐기며 하루에 몇 마리의 해충을 잡았는가를 보람으로 삼는다.
「나는 작은 우주를 가꾼다」를 쓴 다이앤 애커먼은 전문적인 원예가는 아니다. 그녀는 문학상까지 받은 시인이자 수필가이고 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문사회학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이쯤되면 원예가라는 타이틀을 땅에 떨어진 모자를 주어 쓰는 것 마냥 쉽게 볼 수도 있겠다. 원예라는 게 정말 그럴싸한 취미로 비춰질 수도 주겠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원예가라면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의 탈을 쓰고 있긴 하지만 모든 원예가는 전문적일 수밖에 없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원예가들의 열정은 한결같이 편집증적 징후를 가지고 있다. 모든 일은 원예와 정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차를 선택할 때도 식물을 나르는 데 괜찮은가를 먼저 살피고 조금이라도 괜찮은 식물을 발견하면 몇 개월이 걸리더라도 꼭 자기 정원에 옮겨 놓고야 마는 대단한 집착을 보인다. 허나 그 집착은 다른 생명들도 함께 돌보는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정원을 망치는 벌레이지만 그들의 생명 또한 보호하기 위해 애를 쓴다. 120그루마다 매일매일 꽃의 숫자를 세어볼 정도로 장미를 사랑하는 그녀이지만 교미중인 여섯 마리의 왜콩풍뎅이가 막 피어난 장미를 갉아먹고 있는 걸 보면 아예 꽃을 따버린다. 원추리를 늦게까지 보고 싶은 맘에 ‘펀드에 돈을 넣는 심정’으로 정원에 계속 투자하는 애정은 흡사 아이를 키워내는 것과도 같다. 떡잎이 날 때부터 꽃 한 송이를 피우기까지 물심양면으로 거들어주고 지켜봤는데 어찌 집착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에 욕심부리는 거에 비하면 오히려 원예는 ‘인생의 집착을 치료하는 약 중의 하나’다.
정원을 가꾸는 일은 스스로를 가만있게 하지 못하는 일이다. 무작위로 자라는 것에 질서를 부여하고 정돈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때로는 원예가 자신뿐만 아니라 식물들을 못살게 구는 데까지 나갈 수 있다. 이때 원예가는 병적인 편집증을 보이는 열정적인 독재가의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실패를 겪으면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원예의 목표이자 장점의 하나라고 그녀는 말한다. 땅은 정직하다는 것, 결국엔 모두 흙먼지로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 때문에 그녀의 정원은 잘 정돈되어 있기보다는 그저 눈에 띄는 아주 억센 잡초만 걸러내는 잡다하고 어지러운 정원에 속한다. 정원은 결코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조성되었다 할지라도 방랑하며 성장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정원의 속성을 인간의 손이 결코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우리를 넓은 곳으로 연결시키고 인도해준다. 정원을 두고 ‘작은 우주’라 한 그녀의 표현법에 박수를 보낸다. 정원은 나만을 위한 소왕국이 될 수는 없다.
책의 부록으로 실린 목록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2000년 9월 다이엔 애커먼이 심은 식물들〉이라는 데 봄꽃을 제외하고도 수백 종에 이른다. 찻길 옆 화단, 사과나무 밑, 수영장 쪽 양지, 서재 앞 등 사유지라는 테두리에 들만한 데는 온통 씨를 부리고 가꾸었다. 이게 과연 진짜일까. 이토록 많은 종들을 어울리게 가꾸는 일이 가능이나 한 걸까. 놀러가고 싶어진다. 빼꼼이 벌어진 틈이라도 있다면 외눈으로라도 엿보고 싶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암적인 존재이다”. 어떤 공상과학영화에서 외계인이 했던 말 같다. 그 말은 우주괴물과 비행선이 총출동하는 비현실적인 영화 안에서 이상하리만치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자리하는 곳마다 동족 외의 것들을 결국 초토화시켜 버리고 마는 유일한 종이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구 생태계에서 하나의 생물체인 인간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너무 비장하고 부정적인가. 사실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서 계속 다른 생명체의 삶을 위협하고 터전을 파괴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정원이 다시 태어나는 든든한 달, 5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방구에서 꽃씨 봉지를 달그락거리며 플라스틱 물조리개를 들고 내 땅 남의 땅 할 것 없이 흙만 보인다면 심어대리라. 이번엔 기쁨에 겨워 눈물을 삼키며 다이앤 애커먼의 ‘작은 우주’를 흉내낼 것이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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