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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 |  | |
| ‘진정한’ 마키아벨리스트의 길은 멀고 험하다
현직 대통령에 관한 것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과정을 복기해 보자. 노무현 대통령(당시 민주당 후보)이 이회창, 정몽준 후보에 밀려 고전하고 있을 때 최후의 카드로 꺼낸 것이 바로 ‘후보 단일화’였다. 당시 많은 노 후보 지지자들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하느니 차라리 ‘선명’ 야당을 하자며 후보 단일화를 반대했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1987년 양김의 분열에서 보듯 정치 세계에서 단일화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회창 후보측은 당연히 ‘야합’이라는 비난 성명을 쏟아냈다.
하지만 결국 노-정 단일화는 이루어졌고,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례가 없는 여론조사 방식, 선거 하루 전날 지지철회 등 정치사의 ‘진기한’ 기록을 세우기는 했지만 여하튼 후보 단일화가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 책「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의 저자 김욱은 이 점에서 노 대통령은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즘의 요체가 ‘나쁜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할 때 원칙과 신념에는 맞지 않을지언정 과감히 후보 단일화를 추진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는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어 낼 때 ‘진정한’ 마키아벨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즘에 입각해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과거 한국 대통령들의 집권 과정 및 그 이후를 분석한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자. 저자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애초에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이 없었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었다. 다시 말해 김 전 대통령은 개인적 욕망의 대상으로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이며, 군주로서가 아니라 사적 개인으로서 존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가 아니었다. 3당 합당, 퇴임 후 극우적 발언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는 어떨까? 이승만은 친일파 기용 등 권모술수를 헌법 제정 권력의 정당성이라는 ‘좋은 목적’이 아니라 미국의 관심을 끌어내 대통령이 되려는 ‘사적 목적’에 사용했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즘과 맞지 않는다. 진정한 마키아벨리즘은 공동체를 위한 좋은 결과를 이루기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지 개인의 사적인 이익이나 나쁜 목적에 사용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비 마키아벨리즘은 좋은 목적 없는 나쁜 수단일 뿐이다. 사익만을 극대화시키거나(이승만, 김영삼 전 대통령) 좋은 목적으로 흐르다가도 나쁜 목적으로 바뀌어 버리는(박정희 전 대통령) 것이 그 예다.
마키아벨리가 ‘나쁜 수단이라도 좋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괜찮다’라고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도 ‘좋은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현실을 관찰한 결과, 인간의 본성상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군주론」에서 한 말을 직접 들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행위, 특히 군주의 행위에 관해서는 모두가 결과만을 주목한다. 그래서 만약 군주가 정복과 국가유지에 성공하면 그의 수단은 언제나 명예로운 것으로 판단되어 어디서나 찬양받는다. 왜냐하면 군중은 언제나 외양과 결과에 현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중이 세상의 전부다.”
강준만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마키아벨리가 유난히 욕을 많이 먹는 이유가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조금 더 다듬자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마키아벨리가 유난히 욕을 많이 먹는 이유는 사이비 마키아벨리스트들이 마키아벨리즘을 참칭하고 호도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국제정세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도 국익 대 명분, 실용주의 대 이상주의가 충돌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꽤 크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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