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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또노미아 |  | |
| 코뮤니즘의 꿈은 계속된다, 자율은 영원하다!
조정환은 무엇보다 먼저 네그리를 맑스주의에서 뿌리깊게 남아있던 생산력 객관주의를 비판했던 주체성의 계보학자로 그려낸다. 사회구성의 힘을 주체적 변형의 힘에서 찾기 보다 주체를 소거한 물질적 총합으로 이해했던 생산력 객관주의와 달리 네그리는 가치척도로 규정될 수 없는 산 노동의 힘, 활력이 사회를 구성한다고 생각한다. 조정환은 알튀세르조차 누가 호명하는가에 따라 다른 주체성을 갖는다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로서 주체를 사고했던 또 다른 객관주의라고 지적한다.
자본의 주도하에 사회가 이런 저런 모양으로 변화되고 노동은 그러한 변화를 잘 읽고 그것에 대응하거나 저항한다고 인식하던 객관주의적 시각은 네그리에게서 전복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꼬뮤니즘으로의 이행을 ‘물질적 재전유’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다음 단계에 도래할 것으로 사고하는 전통적인 시각에 수정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제 꼬뮤니즘으로의 이행은 주체성의 변형, ‘영원하게 - 되기의 과정’이 된다. 조정환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한다.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다중에 의해 창조되는 (절대적인) ‘자유롭게 되기’이다.”(P.263)
「제국」이 불러 온 가장 큰 논란거리 중의 하나는 과연 ‘제국주의인가, 제국인가’ 하는 것일 게다. 제국주의의 대두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내이션〓스테이트의 강화를 가져온다. 지난 세기 민족해방 운동을 보면 그것은 분명하다. 네그리는 제국주의가 이런 저항들에 직면하여 오늘날 초국적 제국으로 자신을 촉성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외부가 없는 통합된 세계자본주의체제, 자본의 탈영토화, 초국적 사법권력의 영향력 증대, 세계를 대상으로 무력을 행사하는 전 지구적 경찰력의 등장 등등 제국의 형상을 예시하는 것들은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네그리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주권적 형식을 넘어 촉성되는 다중들의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의 증대에 의한 ‘다중지성’의 출현이다.
네그리의 사상은 종종 아나키즘이라고 비난받아왔다. 네그리 스스로 아나키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적 아나키즘이 취했던 태도들 가령 반집단주의적 개인주의, 반생산력주의, 자생주의적 신화에 반대했다. 그러나 조정환은 네그리가 그것에 반대하는 대신 집단적 해방, 생산력들의 비국가적 공통계획, 급진적 유물론을 긍정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나키즘과 맑스주의간의 간격은 주의주의(主意主義)에 사로잡힌 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멀지 않고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한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는 가운데 세계는 침묵 속에 빠져들고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한 시대에 와버린 듯하다는 암울한 전망이 있었지만 결국 씨애틀 투쟁이 저항의 불꽃을 당겼다. 씨애틀 투쟁을 전후해 운동의 새로운 주기가 열리고 있다고 전망한 네그리는 그의 말처럼 새로운 주기의 가장 주목받는 사상가가 된 듯 하다. 조정환의 「아우또노미아」는 네그리의 정치학과 윤리학적 측면을 다루고 있어 아직 한국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그의 사상에 종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고 있다.
“네그리의 생각은 결코 완결되고 닫힌 체계가 아니다(…) 네그리는 맑스를 통해 맑스를 넘어서 나아간다. 우리 역시 네그리에 의지하면서 그를 넘어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인류의 삶이 계속되는 한 필연적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곳에서 인류의 집단적 자율의 꿈, 코뮤니즘의 꿈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자율은 영원하다.”
by 리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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