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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하기에 택했던 좁은 길´ |  | |
| 미국 서부 오레곤중서 제재소를 하며 유복하게 살던 홀트 부부는 1956년 6.25전쟁 고아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우리부터 이 아이들의 부모가 돼 주자!˝ 하는 생각에 낯선 코리아의 고아 8명을
입양했습니다. 입양 초기에 한 아이가 너무심하게 아파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가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
을 했습니다. ˝유전병입니다.˝
그 말에 홀트 여사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우리 집안에는 그런 병이 없는데요.˝
그 아이가 입양아였다는 사실조차 잊어 버린 채 아이를 사랑하는데 전력을 다한 홀트 가족, 그렇게 시작
한 입양 사업은 58년 ´홀트씨 양자회˝라는 사회단체를 낳았고, 다시 홀트국제아동복지회로 발전해 40여년
간 세계 10개국에 한국고아 7만여명을 입양시키고 국내에서도 1만 7500명에게 새 가정을 찾아줬습니다.
홀트 여사는 공동설립자인 남편 해리가 64년 사망한 뒤 홀트아동복지회를 이끌었고, 아흔살 노구에도 입
양된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반드시 손수 축하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조깅을 하며 건강을 지킨 것도 아이들을 좀더 오래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홀트 여사가 아이들을 남
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그 소망대로 일산 홀트 타운에 시신을 맡기는 홀트
의 한국 사랑은 대를 이어 계속되었습니다.
홀트 가문의 둘째딸 말리 홀트는 56년 한국에 와 40여년간 독신으로 지내며 홀트 일산복지타운에서 장애
인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홀트여사는 전 재산을 한국의 고아와 장애인을 위해 썼고, 전세계 입양아
들이 보내준 선물과 낡은 조각이불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가장 큰 자랑은 95년 한국 정부가 수여
한 국민훈장무궁화장이었습니다.
사랑하기에 택했던 한국행.
낯설고 물설은 이땅에서 홀트 가문이 피워낸 사랑의 향기는 수많은 한국 고아들의 가슴에 넓고 큰 길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낮은울타리 레인보우채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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