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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때묻은 할아버지 007가방 |  | |
|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굉장히 늦게 중간고사를 치룬다. 10월 20일날 부터 시작한다.
친구와 함께 독서실에 갔다가 11시 넘어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여는 순간 문자가 왔다.. 동생이였다...
<언니..어디야 빨리 와
엄마 오셨어..할아버지
돌아가실것 같데ㅠㅠ>
대문을 열다가 손이 멈췄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것 같다......
난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사이가 좋지 않은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내가 싫어했다. 우리가족은 내가 7살때부터 작년까지... 그러니깐 거의 10년동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처음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여느 집안 손주들처럼 엄마 아빠 나가셨을땐 무서운 맘에 동생과 함께 할아버지방에 들어가 티비 를 보며 잠들기도 했고..
할아버지께서 과자를 사오시면 거실에서 뜯어놓고 같이 먹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원래 할아버지 성격이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시고 까다로우셨는데 치매와 겹치니 정말 너무 힘들었다.
물론 나와 동생은 힘들게 없었지만 엄마가 너무 힘들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싫어졌다..
할아버진 편지가 오면 방안 어딘가에다 두시고는 한참후에 그 편지가 어디에 있는지 까먹고 엄마가 가져갔다느니 그런 식으로 엄마를 의심하곤했다. 처음엔 아빠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몇달이 지나도 계속 모든걸 엄마에게 떠넘기니 나중엔 아빠도 할아버지와 말싸움도 하시고 그랬다..
이때까지만 해도 약간의 건망증? 비슷한 증상뿐이 였지만 한번은 밖에 나가셨다가 다른 동네로 가셔서 내가 찾으러 갔었던 적도 있다.
난 그런것들 모든게 다 귀찮았고 10여년동안 집에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시달리기만 한 엄마가 할아버지를 모시는건 당연한 거라고 그런 말을 할때마다 할아버지를 싫어하는 마음은 점점 커져만갔다.
할아버지랑 같은 집에 있는게 싫다고 친구네 집에서 자기도 했다. 아빠한테 할아버지가 안나가면 내가 나가겠다고 하고... 거실에서 티비 보다 할아버지가 나오면 방으로 들어가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후회되는 일밖에 없다...
그런식으로 몇달이 지난후(2002년 가을쯤..) 결국 할아버지는 치매환자들이 있는 병원으로 가셨다.. 동생과 엄마 아빠는 자주 찾아갔지만 난 딱 한번...이번 설날때 갔었다. 그러고 몇달후 할아버지 상태가 더 좋아지지 않아서 아빠 친구분의 소개로 일산쪽에 있는 요양원으로 가셨다.
할아버지가 요양원으로 옮기셨을 때도 난 가지 않았다. 죄책감..때문이라고 해야하나?? 얼굴을 뵐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동생이 안방에서 할아버지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보더니 울면서
˝언니 이것봐..˝
라고 했을때... 얼핏 보인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눈물이 났지만 차마 동생앞에서 울지 못해 신경질만 내면서 방으로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
아빠는 계속 나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난 학원 때문에 안된다느니 약속 있다느니 여러가지 핑계를 대고가지 않았지만...추석땐 핑계거리가 없었다.. 할수 없이 동생과 아빠와 난 요양원으로 향했다.
아빠는 요양원 근처 슈퍼에 차를 세우시더니 나한테 할아버지 드릴 간식거리를 사오라고 했다. 난 지갑에 5000원이 있었지만 돈없다고 아빠한테 돈달라고 막 짜증냈다.
요양원에 도착하고 문이 열렸는데 솔직히 무서웠다.. 요양원 아줌마는 아빠와 친하신지 반갑게 맞이 해주셨고 나를 보며
˝아...니가 수진이구나˝ 라고 하셨다..
아마도 아빠가 내 얘기를 한것같다...데리고 오고는 싶은데 통 오려하지 않는다고.. 나랑 동생은 쇼파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아줌마 두분이 끝방에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끌고 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진 너무 말라서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설날때 봤을 때랑은 너무나도 틀렸다.. 뼈밖에 없다는 말이 딱이였다....
아줌마들이 계속
˝할아버지 수진이 왔네.. 누군지 알겠어요?˝
하고 물어보는데도 할아버진 말도 못하고 그냥 해맑게 웃으면서 쳐다만 보고있었다.. 이젠 말도 잊어버리셨나보다...
아빠가 계속
˝아버지..얘네 누구야?? 나는 누구야?˝
하고 물어봐도 모라고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웅얼 거리는게 끝이였다.. 그래도 계속 웃고 계셨다.. 지금은 그때 상황이 가슴 아프고 그렇지만 그땐 너무 당황을 해서 아무 얘기도 할수 없었다. 그저 과자를 한개씩 집어서 드리기만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과자를 드시고 나랑 동생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30분정도 지난후 우린 갈 준비를 했다. 우리가 일어나서 가려고 하자
˝언..언제 또 오는데?˝
하고 너무나도 또렷하게 말을 하셨다.. 그전까진 아무말도 못하시더니... 아직도 생각나는 말이다..
[ 언제 또 오는데..... ]
그말을 듣고 나서 아... 다음부터 아빠가 오자고 하면 따라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곧 올께요..˝
라는 말을 하고 우린 집으로 왔다..
그리고 나서 1주일이 지난 수요일 할아버지께서 위독하다는 말을 듣게 된거다.. 엄마 아빠께 나도 같이 병원에 가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또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진아.. 지연이랑 같이 병원에 와야겠다..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동생과 나는 8시가 거의 다되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실감 같은 거...전혀 나질 않았다.. 영정사진이 왔지만... 그냥 ... 어디에선가 계실것만 같았다..
고모랑 아빠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것을 이미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울지 않으셨다..
그날 저녁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음식을 나르느냐고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새벽 2시쯤 사람들이 다 가고 가족끼리 남아서 할아버지 짐을 정리했다.. 여러가지 정리하다 그 007가방 같은 거 있지 않은가..
그가방 암호를 풀어서 열고 그 안에 있던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서류들 사이에 사진 3장이 나왔다.
1장은 아빠 어렸을때 사진 1장은 누군지 잘모르겠고 나머지 1장은....
애기였을때 내 사진이였다...
눈물났다..
내가 할아버지한테 못되게 대했을 때 할아버진 그 사진을 보며 그때를 그리워하시진 않았을까....
차마 가족들에겐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화장실에가서 엄청 울었다.. 3일밤 내내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울었다... 무엇보다도 제일 가슴을 아프게 했던건
[ 언제 또 오는데 .... ]
이 말이였다... 정말 가려고 했는데... 과자도 엄청 많이 사가려고 했는데...
3일밤을 새고 나서 우린 화장터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뼈가 나왔을 때도 실감같은 건 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아빠 엄마 동생 모두 그랬다... 화장할때랑 염할때 잠깐 보인 눈물 빼고는 우린 모두 평상시와 같이 웃고 떠들고 했었다..
그렇게 난 쉽게 할아버지에 대한 슬픔을 잊을수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할아버지가 자주 사오셨던 생과자, 롯데샌드를 보거나 할아버지 비슷하게 생긴 분들을 보면 눈물이 막 난다..
아까도 독서실 갈때 생과자를 파는 트럭이 있었는데.. 진짜 길거리에서 울뻔 했다...
정말...있을때 잘하라는 말...하나도 틀린거 없다.. 지금 이렇게 울고 막 해봤자... 다 소용 없는 일 아닌가....
이글을 보고있는 분들 중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으신분 있으면 지금이라도 잘해드리라고 말하고 싶다...
[김수진/국민일보 오늘의 명품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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