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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내기


[송성순 님]

저는 시어머니와 늘 내기를 합니다. 승부라기에는 좀 거창하지요. 남편은 십 남매에 일곱째로 장남이지

만 교직에 있느라 전근이 잦아 어머님을 모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님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만 치매에 걸리셔서 ‘이제는 정말 모셔야겠구나’ 깜짝 놀란

마음으로 어머님을 모시게 되었지요. 어머님이 아파트 우리집으로 오시던 날, 어머님은 집에 돌아가겠다

며 현관문에 찰싹 달라붙으시더니 말리는 제 손을 물고 때렸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날마다 작은 소동

이 일어났습니다. 베란다에서 경비 아저씨만 보이면 손수건을 흔들며 “경찰나리, 나 좀 구해 줘요” 소리

치시기도 여러 번, 아무 데나 물고 때리시니 제 팔과 손등이 온통 푸른 멍투성이였습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병세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저는 꾀를 내었습니다. 정신을 집중하실 수 있는 소

일거리를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먼저 동전들을 작은 가방에 가득 넣고 얼마인지 세 보시라고 했습니다.

또 검은 콩과 노란 메주콩을 섞어 두고 가리기시합도 합니다. 물론 승자는 늘 어머님이십니다. 아이처럼

상장 달라고 조르는 어머님을 위해 초코파이와 찹쌀떡을 준비합니다. 종이에는 “조순덕 씨는 콩 가리기

대회에서 일등을 해, 그 공을 높이 인정하여 상장을 줍니다”라고 쓴 뒤 ‘짝짝짝’ 박수 치며 건네 드리면 효

과가 한나절은 너끈히 갑니다. 오후에는 운동 겸 밖에서 내기를 합니다. 산책로 주변 목련나무에 색동 양

말을 달아 두고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갖는 걸로요. 어머님은 아파트 한 바퀴를 빙 돌아가기로 굳게 약속

하고는 반칙을 하십니다. 놀이터로 질러가 신었던 양말은 벗어던지고 상표도 안 뗀 색동 양말을 신고 참

으로 좋아하시지요.

처음 어머님을 모셔 왔을 때는 마음대로 외출도 못하는 제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주어진 삶을 감사해 하며 어머님과 함께합니다. 어머니는 이제 콩 가리기 내기에 싫증 나셨는지

“성님, 우리 밭 메러 가요”라며 호미 찾아 베란다로 나가십니다.

비 오는 날은 유난히 떼를 쓰십니다. 그럴 때면 저는 장롱 안 옷들을 모조리 꺼내 흩뜨려 놓습니다. “어머

님, 이거 잘 개어 놓으세요. 상으로 애호박 부침개 해 드릴게요.” 호박을 썰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며

포도주 두 잔을 따라 놓습니다. 부침개 안주 삼아 어머님과 서러운 맘이나 달래 보려고요. 내 마음의 평화

는 이렇게 찾아옵니다.

[월간 좋은 생각1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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