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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판사´ |  | |
| 2억 기부 주선한 ´아름다운 판사´
30명 피고에게 부당이득 사회환원 권고
6개월새 2억1050만원 불우 이웃에 전달
안녕하세요. 사회부 경기취재본부에서 남부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이태훈기자입니다. 따스한 성탄절 보내셨나요. 오늘은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기부를 권고하는 한 판사의 얘기를 나눠드리려 합니다.
무보험 차량에 치어 전신불구가 된 한 중학생의 가족은 최근 500만원의 성금을 받았습니다.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에 가족이 사고 뒤 치료비로 지출한 돈만 4000여만원, 보험도 못 들고 차를 몰았던 운전자는 제대로 된 보상을 해 줄 형편도 아니었고…. 이런 가운데 소년의 가족에게 전달된 500만원은 겨울 첫눈처럼 반가운 ‘선물’이었습니다.
중증 소아당뇨병을 앓고 있는 손녀(7)와 손자(9)를 혼자 키우는 정모(여·64) 할머니도 최근 200만원을 받았습니다. 반 지하 월세방에 살며 한 주에 세번씩 손녀에게 인슐린 주사를 맞혀야 하는 정 할머니에겐 세상 어떤 황금보다 소중한 ‘거금’이었습니다. 노숙자에게 생명과 같은 밥을 지어줄 돈이 부족해 운영난에 시달리던 성남 ‘안나의 집’ 신부님도 최근 700만원을 전달받았습니다.
이 ‘선물’을 주선한 사람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수원지법 성남지원 은택(殷澤·41·사시 36회) 판사입니다. 은 판사는 지난 6월부터 사회 불특정 다수를 피해자로 볼 수 있는 재산범죄 피고인중 ´실형 선고는 가혹하지만, 집행유예 선고나 사회봉사 명령만으로는 너무 관대하게 여겨질´ 피고인에 대해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기부 의사를 묻고 있습니다.
가짜 명품을 만든 상표법 위반사범, 카드불법할인(속칭 ‘카드깡’)같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사범, 개발제한구역내 건축물 불법 용도변경 사범 등등의 경우지요. “어려운 이웃을 불특정 다수 피해자의 대표로 생각하고 용서를 구하라”는 의미이자, “기본적으로 동종 전과가 없거나, 죄질이 나쁘지 않고 실형을 선고할 만큼 사안이 중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범죄로 취득한 이득을 사회에 환원시킬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교통사고 중학생 가족에게 전달된 돈은 경기도 하남의 그린벨트내 축사를 공장으로 불법 용도변경했다가 적발된 피고인이 내놓은 돈의 일부였고, 정 할머니에게 전달된 돈은 9000만원 상당의 카드깡을 하다 검거된 피고인이 내놓은 돈의 일부였습니다. 물론 피고인의 자발적 의사를 절대 존중합니다. 기부 대상 선정에도 판사는 절대 관여하지 않습니다.
은 판사는 지난 6월말부터 이런 ‘기부 권고’를 시작했고, 9월 그 이야기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을 때까지 모두 14명의 피고인이 부당하게 번 돈 1억 3000여만원을 기부했었습니다. 그리고 연말인 지금, 선뜻 돈을 내놓은 피고인이 23개 사건에 30여명, 금액은 2억 1050만원으로 늘어났습니다.
이 돈은 모두 경기도내 50여곳 사회복지시설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됐구요. 은 판사는 “피고인들도 이 기회에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 죗값을 치를 생각이 드는 것인지, 액수를 조금 줄여달라는 사람은 있어도 싫다고 고개를 젓는 사람은 없었다”며 웃었습니다.
이쯤에서 혹시 ‘이중 처벌’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은 판사는 이에 대해 “피해자를 특정하기 힘든 범죄 피고인에 대해 ‘피해자의 합의 여부’와 같은 범죄 후 정황을 살피도록 한 형법상 양형(量刑) 조건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현행 형법 51조(양형의 조건)는 “형(刑)을 정함에 있어 다음 사항을 참조해야 한다”며 범인의 연령, 성행(性行),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4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상해·사기사건 등의 경우, 피해자와 합의 여부가 양형의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은 판사는 이중 4번째 ‘범행 후의 정황’을 적극적이고 폭넓게 해석한다면, ‘피고인이 사회적 신뢰를 법익(法益)으로 하는 범죄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기부’로써 부당 이득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의지가 있는가’를 살피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불우한 이웃들이 사회 일반의 피해자 대표로써 합의를 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권고하는 기부 액수 결정에도 솔로몬의 지혜가 요구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상표법 위반이라 하더라도 죄질이 나쁜 경우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습니다. 사회 환원 문제 이전에, 범죄의 근절이 더 중요한 범죄라면 당연히 실형을 선고한다는 것이죠. 은 판사는 불법 건축물 용도 변경이라면 영업 기간, 폐기물 매립법 위반이라면 규모, 카드깡이라면 액수 등을 포함한 사건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권고액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피고인이 선뜻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은 판사는 “공권력은 여지껏 보호보다 억압·규제의 수단으로 인식돼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아직은 작은 ‘싹’에 불과하지만,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부당 이득금의 사회 환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은 판사를 인터뷰하며, 저는 서민들에게 아직 높고 멀어만 보이는 법원의 판사석이 조금은 가까워진듯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이웃들처럼, 독자 여러분의 마음도 조금은 따뜻해지셨습니까.
(이태훈 드림 libra@chosun.com/조선일보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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