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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므와 재재 (배익천 )
큰절에서 십 리나 떨어져 있는 작은 암자 백련암에는 큰스님 한 분만이 계셨습니다.
워낙 깊은 산 속에 있는 암자라 사람의 그림자라곤 한 달에 한 번 어른거릴까 말까 했습니다. 그것도 동자승 재재 때문이었습니다.
동자승 재재는 벙어리였습니다. 큰절에서 심부름을 하는 재재는 ´재재´라는 말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스님들이 재재라고 불렀습니다.
재재는 가끔씩 큰스님에게 필요한 것을 갖다 드리러 갔는데, 아침나절에 길을 나서면 저녁 나절에야 암자에 도착했습니다.
순전히 옹달샘 때문이었습니다.
큰절과 암자 중간쯤의 커다란 떡갈나무 곁에 있는 옹달샘은 봄.여름.가을.겨울, 재재가 갈 때마다 한사코 재재를 붙잡았습니다.
떡갈나무 곁에 있는 옹달샘 속에는 늙은 비단 개구리가 한 마리 살았습니다.
재재의 기억으로는 삼 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양 그 크기로 한 마리만 살았기 때문에 그냥 늙은 비단개구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므므므므.
비단개구리는 네 다리를 쫙 펴고 물 위에 몸을 반쯤 드러낸 채 므,므,므,므 하고 울었습니다.
꼭 그쯤에서 목이 마른 재재는 물을 마시려고 옹달샘에 얼굴을 갖다 대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비단개구리 한 마리가 그런 모습으로
´므므므,´
하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재재가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얼굴을 옹달샘에 바짝 들이댄 채 재재가
˝재재! 재재!˝
하고 턱을 주억거리면, 늙은 비단개구리는 까만 눈을 말똥거리며
˝므므므므!˝
하고 울었습니다.
˝내 이름은 므므야, 므므, 므므!˝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재재는 들을 수 없고,
˝재재, 재재!˝
저리 비켜, 저리 비켜 하고 아무리 재재가 턱을 주억거려도 므므는 비킬 줄 모르고, 한 나절도 안 걸릴 십리 길을 재재는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이 녀석, 안 되겠구먼!´
턱을 주억거리던 재재가 땅바닥을 짚고 있던 두 손을 쳐들어 비단개구리를 건져 올리려고 하면 어느 새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군!´
재재는 므므를 후후 불면서 물을 마셨습니다.
개울이 허옇게 바닥을 드러내도 옹달샘은 마르지 않고, 온 산에 하얗게 눈이 쌓여도 옹달샘은 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겨울, 사방 천지가 꽁꽁 얼어도 옹달샘에는 므므가 네 다리를 쫙 펴고 므므, 므므, 울었습니다.

므므는 재재를 만나는 것이 제일의 기쁨이었습니다.
므므는 산 아래서 올라오는 재재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므므는 재재를 좋아했습니다.
냄새나는 비단개구리가 산다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샘물을 겨울이나 여름이나 벌컥벌컥 마셔 주는 재재가 너무 너무 좋았습니다.
므므는 재재를 위해서 옹달샘을 가꾸었습니다.
찌꺼기가 가라앉으면 풍덩풍덩 헤엄을 쳐 구정물을 만들어 흘려 보내고, 낙엽이 쌓이면 한 잎 한 잎 입으로 물어 바깥으로 꺼냈습니다.
옹달샘은 언제나 깨끗했습니다.
재재가 오면 어느 때나 얼굴을 맞대고 벌컥벌컥 마실 수 있도록 깨끗했습니다.
˝여긴 너희들이 오는 데가 아니야.˝
어쩌다가 실지렁이나 도롱뇽이 슬금슬금 기어 들어오면 점잖게 타이르며 내쫓았습니다.
˝조심해서 떨어져야지.˝
커다란 떡갈나무에서 조그만 도토리가 떨어져 담길 때도 므므는 점잖게 말하며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재재가 오지 않는 날, 청소를 끝낸 므므는 옹달샘에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알록달록한 등을 떡갈나무 잎사귀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쪼이거나, 홍시빛 배를 하늘로 올려놓고 그 햇살을 받기도 했습니다.
˝므므가 심심한 모양이야.˝
해님은 햇빛을 주고, 달님은 달빛을 주고, 별님은 별빛을 주었습니다.
므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알록달록해 밤낮으로 반짝반짝 윤이 났습니다.

어느 가을 날 저녁, 재재는 어두워질 무렵 큰절을 나섰습니다. 암자에 계시는 큰스님에게 급히 갖다 드려야 할 물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도 없는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큰절을 벗어나자 이어지는 숲길은 더욱 캄캄했습니다.
´어떻게 하지?´
재재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더러 늦을 때는 암자에서 자고 올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올라갈 때가 문제였습니다.
점점 가팔라지는 산길을 재재는 뛰다시피 걸었습니다. 가슴이 쿵쿵 뛰었습니다. 전에 없이 귀가 웅웅거렸습니다. 가슴이 더욱 큰 소리로 뛰었습니다.
´재재의 발자국 소리구나. 이 밤에 웬일이지?´
잠자리에 들려다 말고 므므는 귀를 번쩍 열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텐데, 이 일을 어쩌지.....´
므므는 옹달샘 가를 폴짝폴짝 뛰면서 걱정에 잠겼습니다.
˝므, 므, 므, 므, 므므, 므므!˝
므므는 온 몸을 뒤척이면서 힘껏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므므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습니다.
˝못난이 비단개구리가 저렇게 큰 소리로 울 수 있나?˝
숲 속의 모든 것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므므가 팔짝팔짝 뛰자 온 몸에서 불꽃이 튀어나왔습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모아 온 별빛이었습니다. 달빛이었습니다. 햇빛이었습니다.
´아, 빛이다. 맞아, 저기는 옹달샘 쪽이야.´
불빛을 본 재재는 온 몸에서 힘이 펄펄 솟았습니다.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습니다. 귀가 몹시 아팠습니다. 그래도 재재는 불빛을 보며 뛰듯이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펑!˝
하는 소리가 세상이 터지듯 재재의 귓가를 울렸습니다.
재재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조용해졌습니다. 이제까지 재재가 느껴 보지 못했던 조용함이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므, 므, 므, 므, 므므, 므므!˝
어두운 산 속에서 오직 므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므므,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린다!˝
재재는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므므, 므므!˝
재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재재´ 말고 처음으로 ´므므´ 소리를 냈습니다.
˝므므, 므므.˝
재재는 목이 터져라 므므를 외치며 산길을 뛰어 올랐습니다.
˝므므,므므.˝
므므도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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