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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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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기중 (강위수) |  | |
| 깍쟁이 같은 것...˝
일부러 발소리를 내지 않고 살그머니 다가갔는데도 어느 틈에 알아차리고 숲 속으로 숨어버린 산토끼가 여간 얄미운 것이 아닙니다.
산토끼가 놀던 풀밭에는, 보라색 도라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나는 도라지 꽃을 따서 머리에 꽂았습니다. 또 심심해졌습니다.
˝내가 뭐 저를 어쩐다나...˝
부드러운 잿빛 털과 예쁜 눈을 가진 산토끼와 어울려 놀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하니 다시 산토끼가 미워지는 것입니다.
나는 풀밭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릅니다. 아주 큰소리로.
˝고향땅이 여기서 몇 리나 되나...˝
여기서는 아무리 큰소리를 내도 주지 스님이 계신 법당에는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잔소리만 하는 수좌 스님은 오늘 아침 장엘 갔습니다. 주지 스님은 우리 엄마처럼 여자입니다. 수좌 스님도 보살 아줌마도, 이 절 식구들은 모두 여자들뿐입니다.
˝푸른 하늘 저 멀리 뻐꾹새 울겠지...˝
그러나 노래하는 것도 싫증이 났습니다. 나는 팔베개를 하고 풀밭에 드러누워서 하늘에 뜬 구름을 바라봅니다. 구름은 어디론가 흘러갔습니다. 어쩌면 아림이도 나처럼 하늘의 구름을 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림이는 다른 애들과 함께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칠판에 ´바둑이´라고 쓰시면 아이들은 연필에 침을 묻혀 따라 씁니다.
아니 이제는 이학년이 됐으니까 바둑이 같은 것은 배우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이곳에 데려 온 주지 스님이 미워집니다. 나를 여기에 보내놓고 어딘가로 멀리 떠났다는 엄마도 미워집니다.
나도 얼마 후면 머리를 깎아야 하고 정말로 애기중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중이 되는게 싫습니다. 정말로 싫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이런 데를 오지 않았을 텐데...
˝구구구구...˝
바로 옆에서 들리는 산비둘기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습니다.
산비둘기는 호들갑스럽기도 합니다. 기척도 없이 있다가 나를 놀래주려는 것처럼 갑자기 소리칩니다.
나는 예쁜 부리의 산비둘기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비둘기 역시 토끼처럼 놀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얄미운 것들-.
나는 조약돌을 집어서 산비둘기가 있는 나무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후드득, 비둘기는 건너편 숲 속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나 샘터 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샘터 근처에는 개구리 정도 크기의 아기 두꺼비 한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징그럽고 못 생겼지만 내가 가까이 가도 달아나지 않고 친구가 돼주는 것은 이 아기 두꺼비뿐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두꺼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샘터 떡갈나무 그늘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두꺼비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그 구렁이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얼마 전 나는 샘터 아래쪽 버드나무 아래에서 개구리가 뱀에게 칭칭 감겨 잡혀먹히는 끔찍한 광경을 본 일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버드나무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두꺼비는 버드나무 있는 데까지 와서 태평하게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왜 여기까지 나왔냐, 구렁이한테 물리려구!˝
하지만 두꺼비는 천천히 눈만 감았다 떴다 했습니다. 나는 풀대로 만든 작은 회초리로 내가 잘못했을 때 주지 스님이 내 종아리를 치듯 두꺼비의 등을 때렸습니다. 아프지 않게 흉내로만 말입니다.
두꺼비는 자기가 잘못했다는 듯이 샘터 쪽 제 자리를 향해 천천히 기어갔습니다. 나처럼 친구도 없는 것, 나는 그만 두꺼비가 가엾어졌습니다.
그리고 두꺼비가 다시는 뱀이 있는 버드나무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법당 뒤 그늘에 가 낮잠을 한숨 자고 나자 다시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주위로 둘러선 산봉우리와 나무숲을 바라봅니다. 풀벌레 소리와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 늘 보고 듣는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할까 잠시 궁리해봅니다. 나에게는 이런 일을 나누고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습니다.
늘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지 스님이나 항상 꾸짖기만 하는 수좌 스님, 그리고 부엌일을 하는 보살 아줌마, 우리 절 식구들은 모두 나와 친구가 돼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산신당이 있는 별채 뒷방에 와서 고시 공부를 한다는 부엉이 아저씨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부엉이 아저씨란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에 유난히 큰 안경을 쓴 모습이 그림책에서 본 부엉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혼자만 지어부르는 그의 별명입니다.
나는 살그머니 별채 뒷방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나뭇잎을 따서 열려진 창문으로 던져넣었습니다.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다시 한 개 나뭇잎을 종이 비행기 날리듯 던져넣었습니다.
아마 부엉이 아저씨는 잠이 든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그만 싱거워져서 돌아서려고 할 때입니다. 갑자기 창문 가득히 부엉이 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은주 요놈!˝
하지만 그는 화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후훗, 놀랐죠?˝
˝너 또 심심해진 모양이구나.˝
˝우리 냇가로 놀러가요.˝
˝그럴까...˝
그는 다른 때와는 달리 순순히 응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부엉이 아저씨와 함께 막 산신당 앞을 돌아나왔을 때였습니다. 샘터 있는 곳에서 수좌 스님이 나를 손짓해 불렀습니다. 거기에는 수좌 스님뿐만 아니라 주지 스님도 나와 있었습니다. 나는 철렁 가슴이 내려 앉았습니다.
˝네가 두꺼비를 떡갈나무에 매어놓았니?˝
가까이 다가서자 수좌 스님이 나무라는 투로 말했습니다.
˝...˝
나는 대답할 말을 잃고 땅으로 눈을 깔았습니다.
˝아무리 미물이라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이런 장난을 해! 몹쓸 것...˝
역정 난 음성으로 말하는 주지 스님의 손에는 회초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어서 풀어놓고 두꺼비한테 잘못했다고 해라.˝
옆에서 수좌 스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두꺼비의 뒷다리를 매어놓은 고무줄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잘못했단 소린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아기 두꺼비가 뱀이 있는 곳으로 가지 못하게 매어놓은 것은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안 되겠다. 종아리를 걷어라!˝
주지 스님이 회초리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은주야, 그만 잘못했다고 해!˝
옆에 섰던 부엉이 아저씨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두껍아, 잘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렸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나는 잠결에 부엉이 아저씨가 주지 스님을 찾아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같은 또래와 어울려 놀게도 하고 제때에 학교 공부를 시켜야 올바른 인격의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속세의 인연으로 따지면 그 애는 불행하게 된 내 동생의 딸이라우... 나도 조카 귀여워할 줄도 알지만...˝
이러한 말소리를 가물가물 들으면서 나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의 나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노는 옛날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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