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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리 아저씨 , 자장면 (박재형)
새롬이가 아저씨를 만난 건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는 길이었어요. 한 아저씨가 네거리 건너편 길가에 엎드려 있었어요.
´어른이 길 위에 엎드려 있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새롬이는 다 큰 어른이 길가에 엎드려 있는 게 이상했어요.
엄마는 새롬이가 흙장난만 해도 꾸중을 하시거든요.
˝거지가 너랑 친구하자고 찾아올지 몰라.˝
엄마는 새롬이가 옷을 더럽히기라도 하면 꼭 거지를 들먹이면서 꾸중을 하십니다. 그런데 어른이 길가에 엎드려 있다니 술이라도 마시고 취한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엄마, 저 아저씨 봐. 옷이 더러워져서 욕먹겠다.˝
그러나 엄마는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성큼성큼 앞장서서 사람들 사이로 걸어가 버렸어요.
새롬이는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따라갔어요.
엄마는 시장을 뱅뱅 돌았어요. 맛있게 보이는 찬거리를 사지도 않고 자꾸 묻기만 하면서 지나쳤어요. 엄마는 다리도 안 아프신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고등어 한 마리를 사시면서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어. 큰일이야.˝
하고 검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서 말했어요. 그런데 다음 상점에 가서 파 한 단을 사면서도, 배추를 사면서도 물가가 올라서 큰일났다는 말을 해 새롬이는 은근히 부아가 났어요.
엄마는 새롬이가 군것질 할 돈을 달라고 할까 봐 괜히 그러시는 것 같았어요.
´물가가 올라 돈이 없으니까 아예 군것질하겠다는 말을 꺼내지도 말아.´
엄마는 미리 입막음을 하시는 것 같았어요. 새롬이가 좋아하는 과일가게를 지나치면서 쳐다보지도 않아 더 속이 상했어요.
˝엄마, 딸기가 잘 익었어요.˝
˝나도 알아. 하우스 딸기는 맛도 없으면서 값만 비싸. 딸기 철이 되면 한 광주리 사다가 실컷 먹자.˝
엄마는 딸기 값이 금값이라도 되는 양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새롬이 눈에 붕어빵을 파는 아줌마가 보였어요.
˝엄마, 그럼 붕어빵이라도 사주세요.˝
새롬이는 시장에까지 따라왔다가 그냥 갈 수는 없었어요. 암만 돈이 없어도 붕어빵은 먹고 싶었어요.
˝알았다. 꼭 천칠백삼십 원이 남았으니까 칠백삼십 원은 차비하고 천 원으로 우리 새롬이 붕어빵 사주지.˝
엄마는 딸기를 못 사준 게 미안한지 선선히 허락을 하셨어요.
새롬이는 붕어빵을 샀어요. 붕어빵 다섯 개가 든 종이 봉투를 받아 하나를 꺼냈어요.
˝엄마도 하나 잡수셔요.˝
˝고맙다. 학교에 들어가더니 우리 새롬이 다 컸네.˝
엄마는 붕어빵을 한 입 베어 물며 웃었어요.
새롬이도 붕어빵을 먹었어요. 팥을 듬뿍 넣어서 그런지 꿀맛이었어요.
새롬이는 시내버스를 타려고 엄마랑 길을 건넜어요.

그런데 길을 건너다보니 아까 그 아저씨가 보였어요. 아저씨는 여전히 길바닥에 배를 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아저씨 앞에는 동전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었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아랫도리가 없었어요.
새롬이는 깜짝 놀랐어요. 다리가 없다니. 그렇다면 아저씨는 일도 못합니다. 다리가 성한 사람들도 일거리가 없어 애를 먹고 있는데 다리가 없는 아저씨가 무슨 일을 하겠어요.
아저씨는 다리가 없어 일을 못하여 구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모른 척 그대로 지나쳤어요.
새롬이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그냥 지나치면 하느님이 꾸중을 할 것 같았어요. 지난 번에 배가 아팠을 때 새롬이는 하느님이랑 약속을 했거든요. 안 아프게 해주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엄마, 도와줘요.˝
새롬이는 엄마에게 말했어요.
˝돈을 다 썼어. 너도 알잖아 차비밖에 없는 거.˝
엄마도 도와주고 싶은 눈치였지만 엄마가 가진 지갑에는 동전 칠백삼십 원만 담겨 있었어요.
새롬이는 엄마를 따라 버스 정류장으로 가면서 손에 든 붕어빵을 보며 말했어요.
˝붕어빵을 안 샀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전에는 붕어빵이 아주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었어요. 불쌍한 아저씨도 도와드리지도 못하게 한 얄미운 붕어빵이었어요.
˝엄마, 걸어가면 안 될까요?˝
˝얘는 걸어가려면 엄마 팔이 다 빠지겠다.˝
엄마는 손에 들고 있는 시장바구니를 치켜들며 말했어요. 바구니 속에 든 배추, 당근, 상추, 고등어가 꽤 무거워 보입니다.
˝내가 들고 갈게요.˝
새롬이는 그냥 갈 수 없었어요. 그냥 가 버리면 아저씨는 너무너무 슬퍼할 것 같았어요.
아니 새롬이 가슴이 너무너무 아플 것 같았어요.
˝네가 힘이 있니?˝
엄마의 말에 새롬이는 말이 막혔어요. 그렇지만 포기할 순 업었어요.
˝그럼 엄마, 내 차비 이백삼십 원이라도 드리면 안 될까요? 유치원 다닌다고 하지요.˝
˝알았다. 걸어서 가자.˝
엄마가 웃으며 되돌아섰어요.
새롬이도 얼른 엄마 뒤를 따라 갔어요. 아저씨는 여전히 배를 길 위에 대고 지나가는 사람들 애처로운 눈을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돈을 넣지 않았어요. 아저씨의 그릇에는 백원 짜리 동전 두 닢만 놓여있었어요.
엄마는 칠백삼십 원을 얼른 아저씨의 바구니에 넣었어요. 동전을 넣는 엄마의 얼굴이 밝아 보였어요.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엄마가 돈을 넣자 얼른 인사를 했어요.
새롬이도 붕어빵이 담긴 봉지를 아저씨의 바구니에 넣었어요.
˝고맙습니다.˝
아저씨가 새롬이에게 인사를 했어요.
새롬이의 가슴이 따뜻해졌어요. 걸음도 가벼워졌어요. 새롬이는 엄마 손을 잡고 걸었어요.
시내버스가 자꾸만 달려갔어요. 다섯 정거장이나 걸었지만 다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



자장면


박재형

홍준이는 훈이가 미웠습니다. 잘난 체 하고, 거들먹거리는 게 싫었습니다. 훈이 주위에는 늘 아이들이 몰려있고, 훈이의 신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홍준이는 그게 싫었습니다. 자기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이처럼 여겨졌습니다.
“야, 너 이걸 가방이라고 들고 다니니?˝
어제도 훈이는 홍준이의 속을 긁어놓았습니다. 홍준이 가방은 꽤 낡았습니다. 이모가 입학선물로 주었으니 벌써 3년 가까이 지고 다닌 셈입니다.
˝왜 내 가방이 어때서? 네가 내 가방에 보태준 거 있어?˝
훈이는 기분이 나빠 쏘아주었습니다.
˝그런 게 아니고 가방이 너무 낡아서 그래. 하나 사 달라고 하지. 미안하다.˝
홍준이가 화를 내자 훈이는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홍준이는 훈이를 용서해 줄 수 없었습니다. 늘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쾌활한 훈이. 좋은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늘 당당한 훈이는 부잣집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홍준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돌아섰습니다.
˝미안하다. 난 장난으로 한 말이야.˝
훈이의 목소리가 쫓아왔지만 홍준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습니다.
´내가 가난하다고 깔보는 거지.´
홍준이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저녁 늦게 엄마가 돌아오셨습니다.
˝내일 엄마가 학교에 못 갈 것 같다. 혼자 점심 먹을 수 있겠지?˝
˝알았어요. 돈이나 주세요.˝
˝미안하다. 일년에 하루밖에 없는 즐거운 운동회 날인데.˝
엄마는 어두운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지하방 만큼이나 엄마의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피곤해 지친 엄마의 얼굴을 보며 홍준이는 얼른 얼굴을 폈습니다.
˝괜찮아요. 자장면이 더 맛있어요. 걱정 마세요.˝
˝미안하다. 내년에는 꼭 맛있는 점심을 가지고 갈게.˝
엄마는 며칠 전에 홍준이가 운동장에서 점심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생각났는지 아주 미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알았어요. 내년에는 약속을 지켜야 해요.˝
홍준이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운동회 날입니다. 홍준이네 학교는 봄운동회를 합니다.
홍준이는 집을 나섰습니다. 체육복을 입고 학교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길가에서 만나는 아이들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입니다. 학교 운동장에는 만국기가 바람에 춤을 추고 있습니다. 만국기도 운동회가 좋은 모양입니다.
˝홍준아, 어젠 미안하다.˝
훈이가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
홍준이는 대꾸를 하기 싫었습니다. 다른 건 다 참아도 가난한 걸 들먹이는 건 용서해 줄 수 없습니다. 운전을 하시던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엄마가 식당에 나가 잔일을 해주며 살고 있지만 속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남에게 놀림을 받는 건 싫습니다.
˝용서해 주는 걸로 알겠다. 넌 마음이 착하니까.˝
홍준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훈이가 얼른 말하고 어깨에 손을 얹습니다.
홍준이는 얼른 뿌리치고 아이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 한 가운데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훈이를 잊었습니다. 엄마가 응원을 해주지 않아도 홍준이는 달리기를 해서 1등을 했습니다. 줄넘기 경기도 이겼습니다. 홍준이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파란 하늘처럼 맑았습니다.
웃습니다. 정말 즐거운 운동회 날입니다.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찾아 흩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운동장 여기저기에 자리를 깔고 앉아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벌써 점심을 풀어 놓은 곳도 보입니다. 모두들 행복한 표정입니다.
˝훈이도 어디서 점심을 먹겠지.˝
문득 훈이의 당당한 얼굴이 생각납니다. 4등을 했지만 의기양양하게 떠들던 훈이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납니다. 홍준이는 자신도 모르게 훈이를 찾아 운동장을 둘러보다가 마음을 접습니다.
´내가 훈이를 찾을 이유가 없지.´
홍준이는 마음이 아픕니다. 홍준이도 엄마랑 같이 점심을 먹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엄마는 지금쯤 바쁘게 그릇을 씻고 있을 것입니다.
홍준이는 북경반점으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자장면을 먹으라고 준 돈이 체육복 속에 들어있습니다. 홍준이는 북경반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이 가득 찼습니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들도 많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떠들며 탕수육이랑 자장면을 먹습니다.
홍준이는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훈이가 홍준이가 앉는 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너도 혼자 왔니?˝
훈이가 반갑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응.˝
홍준이는 어색해서 우물쭈물 대답했습니다.
˝난 아빠랑 사는데 우리 아빠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거든. 그래서 나 혼자 자장면 먹으러 온 거야.˝
훈이는 자장면을 먹으러 온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지 시키지도 않은 말을 했습니다.
˝그랬니? 나도.˝
홍준이는 마음을 엽니다. 훈이가 부잣집 아이라고 생각하여 미워한 것이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하셔서 못 왔어.˝
홍준이도 훈이처럼 시키지도 않았는데 엄마 얘기를 꺼냈습니다. 운동회날 혼자서 자장면을 먹으러 온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자장면이 나왔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먹음직합니다.
˝우리 자장면 빨리 먹고 총구경 가자. 좋은 게 많더라.˝
훈이가 젓가락을 들며 말합니다.
홍준이도 얼른 젓가락을 들고 자장면을 먹습니다. 훈이랑 같이 먹는 자장면이 맛있습니다. 엄마가 안 와도 하나도 슬프지 않습니다.
훈이 입가에 자장면이 묻어 보기 흉합니다.
˝훈이야, 너 얼굴에 자장면 묻었어.˝
˝너도. 아프리카 토인 같애.˝
홍준이와 훈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었습니다. 자장면이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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