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별을 보고 싶어 (송재찬) |  | |
|
별을 보고 싶어
송재찬
어디에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어느 정도 믿어줄지......그러니까, 국민학교의 마지막 겨울 방학 때였지요. 그 때는 초등학교가 아니고 국민학교였습니다.
분명히 겨울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벌써 내 마음에는 함박눈이 꿈처럼 쌓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꿈처럼 잠깐 지나간 일은 아닙니다. 그 때의 일들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이라는 아쉬움과 셀레임을 느낄 사이도 없이, 공부에서 해방된다는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나는 또 중학교 공부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앞으론 뭐니 뭐니해도 영어를 우리 말 처럼 할 줄 알아야 해. 찬호, 니가 청년이 되었을 땐, 우리 나라 안에서만 일하는 게 아니야. 지구 곳곳을 다니며 일해야 한다구. 지구는 더 좁아져서 다른 나라를 이 웃 드나들듯 할 거란 말야. 그러니 이번 방학엔 영어 공부에 총력을 기울이자, 응? 내가 아주 훌륭한 영어 선생님을 구해 놨으니깐 너도 각오를 단단히 해. 알았지? 다음 월요일부터 오실거야.˝
이런 엄마의 열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새로 시작할 중학 영어 말고도 나는 두 군데 학원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대체로 그런 엄마의 열성에 잘 따르는 편이어서 늘 모범생 소리를 들었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한 영어라 집으로 오시는 선생님은 내 실력을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자연 진도가 빨랐습니다. 이미 나는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줄줄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수요일이었습니다. 엄마가 모임에 나가는 세째 주 수요일. 엄마는 현관을 나서며 다시 당부했습니다.
˝곧 영어 선생님이 오실테니까 딴 짓 말고 영어 책 읽고 있어. 혹시 회사에서, 아빠 전화오면, 모임에 나가셨다구 예의 바르게 이야기 하 고. 선생님 오시면 바로 전화기 코드 뽑아라. 공부 중에 전화 오면 수업 분위기 깨지니까. 알았지? 비싼 과외라는 거 명심허구. 돈이 넘 쳐서 니 공부 시키는 거 아냐. 너도 알지?˝
˝예. 안녕히 다녀 오세요.˝
엄마의 얼굴에는 서두는 기색이 뚜렷했습니다.
내 입이 저절로 벌어지고 있음을 나는 느꼈습니다. 엄마가 있다고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자꾸 기뻤습니다. 엄마가 안 계시면 편하다는 생각. 영어 선생님이랑 좀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그런 작은 기쁨이지요.
앞에서 말했지요?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모범생입니다. 엄마가 안 계시다고 공부를 소흘히 하는 그런 타입은 아닙니다.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가 굳은 편이지요. 통지표는 담임이 바뀌어도 늘 비슷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곤 했습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가 굳을 뿐 아니라 친구들의 어려움을 잘 도와줌. 전교과 골고루 우수함.
엄마 차의 뒤꽁무니가 우리 골목을 천천히 빠져 나가는 만큼 내 몸은 가벼워지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는 것까지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자습 문제를 잔뜩내고 가시는 담임 선생님의 출장. 힘겨운 자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생님이 나가시기 무섭게 환호하곤 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속박받기 싫어하는, 자유를 늘 그리워하며 사는 게 아닐까요. 그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가 오셨다 가시면 얼굴에 꽃불이 들어온 것 처럼 환해지거든요.
엄마 차는 골목 밖으로 빠져 나가고 새털처럼 가벼워진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현관 문을 열고 마루 위로 발을 올려놓았을 때입니다. 느닷없이 전화벨이 따르르 울렸습니다. 그 때의 그 느낌. 울려서는 안 되는데 벨이 울렸다는......아니면, 본래 전화는 울리는 게 아닌데 울린 것 같은 이상한 생각. 전화는 잠시 울렸을겁니다. 그러나 그 때 온 세상이 흔들렸습니다. 마루가 흔들리고 집이 흔들리고......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지금도 불가사이한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집이 흔들리면서 천정이며 창에 흐르던 어떤 기운, 녹색 같기도 하고 핑크빛 같기도 한 아니, 전류가 집 전체에 흐르는 듯한 느낌. 아, 이게 지진이구나. 나는 어쩔 줄 모른 채 마루 끝에 서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꿈처럼 전화벨 소리가 뚝 그치고 온 세계가 진동하는 것 같은 충격도 멈췄습니다.
˝내가 꿈을 꾸었나?˝
나는 갑자기 추위를 느꼈습니다. 온 몸이 오싹하면서 배가 고프고 외로워졌습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전화기 곁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치 내가 꾼 꿈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어.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오며 나도 모르게 전화기에 손을 대었습니다. 순간 나는 앗 뜨거라 하며 뒤로 물러나 앉았습니다. 내가 손을 댄 순간 전화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울렸습니다. 그 때 얼마나 놀랬는지. 나는 겁에 질려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벌벌 떨었습니다.
마루도 집도 온 세상도 흔들리지 않고 전화벨만 울렸습니다. 떨고 서 있는 것은 나 뿐이었습니다. 내가 떤 것은 그렇습니다. 다시 온 세계가 흔들릴까봐.....잠시 벼락맞은 아이처럼 정신없이 서 있다가 나는 송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집도 흔들지 않고 전화는 계속 울리고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찬호니? 나야. 가벼운 접촉사고로 오늘은 못 가게 되었구나. 대신 내일 보충해 줄게. 엄마, 계시니?˝
영어 과외 선생님의 전화였습니다. 야호! 휘익-.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조금 전의 충격을 금세 잊어버리며 어깨를 흔들었습니다.
˝엄마는 나가셨어요. 선생님, 제 걱정은 마세요. 혼자서 복습하고 있 을게요.˝
나는 송수화기를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입니다. 전화를 받는 동안 내 귀에는 과외선생님이 소리가 흘러들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소리가 똑, 똑 낙수소리처럼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봉화산, 봉화산, 진달래 숲.빨리 빨리.....
봉화산은 우리 집 뒤에 있는 낮은 산입니다. 아침 산책도 하고 약수도 떠오는 우리 집 뒤에 있는 산이지요. 우리 집은, 맞습니다. 봉화산 밑에 있습니다.
그 이상한 소리는 계속해서 내 몸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지만 나는 뜻밖에 얻게된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었습니다.
우선 비디오를 빌려다 볼까? 영구가 봤다는 그거......굉장히 재미있다던데......나는 처음으로 날기를 배운 새처럼 신이 나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아! 밖은 솜뭉치 같은 눈으로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아빠만큼 안 살았지만 그런 눈은 처음입니다. 얼마나 푸짐하게 오시던지, 그래요. 그런 눈은 오는 게 아니라 <오신다>고 해야 어울립니다.
아뭇 소리도 안 들렸습니다. 하얀 눈이 세상의 소리들을 모두 빨아들이며 내리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 같았습니다.
외투에 모자, 장갑까지 갖추고 나는 집을 나섰습니다. 골목은 벌써 난리였지요. 누가 말을 안해 줘도 눈이 아이들을 불러낸 것 같았습니다. 우리 골목에 사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개들까지 다 나온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눈을 맞으며 골목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우리 엄마 차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 처럼요. 골목을 막 빠져 비디오 가게로 가려는데 어디선가 전화 벨 소리가 따르르 울렸습니다.
˝어디서 나는 소리지?˝
의아해서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누구네 전화벨 소리가 이처럼 크게 울린담. 집 밖에서 다 들리게.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전화벨 소리가 훌러 나올 것 같은 집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훔칫 떨었습니다. 그 벨 소리는 어쩐지 나에게서 나는 것 같았으니까요. 골목 끝. 내 눈에는 아무 것도 안 보였습니다. 마치 내가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러면서 다시 그 소리가 들렸습니다.
빨리, 빨리, 그렇게 꾸물대지 말고 빨리 와. 봉화산, 진달래 숲. 봉화산 진달래 숲......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 봉화산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봉화산이라고 해야 엎어지면 코 닫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어느새 눈은 내 발목까지 쌓여 내 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었습니다.
봉화산 낮은 경사를 오르는데 거기는 우리 골목보다 눈이 더 내리는 듯 했습니다. 어느새 내 무릎이 푹푹 묻혔습니다.
진달래 숲은 공중변소가 있는 뒤 쪽을 말합니다. 4월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흐드러지는 그 자리. <진달래 숲>이라는 푯말까지 붙어 있는 진달래가 많은 곳입니다.
내가 진달래 숲에 도착했을 때, 진달래들은 눈에 푹 묻혀있었습니다. 나무며 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 진달래 숲에 진달래만이 아니라 아름드리 소나무며 다른 나무들도 있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키 작은 진달래들은 모두 눈에 묻혀있고 아름드리 나무들은 벌받는 아이처럼 묵묵히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미 땀과 눈으로 훔뻑 젖어있었습니다. 왜 내가 여길 온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신음 소리 같은 게 들려왔습니다.
여기야, 여기. 빨리, 빨리.
그러나 그 소리는 역시 내 귀에만 흘러드는 소리였습니다. 나는 그, 소리 아닌 소리를 좇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아! 아저씨!˝
갑자기 내 눈에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고 그 나무 밑에 한 아저씨가 깔려있는데 이미 나무와 눈 때문에 사람의 얼굴만 보였습니다.
˝아저씨, 어떻게 된 일이예요?˝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데 아저씨는 아무말도 없이 안타갑게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아주 강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 보고만 있니? 어서 이 나무를 치워져. 빨리. 숨이 끊어질 것 같애.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는 듯 했습니다. 아주 안타갑게 아주 강렬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그 눈빛으로 말을 하는 듯 했습니다. 그 눈빛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더 가까이 갔습니다.
얘야, 제발 빨리!
그 나무는 내 힘으로 들어올릴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내 작은 힘보다는 어른인 아저씨가 어떻게든 힘을 써서 나무를 밀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안간힘을 다해 그 나무를 조금 밀었습니다. 그러자 아저씨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몸을 움직여 몸을 빼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몸을 빼어 이상하고 야릇한 몸짓-누워 딩구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와 어깨로 괴상한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한-으로 일어선 아저씨는 팔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아저씨가 힘을 못쓴 까닭을 알았습니다.
˝아저씨, 어쩌다가 이런 일을 당했어요. 조심하세요.˝
아저씨는 말이 없이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고맙다. 너 때문에 살았어.
나는 아저씨의 눈 빛에서 그 말을 읽었습니다. 아, 아저씨는 팔이 없는 벙어리였습니다.
˝전 이만 가겠어요. ˝
그래. 어서 내려가렴.
아저씨가 나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돌아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산을 다 내려와 돌아다보니 아저씨는 그 때까지 거기에 그냥 서 있었습니다. 아주 멀지만 그는 미소를, 그래요. 나는 그의 미소를 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도 들은 것 같습니다.
꼬마야, 고맙다. 잘 가.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친구들과 종로의 대형 서점에 들려 책 두 권을 샀습니다. 그 날은 참 즐거웠습니다. 오랫만에 친구들과 만난 것도 그랬고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집에 가기도 했으니까요.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철역으로 내려갈 때였습니다. 지하도로 내려가는 층계에서 나는 한 거지를 보았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햄버거 집에서 남은 동전을 꺼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내 친구 중의 하나가 그런 나를 말리듯 팔을 잡아끌며 속삭였습니다.
˝찬호야, 관 둬. 가짜 거지일지도 몰라. 저렇게 나와 동전을 구걸하는 사람 들 중에는 가짜도 많대.˝
그 때 나는 보았습니다. 그 거지 아저씨의 날카로운 눈빛을. 그 친구의 개미같은 소리를 그 아저씨는 어떻게 들었을까요. 친구는 흠칫하며 물러섰고 나는 뭐에 끌리듯 5백원 짜리 동전 두개를 다 그의 동전 바구니에 떨어뜨렸습니다. 사실 나는 동전 하나를 넣을 생각이었는데 그의 찌르는 듯한 눈빛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말이 없이 전철을 탔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그 때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것 같기도하고 누구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무표정한 아이처럼 열차가 달려와 문을 열었고 우리는 떠밀리다시피하며 올라섰습니다. 문이 담겼을 때 나는 그 거지 아저씨의 얼굴이 차창에 영화처럼 떠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맞아! 그 때 그 아저씨야!´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렸습니다. 눈오는 날, 진달래숲에 쓰러져 있던 아저씨!
˝먼저 가!˝
나는 다시 종각역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거지 아저씨는 거기 없었습니다.
˝아줌마, 여기 계시던 아저씨 못 보셨어요?˝
나는 아저씨대신 전을 펴고 앉은 찰떡 장사 아줌마에게 물었습니다.
˝팔 없는 아저씨 말이냐?˝
˝네. 그래요. 맞아요, 그 아저씨는 팔이 없어요.˝
˝내가 오니까, 일어서드라.˝
나는 혼자 전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텅빈 열차가 달려왔습니다. 사람들이 타고 문이 닫혔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이 열렸습니다.
그 때, 나는 이상한 것을 경험했습니다. 문은 그냥 열렸다, 닫혔습니다. 다시 탄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꼭 누가 탄 것만 같았습니다. 누군가, 누군가가......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람이 탄 것 같은 느낌...... 종로3가, 5가, 동대문, 제기동, 신설동역이 차례로 지나는데 내 마음은 이상하게 편해지며 가슴이 꽉 찬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릅니다만, 엄마, 아빠랑 같이 여행을 할 때 느끼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다음은 석계역입니다.˝
그 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옆의 빈자리를 손으로 만졌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누군가를 만지려는 아이처럼.
나는 날마다 그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내가 그를 생각해야할 아무런 까닭도 없는데 그는 문득 내리는 비처럼 아니면 눈처럼 내 기억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때로는 아주 먼 곳에서 나의 생각을 끌어 당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나는 그 겨울을 과외에 시달리면서도 그 아저씨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지금, 모든 것은 명백해졌지만 그 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무섭게 쏟아졌던 눈이 다 녹고 삼한 사온의 따뜻한 첫날이 맑은 햇살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뜻밖에도 그 아저씨를 보았습니다. 학원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데 내 걸음이 나도 모르게 가로 공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냇가의 긴 땅을 공원으로 꾸민 그곳은 따뜻한 겨울 햇살 때문에 봄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저씨였습니다. 그는 차갑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먼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말입니다.
나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빵과 우유를 사서 그의 곁으로 갔습니다. 그는 마치 나를 기다렸던 것처럼 내가 내미는 빵을 입으로 받아 먹었습니다.그의 입에 우유를 넣어주며 내 손이 그의 살갗에 닿았을 때 그 차가움이라니 그 딱딱함이라니. 그 감촉은 너무 차갑고 딱딱해서 소름이 쪽 돋았습니다. 너무 차가와서 우유 곽을 떨어뜨릴 번 했어요. 갑자기 그가 무서워졌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후에도 공원에 몇 번 더 갔고 그의 배고픔을 위해 빵과 우유를 샀습니다. 그가 왠지 무서우면서도 나는 그의 배고픔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타나면 앉았다가도 일어섰으니까요. 약간의 웃음, 잔잔한 바람같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이지요.
나는 공원에서 여러 번 그를 만났습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앉았다 오곤했습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만나는 날, 그는 어김없이 내 꿈에 나타났습니다. 꿈에서 그는 잊지않고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날이 언제였을까, 그래요. 겨울 방학도 끝나고 졸업식도 끝나 중학교 입학을 며칠 앞 둔 날이었습니다. 햇살 포근한 날들이 여러 날 계속되던 그 날, 나는 친구들과 어린이 대공원에 갔었습니다. 공원에는 이미 봄이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무들도 며칠 전과는 달랐습니다. 곧 싹을 틔을 것처럼 가지끝이 부드러워져 있었고 온실에는 봄꽃이 한창이었습니다.
거기서, 정확히 말하면 동물원이 있는 그 쪽 원숭이 우리 앞에서 그는 나를 기다리듯 서 있었습니다.
˝아저씨!˝
나는 반가워서 그의 허리라도 안을 뻔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우유와 빵을 사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가 말했습니다.
˝나 배 안고프다.˝
˝아저씨가 말을 했나요?˝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물었습니다. 마치 내 말문이 막혔다가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놀랐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벙어리인줄 알았어요,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졸업식을 했겠구나.˝
˝네.˝
아저씨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요. 나는 그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습니다.
˝아저씨 댁은 어디세요?˝
˝여기서는 안 보이지.아주 먼 곳이지.˝
아저씨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우리 집도 여기서는 안 보여요.˝
˝내 눈에는 너희 집이 보이는 걸. 엄마가 네 방을 정리하고 있어. 국 민학교 때 쓰던 책들을 베렌다로 내놓고 있어.˝
나는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엄마가 말했거든요. 오늘은 찬호 방이나 정리해야 겠다고 말입니다.
나는 숨이 멎을 것처럼 놀라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을 찾아왔단다. 그리운 사람.˝
˝어디 사는 사람인데요?˝
˝그를 찾아왔는데......그는 이제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 는......˝
아저씨의 눈이 순간 젖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요?˝
우리는 자리를 옮겨 나무 의자에 앉았습니다.
˝나는 네가 모르는 아주 먼 곳에서 왔단다.˝
나는 그제서야 그가 정신병까지 앓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나는 미친 사람이 아니란다. 나는 너무 슬프다. 너는 내 마음을 이 해해줄 줄 알았는데......˝
그러면서 그는 내 손을 잡았습니다. 순간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몸으로 서서히 들어왔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한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손을 잡자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나를 떠나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가 내 손을 잡는 순간 내 몸이 붕 떠올라 커다란 비눗방울 속에 들어가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위의 공원 풍경은 보이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와 나만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내 손을 잡은 채 말했습니다. 아, 아 이 아저씨는 팔없는 아저씨가 아니었던가. 나는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벙어리가 말하고 없는 팔이 생기고......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나는 아주 저 먼 우주의 별에서 살고 있단다. 그렇지만 나는 지구의 한 소년을 사랑했어. 그는 맑은 눈과 맑은 마음을 가진 시골 아이였지. 나는 그를 내려다 보았고, 그 또한 나를 올려다 보았단다. 그는 커서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했어. 아니면 시인. 그는 별이 뜨는 밤마다 하늘을 보며 마음을 씻었단다. 그래, 그는 별빛으로 마음을 씻을 줄 아는 소년이었지. 그가 자신의 별로 정한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별이었어. 그러나 정작 그 소년이 보고 있었던 것은 우리 별 전체가 아니고 내 눈빛이었지.
그는 내 눈빛을 보며 꿈을 꾸고 희망을 키워나갔단다. 그가 하늘을 보는 밤이면 나는 열 일을 제쳐두고 그를 위해 눈에 불을 켰어. 우리 별에서 가장 밝고 아름다운 등을 나는 내 눈에 걸었어. 그를 위해. 그 소년은 내 눈빛(-그에겐 별이었지.)을 보며 꿈을 키웠지. 나는 그를 보기 위해 비행접시를 타고 지구까지 오기도 했었단다. 아주 잠깐. 그가 아홉살 때였지. 그는 그걸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 그는 툇마루에서 서서 마당 하늘에 떠있는 나의 비행접시를 보았어. 사랑은 모든 걸 걸게 한단다.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나는 진심으로 그와 한 마음이었어. 나는 어느새 별의 왕자이면서 그와 한 마음이 되었지. 그는 아직 모르지만 이제 세계적인 동화작가나 시인이 되면 마침내는 하늘에 있는 나를 알리라. 그가 잘되는 것 그게 내 희망이기도 했어. 그는 하늘의 별을 보며 미래를 생각하곤 했어.
나는 점점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꼭 들었던것 같은 이야기. 열살의 소년과 툇마루......그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생각한 것은 아버지가 자랐다는 제주도의 외할머니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내 잘못이었다. 그가 그렇게 된 것은. 나는 왕자 수업을 받기 위해 또 다른 우주로 나가 있었지. 나는 그걸 생각 못했어. 우리 별에서의 하루가 여기서는 1년이 되고 100년이 되고 1000년이 된다는 것을.
내가 왕자 수업을 끝내고 다시 지구로 마음을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어른이 되어 있었어. 그것도 욕심으로 가득찬. 나는 내가 그렇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서 내 눈을 크게 떴지. 그러나 이제 그는 별따위를 쳐다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그는 동화를 쓰지 않았어. 시도 쓰지 않았지. 그가 관심을 쏟는 것은 집과 땅과 명예와......나는 안타까웠단다. 그의 마음에 남아있던 별빛(-사실은 내 눈빛이란 걸 너는 알거야)에는 까맣게 곰팡이가 쓸어 있었어.
그는 부자야. 많은 것을 얻었지. 40대의 나이에 남들이 평생 얻을 것을 얻은 거지. 내가 보내준 그 빛의 힘으로 그는 시를 쓰지 않고 동화를 쓰지 않고 잘 사는 데만 쓴 거야. 그는 몰라. 자신의 힘으로 부자가 된 줄알고 자신의 힘으로 출세를 한 줄 알지. 그게 자신의 빛인줄 알겠지.
곰팡이가 쓸었던 빛마저 이제 바닥이 나고 그는 이제 허우적 거리고 있어. 아, 별을 올려다 보기만 한다면, 다시 마음을 맑게 추스려 하늘을 올려다 본다면 그를 도울 수 있으련만.
나는 그를 잊으려 했단다. 나는 별의 왕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했어. 그런데 안 돼. 그를 망친 것은 나라는 생각. 나는 결국 그를 위해 여기 왔지. 그가 죽으면 나도 죽을 것 같은 생각.
나는 그를 위해 왔단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전혀 못 알아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이야. 너만 해도 나를 알아보는데.
너를 불러낸 날 기억하니? 눈이 오는 그날 말야. 사실은 며칠 전부터 그에게 내 마음을 보냈지만 그는 마음을 열지 않았어.
이제 그는 죽어야 해. 그를 살려두어선 안 돼. 그는 점점 나빠질 게 뻔해. 그는 모르고 있거든. 사람이 왜 사는지.
그가 내 손을 놓았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다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찬호야, 집에 가자. 벌써 다섯 시야.˝
내 친구들이 몰려왔고 아저씨는 일어섰습니다.
˝꼬마야, 고맙다. 그동안 고마웠어. 나는 곧 간다 .너를 잊지 않으마.˝
아저씨는 일어서서 먼저 떠났습니다.
˝누구니? 저 아저씨?˝
친구들이 물었습니다. 나는 친구들을 놔둔 채 아저씨를 따라갔습니다. 아저씨는 사람들 속에 묻히더니 금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돌아서 집으로 가며 참 이상한 아저씨도 다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후에 그 사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미친 사람을 잠깐 만났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미친 사람에게 괜히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겠지요.
며칠 후에 아버지는 뜻밖의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술해 봐야 안다는 아버지의 병.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사건이 그 아저씨와 관계되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고 친척들과 아버지 회사사람들이 모두 병원으로 모였습니다. 수술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이 고비랜다. 찬호야,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 이제는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없다는구나. 자 우리 아빠가 마지막 수술을 받는 동 안 기도하자.˝
엄마와 나는 수술실 문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기도하는데 누가 내 몸으로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순간 나의 온몸이 예민해지며 눈처럼 되었습니다. 눈을 감았는데도 모든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그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저씨!
나는 분명 보았습니다. 팔 없는 그 아저씨가(이제는 팔없는 아저씨가 아니지요)수술실 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문도 안 열고 그냥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수술실 안이 다 보였습니다. 아저씨가 거기서 수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 온몸이 눈처럼 밝아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
˝찬호야, 이제 그만 가자. ˝
어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말하는 순간 나에게 보이던 것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내 눈 앞에는 그냥 굳게 닫힌 문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이었습니다.
얼마 후 나는 혼수 상태의 아버지가 서서히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여보, 너무 오랫동안 별을 보지 못했어. 별을 보고 싶어.˝
아버지가 엄마 손을 잡으며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들었습니다. 이상한 비행음. 음악같기도 하고, 뭐가 부서지는 것 같기도 한 소리.
이튿날 나는 날이 새기가 무섭게 진달래 공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저씨가 쓰러졌던 그 자리에 놓여있는 팔 없는 아저씨의 그 낡은 옷들. 뱀허물처럼 남아있는 그 옷들.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은 하늘이 맑았습니다.
˝찬호야, 왜 지금이야 그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내가 너만한 아이 였을 때 나는 이상한 비행기를 보았어. 아주 맑은 날이었어.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툇마루에서 꿈처럼 하늘을 보고 있었 고, 그 때 둥근 비행기를 보았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비행접시 였을까?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거기서 누가 나를 보았던 것 같아.˝
˝누가요?˝
˝모르겠어. 꼭 나같은 아이.˝
나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퇴원한 후 아빠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빠가 서서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전에 없이 시집을 사들여 오고 내가 읽는 책들도 들여다 보았습니다.
나랑 책방으로 가자고 하시더니 동화책 앞에만 서 있었습니다. 별에 대한 책도 보셨습니다.
며칠 후면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여름방학을 맞게 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거실에서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보, 이번 여름 휴가는 제주도로 갑시다. 부모님도 너무 오래 찾아 봅지 못했고 친척 어른들도 찾아뵙고......그리고......˝
나는 숨을 죽이며 아빠의 마지막 말을 들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별을 못 보았어. 별을 보고 싶어.
거긴 하늘이 깨끗 해서 아직도 별들이 살고 있을 거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