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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도깨비 (최영희)



돌아온 도깨비


최영희



˝얘야, 절대로 위험한 곳에 가서 놀면 안 된다.˝
올해 육 백 아흔 살이 된 할아버지 도깨비가 오늘도 손자인 아기 도깨
비 또비에게 신신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기 도깨비 또비는 그들이 살고 있는 떡갈나무 숲에서 제일로 손꼽히는 개구쟁이였으니까요.
˝아이, 참. 할아버지도. 제가 귀머거린 줄 아세요?˝
아기 도깨비 또비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실 때마다 늘 하던 버릇대로 두
손바닥으로 두 귀를 누르며 얼굴까지 찡그렸습니다.

올해 아홉 살인 또비는 온몸이 연한 황토색이고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
이지 않지만 정수리 한복판에 새끼손가락의 손톱 만한 뿔이 돋고 있었답
니다. 그래서 또비는 시간이 날 때마다 머리 한복판의 작은 뿔을 만지작
거리며 언제쯤 할아버지처럼 멋진 뿔을 갖게될까 하며 궁금증에 잠겼답
니다.
˝정말, 위험한 곳으로 놀러 가면 안돼.˝
할아버지 도깨비는 또 한번 힘주어 말했지만 할아버지 부아를 돋구듯
또비는 대답대신 작은 뿔만 만지작거렸습니다.
또비가 밖으로 놀러 나갈 때마다 들어온 위험한 곳이란 다름이 아닌 바
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말하는 것이랍니다.
˝아참, 할아버지. 옆집 할머니가 말씀하시던데요. 옛날엔 우리 도깨비들
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면서요?˝
방문 고리를 당기다 말고 또비는 할아버지 도깨비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뭐라고! 우리들이 사람들과 친했다고?˝
할아버지 도깨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큰 두 눈을 부라렸습니다. 사람들
의 이야기라면 썩은 밤을 씹는 만큼이나 질색인 할아버지 도깨비였습니
다.
˝할아버지, 정말 우리 도깨비들이 사람들과 친했던 적이 있었나요? 얘기 좀 해주세요. 제발 얘기 좀.......˝
졸라 붙이는 또비의 그런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 도깨비는 문득 하나 밖
에 없던 외아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또비의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어쩌면 제 애비를 쏙 빼어 닮았는지. 정
말 걱정이구나.´
˝할아버지, 제발 우리 도깨비들이 사람들과 친했던 얘기 좀 해주세요.˝
또비의 보챔이 끝없이 이어지자 마지못해 할아버지 도깨비는 입을 열었
습니다.
˝글쎄. 전해오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중에 그런 이야기가 있기도 하
지. 사람의 혹이 노래주머닌 줄 알고 방망이와 바꾼 할아버지도 있었고 또 사람들이 정말 싫어하는 줄 알고 밤마다 금돈을 던져준 할아버지도 있었던 모양이야.˝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예요.˝
˝그건 어디까지 전해오는 이야기에 불과해. 사람들의 마음이 진심인 줄
알고 그대로 행동한 우리 할아버지들을 두고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하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 사람들이 우릴 속이고 나쁜 짓을 한 셈이야.˝
˝그래도 우리 도깨비가 사람들과 친했다는 얘기가 재미있어요.˝
˝재미라니? 정말 큰일날 소리를 하는구나. 아무튼 사람들은 우리에게
위험해. 사람들이 사는 곳에 얼씬도 할 생각을 말어. 우리 도깨비들은
그곳에 가면 정말 위험해. 머리 위의 뿔도 없어지고 다시는 이곳에 돌아 오기가 힘들어.˝
˝할아버지,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면 왜 우리 도깨비들의 뿔이 없어지나요?˝
˝그건 바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우리 도깨비들에게 맞지 않기 때문이란
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늘 공기도 탁하고 하루종일 시끄럽단다. 오죽
하면 옛날엔 사람들과 한마을에 살던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깊은
산으로 들어왔겠니?˝
˝그렇지만 그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또비야,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과 물들은 우리 도깨비에겐 다 독약
과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그곳으로 간 도깨비들은 다시 이곳으로 올 용
기까지 없어진단다.˝
˝할아버지, 난 그 도깨비들을 다시 데리고 오고 싶어요. 또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해서 못 견디겠어요.˝
방문을 나서는 또비의 뒤통수에 할아버지 도깨비의 목소리가 송곳 끝처
럼 따라와 뾰족하게 닿았습니다.
˝얘야, 제발. 그곳은 위험해. 저 뒷집 아저씨를 좀 보렴. 그리고 네 애비도......˝
할아버지 도깨비는 또비에게 ´네 애비도´ 라고 계속 말을 하려다가 말끝
을 맺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도깨비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즉 또비의 아버지도 팔 년
전에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간 뒤 소식이 없었습니다.
˝또비 에미만 죽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할아버지 도깨비는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이 그렇게 된 것이 또
비 엄마가 죽은 탓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또비의 어머니는 또비를 낳은 지 사흘만에 세상을 떠났고, 아내를 잃은
또비의 아버지는 슬픔을 못 이겨 또비가 첫돌을 맞기 전에 사람들이 사
는 도시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 위험하다고? 뒷집 아저씨를 보라고?˝
밖으로 나온 또비는 할아버지 도깨비가 하신 말씀을 되씹으며 떡갈나무
작은 오솔길로 향했습니다.
떡갈나무 숲 속으로 난 작은 오솔길의 작은 바위의 한 쪽에는 올해 또비
와 동갑내기인 호비가 작은 방망이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또비는 작은 방
망이를 두드리고 있는 호비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호비야, 오늘 나를 따라 놀러가자.˝
˝어딜?˝
호비는 방망이질을 멈추며 겁먹은 듯한 두 눈을 굴리며 또비를 바라봅
니다.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가보려고 해.˝
˝뭐!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가자고? 안돼.˝
˝왜?˝
˝우리 엄마, 아빠가 그곳은 위험하다고 가면 안 된다고 했어.˝
˝위험하다고? 그곳에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니?˝
˝너희 뒷집 아저씨도 그렇고, 그리고 너희 아버지도. 아참, 너희 아버지
얘긴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쩌지.˝
˝뭐? 우리 아버지 얘기를 하지 말라고. 그럼 우리 아버진 내가 태어나자
마자 돌아가신 게 아니었니?˝
˝미안해, 또비야. 나도 잘 몰라. 다만 어른들 말씀이 또비 너희 아버지가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떠난 지 벌써 팔 년이 넘었대. 그리고 여태껏 소식이 없대. 또비 너한테 절대로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 그래서 할아버지가 틈만 나면 그곳에 가면 안 된다고 했구나.˝
˝큰일났네. 또비야......˝
˝호비야, 얘기해 줘서 고마워. 잘 있어˝
˝또비야, 너 정말 사람들이 사는 도시로 갈려고 그러니? 가지마. 그곳
은 위험한 곳이래.˝
˝난 괜찮아. 이 또비야말로 떡갈나무 숲에서 가장 용감하고 모험심이 강
한 아기 도깨비가 아니니. 틀림없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리고 우리 할
아버지한테는 비밀이야.˝
˝그렇지만 또비야...... ˝
˝정말 우리 할아버지한테 모른다고 해.˝
또비는 호비에게 손까지 흔들어 보이며 웃어 보였습니다.
˝그곳이 위험하다고? 다시는 이곳에 못 돌아온다고?˝ 그럴수록 사람들
이 사는 곳으로 꼭 가봐야지. 우리 아버지도 만나보고, 뒷집 아저씨도
만나봐야지.˝
아기 도깨비 또비는 왼쪽 어깨에 방망이를 메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떡갈나무 숲을 빠져 나왔습니다.

또비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도착한 것은 어두운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거리의 가로등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 둘씩 불빛을 당기고 도로엔 자
동차들이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또비는 떡갈나무 숲 속에서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할 때처럼 자동차 사
이를 누비고 다녔고 그 때문에 자동차들은 빵빵대고 경적기를 울려댔습
니다.
˝야, 임마. 너 정신이 있니? 없니?˝
지나가던 교통 경찰이 또비의 목덜미를 낚아챘습니다.
˝너, 집이 어딘데 함부로 돌아다니니? 아니, 맨발이잖아. 그리고 어깨에
멘 이 방망이는 웬 거야. 아무래도 수상해. 날 따라와.˝
교통 경찰의 호통에 또비는 얼른 공원 쪽을 향해 달아났습니다. 그리고
공원의 긴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만져보았습니다.
˝어휴, 다행이네. 난 뿔이 없어졌는지 알고 깜짝 놀랬네.˝
또비는 새끼손가락의 손톱만큼 자란 쬐그만 뿔을 만지작거리며 긴 한숨
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아버지를 만나야 할 텐데. 또 뒷집 아저씨는 어떻게 만
나지.˝
또비의 나직한 중얼거림에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어둠 속에서 이렇
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만나보겠다고? 날 만날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떡갈나무 숲으로
돌아가.˝
그 목소리의 또비의 귀에 익은 틀림없는 뒷집 아저씨의 목소리였습니다.
˝ 아니, 뒷집 아저씨 아니세요?˝
˝뒷집 아저씨라고? 후후후. 난 이제 뒷집 아저씨도 또 도깨비도 아니
야.˝
뒷집 아저씨의 목소리엔 술 냄새와 함께 쓸쓸함이 배어났답니다.
˝아저씨, 저와 함께 떡갈나무 숲으로 돌아가세요. 아줌마도, 또 두 아기
들도 아저씨를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지 몰라요. 빨리 돌아가세요.˝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 또비야, 내 머리를 좀 보렴. 내 머리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던 뿔이 사라진지 오래야.˝
˝그건 걱정 마세요. 제가 이 방망이로 아저씨의 뿔을 원래대로 만들어
놓겠어요.˝
˝그것도 소용없어. 아니야.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술이야, 술. 아니, 술을 살만한 돈이 필요해.˝
˝아저씨, 잠깐만요. 제가 아직 솜씨가 서툴러서 술은 잘 못 만들지만 금
돈 몇 닢은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잠깐 기다리세요.˝
˝다 소용이 없다니까.˝
또비는 공원의 한쪽 구석에 있는 작은 바위에다 주문을 외며 방망이를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망이를 두드려댔지만 금돈은 나오지 않고 마른 떡갈나무 잎만 몇 장 나왔습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금돈이 나오는 주문을 외웠는데......˝
˝내 말이 맞지? 방망이는 이곳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러니 얼른 네 머리에 돋은 뿔이 없어지기 전에 돌아가. 빨리 돌아가.˝
˝아저씨, 그럼 혹시 저희 아버지를 만나 보셨나요?˝
˝ 또비 네 아버지 말이냐? 참, 아까운 젊은이였지.˝
˝혹시, 만나보셨는지요?˝
˝그게 언제였던가? 아마 작년 겨울이었지. 서울역 지하도 입구였는데 지금도 거기 있을지 모르겠네. 그러나 그곳은 너 같은 아기 도깨비가 가기
엔 너무 복잡하고 위험해.˝
˝그건 아저씨 말씀이 옳아요. 사실 전 아버지 얼굴도 몰라요.˝
˝그렇겠구나. 난 서울역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싫어. 이런 한
적한 공원이 더 좋아. 이런 공원에 앉아 있으면 마치 고향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아. 그렇지만 너를 위해서 오늘 하루쯤은 내가 그곳에 같이
가주마. 그 대신 아버지 얼굴만 보고 얼른 돌아가렴. 더 늦기 전에. 아마 너희 아버지도 그걸 바랄 거야.˝
말을 마친 뒷집 아저씨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또비는 어미 닭을 쫓아가는 병아리처럼 뒷집 아저씨를 뒤를 졸졸 따라 갔습니다.

또비의 아버지는 뒷집 아저씨의 말처럼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 있었습니
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 썼지만 얼굴 생김새며 두 눈
은 영락없는 또 다른 또비였습니다. 또비 아버지는 지하도 입구 계단에서
무릎을 꿇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푼만 적선해 주십시오.˝
˝여보게, 자네 아들 또비라네.˝
˝또비라고요.˝
˝그렇네. 자네를 찾아 왔다네.˝
˝내 아들 또비라고...... 그렇게 쬐그맣던 또비가 이렇게 컸다고?˝˝
한동안 또비를 바라보던 또비 아버지의 두 눈에 이윽고 이슬이 맺혔습
니다.
˝또비야, 할아버지는 건강하시니? 그리고......˝
˝아버지! 할아버지께선 아버지가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셔요. 저와 함께 돌아가세요.˝
˝그렇지만 또비야. 이 아버진 돌아가기에 너무 늦었단다. 왜냐하면 이젠 나는 도깨비가 아니야. 우리 도깨비에게 가장 소중한 뿔이 없어져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단다.˝
또비 아버지는 벙거지 모자를 벗어 또비에게 머리를 내밀어 보였습니다.
또비의 두 눈에도 아버지의 머리 한복판엔 있던 뿔은 사라지고 뿔이 있
었던 자국만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습니다.
˝난 돌아갈 수 없다. 늦기 전에 또비 너라도 어서 돌아가렴.˝
˝싫어요. 아버지가 가지 않으시면 저도 가지 않겠어요.˝
˝돌아갈 수가........˝
˝아니에요. 할아버지 말씀이 돌아갈 수 있는 용기만 가진다면 뿔은 얼마
든지 다시 자라날 수 있다고 했어요.˝
˝사실, 난 돌아갈 수 있는 용기도 없어진지 오래야. 그래서 도저히 돌아
갈 수가 ......˝
˝그럼, 저도 돌아가지 않겠어요.˝
밤이 이슥하도록 또비와 또비 아버지의 실랑이가 계속되고 뒷집 아저씨
도 문득 고향에 두고 온 아내와 두 아기 도깨비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
혔습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두 어른이 한 아이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안개 낀 떡
갈나무 숲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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