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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많은 할아버지 이야기 <이규희>
어느 마을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한 분이 살았습니다.어떤 사람은 그
할아버지가 백살쯤 되었을 꺼라고 했습니다.또 어떤 사람은 마을 어귀
에 서있는 느티나무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 이백살도 넘었을 꺼라고 했
습니다.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주욱 이 마을에서 살고 있었대!
어쩜 도깨비인지도 몰라.사람이면 그렇게 오래오래 살 수 있겠어?˝
아이들은 지나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수근수근거렸습니다.
´내가 도깨비였다는 걸 저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아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엿듣던 할아버지는 흠칫 놀랐습니다.양지뜸에
서 할아버지가 진짜 도깨비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아이
들이 용케 그걸 알아냈으니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었습니다.
˝아,다시 도깨비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 왕도깨비
를 찾아가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조르는게 아니었어.하지만 누가 이
렇게 오래도록 살 줄 알았남!˝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지긋이 눈을 감았습니다.그리곤 아주 오래 전 일
을 떠올려보았습니다.그 옛날,장난꾸러기 꼬마도깨비 ´꼬비´였던 시절을.


2
그 날은 하늘에 손톱달이 뜬 아주 캄캄한 밤이었습니다.도깨비들이 밤
마실을 가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지요.더군다나 그날은 양지뜸 황부자
영감의 환갑잔치가 있는 날이었답니다.
˝얘들아,우리 아랫마을 황부자 집에 메밀묵 얻어먹으러 가자! 그 집은
잔치가 있을 때마다 가마솥 가득 메밀묵을 쑨다잖아!˝
˝야아,좋다,좋아!˝
장난꾸러기 도깨비들은 와글와글 떠들며 마을로 내려갔습니다.맛있는
메밀묵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군침을 질질 흘리면서요.
그런데 도깨비친구들이 우당탕 쿵탕 황부자네 마당으로 들어설 때였
습니다.

깍깍 숨어라 네 뒤 범 간다.
깍깍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다른 때 같으면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을 아이들이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어요? 아마도 잔칫날이라 여
기저기서 모인 친척 아이들끼리 밤늦도록 노는 모양이었습니다.
˝빨리 숨자!˝
아이들은 술래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요리조리 몸을 숨겼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꼬비가 술래를 피해 빨간 댕기머리를 나풀거리며
뛰어가고 있는 꽃님이를 본 것은.
˝야아,참 이쁘다!˝
꼬비는 노랑저고리에 빨강치마를 입은 채 당싯당싯 뛰어가는 꽃님이
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었습니다.
˝꼬비야,어서 가자!˝
꼬비는 다른 친구들이 모두 부엌으로 메밀묵을 먹으러 달려가는데도
들은 척 하지 않았습니다.그리곤 자기도 모르게 살금살금 꽃님이를 쫓
아 뒤곁으로 달려갔습니다.하지만 꽃님이는 벌써 어딘가에 몸을 숨긴
뒤였습니다.
˝어,어디로 갔지?˝
꼬비는 두리번두리번 꽃님이를 찾았습니다.그 때였습니다.
˝얘,너도 빨리 여기 숨어!˝
갑자기 캄캄한 헛간 쪽에서 어떤 아이가 나즉나즉한 목소리로 꼬비를
부르는 게 아니어요? 놀란 꼬비는 엉겁결에 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꽃님이었습니다.
˝그런데,넌 누구니? 윗마을 아이니?˝
망태기 뒤에 몸을 숨긴 꽃님이는 술래가 들을까봐 귀엣말로 소근소근
물었습니다.꼬비의 귓볼이 간질간질 할 만큼.
˝……그,그래,윗마을 아이야!˝
꼬비는 우물쭈물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캄캄한 밤에 꽃님이와 나란히 앉아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자꾸
만 가슴이 두근두근거렸습니다.꽃님이한테서 풍겨오는 달착지근한 꽃잎
냄새가 너무나도 좋았거든요.
꼬비는 술래가 못찾겠다 꾀꼬리,노래를 부를 때까지 그렇게 꽃님이 옆
에 앉아 있었답니다.

그 후,도깨비 마을로 돌아온 꼬비는 그만 병이 났습니다.그저 눈만 뜨
면 꽃님이가 보고싶었습니다.자나깨나 꽃님이 옆에만 있고 싶었습니다.
꼬비는 날마다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양지뜸으로 달려가는 게 일이
었습니다.그래봐야 고작 문틈으로 꽃님이가 언니들이랑 소꿉장난이며
각시놀이를 하다가 곤히 자는 걸 보는 것 뿐이었지만요.
´아,매일 꽃님이랑 같이 살 수는 없을까?´
꼬비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습니다.그러니 병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갔
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다못한 꼬비는 왕도깨비를 찾아갔습니다.
˝왕도깨비님,제발 저를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꼬비는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허허,도깨비처럼 좋은 게 어디있다고 그러느냐? 사람이 되면 하루종
일 땀흘려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되지만,우린 그저 도깨비 방망이 한
번 휘두르면 만사가 다 해결되니 좀 좋으냐?˝
˝그,그래도 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발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왕도깨비가 아무리 타일러도 꼬비는 듣지 않았습니다.그저 낮이고 밤
이고 찾아가 귀찮게 졸라댔습니다.어떻게든지 사람이 되어 꽃님이 옆에
서 사는 게 소원이었으니까요.
˝네 소원이 정 그렇다면 사람이 되게 해주마!˝
왕도깨비는 마지못해 꼬비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람이 되어 오래오래오래오래오래 살아라!˝
왕도깨비는 도깨비 방망이를 마구마구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습니다.그
러자 눈깜짝 할 사이에 꼬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와,내가 진짜 사람이 되었어! 사람이 되었어!˝
사람이 된 꼬비는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3
마을로 내려간 꼬비는 다짜고짜 황부자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제 이름은 꼬비라고 합니다.저를 이 집 하인이 되게 해주세요! 보실
래요? 전 이렇게 힘이 세답니다!˝
꼬비는 황부자 앞에서 쌀가마니를 번쩍번쩍 들어보이며 힘자랑을 하
였습니다.
˝허허,그 녀석 쬐그만 게 힘은 장사로구나.그래,바깥채에서 살도록 하
여라!˝
황부자는 꼬비를 하인으로 삼았습니다.
˝우와,신난다,신나!˝
마침내 꽃님이랑 같은 집에서 살게 된 꼬비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
습니다.그 날부터 꼬비는 일하는 틈틈이 꽃님이에게 꽃을 꺽어다 주고,
뚝딱뚝딱 장난감도 만들어주고,재미있는 놀이도 보여줬습니다.
˝꼬비야,참 재미있어!˝
꽃님이는 그럴 때마다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꼬비가 꽃님이와 꽃님이 언니들
을 데리고 앞개울로 물놀이를 나갔을 때였습니다.그런데 찰방찰방 물장
난을 하던 꽃님이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깊은 냇물에 빠진 것입니다.
˝아푸아푸!˝
꽃님이의 분홍 치마가 연꽃처럼 물에 동둥 떠내려갔습니다.
꼬비는 허둥지둥 물 속으로 뛰어들어가서는 꽃님이를 안고 나왔습니
다.꼬비의 팔에 안겨있던 꽃님이는 한참만에야 살그머니 눈을 떴습니
다.
˝꽃님 아씨,이제 됐어요! 살았어요!˝
꼬비는 꽃님이를 와락 껴안고 엉엉 울었습니다.너무 좋아서.
그 날밤,꽃님이는 방문 앞을 서성대고 있는 꼬비를 불렀습니다.
˝꼬비야,고마워! 자,이건 내 선물이야!˝
꽃님이는 꼬비의 손에다 유리 구슬 한개를 꼬옥 쥐어주었습니다.방안
이 환하도록 빛나는 초록빛 구슬이었습니다.꼬비는 그 구슬을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였습니다.
그 후,그야말로 꿈결처럼 아름다운 나날이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몇 년후 꽃님이는 연지곤지
를 찍고 멀리멀리 시집을 가버렸으니까요.
꽃님이가 가마를 타고 시집가던 날 꼬비는 황부자를 찾아가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주인님,제발 꽃님아씨를 따라가게 해주세요,네?˝
하지만 황부자는 오히려 호통을 쳤습니다.
˝그렇잖아도 동네 사람들이 네 녀석이 우리 꽃님이한테 딴마음을 먹
은 모양이라고 말들이 많은데,널 딸려보내? 네 이놈,하인 주제에 감히
내 딸 꽃님이를 좋아한단 말이냐? 에잇,고얀 놈! 안되겠다,당분간 저 놈
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아야지!˝
황부자는 꼬비가 꽃님이 뒤를 따라갈까봐 광에다 꽁꽁 묶어놓았습니
다.그러다가 며칠 후 풀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꽃님이가 떠난 후,꼬비도 황부자 집을 나왔습니다.꽃님이도 없
는데 구태여 황부자 집에서 살 까닭이 없었으니까요.
집을 나온 꼬비는 산 아래 작은 토담집을 짓고 혼자 살았습니다.가끔
꽃님이가 귀여운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나들이를 오는 걸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4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제일 행복했지!˝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꽃님이랑 지내던 그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려보
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한 해 두 해 세월이 지나 양지뜸에 살던
또래 친구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났건만,나이많은 할아버지 혼자만 죽
지않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몇 살이나 된 게지?˝
어느 날 할아버지는 곰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하지만 도무지 자기 나
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황부자집에서 같이 머슴살이를 하던 장쇠의
아들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아들을 낳고……이렇게 수많은 아이
들이 태어난 걸보면 정말 백년이 훨씬 넘었다는 걸 어렴풋이 알 뿐이
었지요.
˝처음에는 그저 오래오래 사는 게 좋은 줄 알았어.사람으로 사는 게
마냥 즐거운 줄 알았거든.하지만 그게 아니야.함께 지내던 친구들도 내
가 알던 마을 사람들도 이젠 다 떠나고 없는 걸˝
할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사는 게 시들해졌습니다.더군다나 사람들 입을
통해서 꽃님이 아씨도 이미 오래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더욱 더 그랬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자꾸자꾸 흘러갔습니다.하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
었습니다.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그렇게 몇백년이 흐른 것입니다.
˝아휴,도대체 사람이야,귀신이야?˝
언제부터인가 마을 사람들도 나이많은 할아버지를 슬금슬금 피했습니
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왕도깨비를 찾아가서 다시 도깨비가 될 수 없는지
좀 물어봐야겠어.˝
어느 날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왕도깨비를 찾아 깊은 산 속으로 들어
갔습니다.하얀 눈이 무릎까지 푹푹빠지는 산길을 지났습니다.꼬불꼬불한
산고개를 넘고 넘었습니다.그래도 도깨비 마을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
다.도깨비들이 사람들을 피해 깊고 깊은 산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산 속을 이리저리 헤매던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그만 발을 헛디
디는 바람에 깊은 굴 속으로 쑥 빠져버렸습니다.
굴 속은 캄캄하기만 했습니다.그런데 어디선가 소근소근 속삭이는 소
리가 들려왔습니다.
˝저건 사람이 된 꼬비가 아닌가?˝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자기 귀를 의심하였습니다.그건 바로 왕도깨비의
목소리였거든요.마침내 도깨비가 사는 마을에 온 것입니다.
˝아아,왕도깨비님,기억나세요? 저예요,저! 아주 오래 전,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던 꼬마도깨비 꼬비입니다!˝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런데 네가 여길 어떻게 왔느냐?˝
왕도깨비도 인자하게 물었습니다.
˝왕도깨비님,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제발 저를 다시 도깨비가 되게
해주십시오! 사람이 되어 이렇게 오래오래 사는 건 정말 싫습니다!˝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였습니다.하지만 왕도깨비
는 딱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꼬비야,난 이제 아무 힘이 없단다.도깨비 방망이를 잃어버려서 널 다
시 도깨비로 만들어 줄 수가 없구나.하지만 딱 한가지 비결이 있는데…
….˝
˝그게 뭡니까?˝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귀가 솔깃하여 물었습니다.
˝그건,네 몸이 아주아주 작아질 때까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다!˝
˝에이,제 나이에 무슨 사랑을…….˝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얼굴을 붉혔습니다.아득히 오랜 옛날 꽃님이 때
문에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일이 떠올랐거든요.
˝그래도 다시 도깨비가 되려면 그 방법 밖에 없느니라.˝
˝그렇군요…….˝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슬픈 마음으로 터덜터덜 되돌아 왔습니다.이 나
이에 또 누군가를 사랑하라니,그런 일이 또 있을 수가 있나요.
˝아,나는 도대체 죽지않고 언제까지 살아있어야 하나!˝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그저 한심하기만 했습니다.


5
집에 돌아온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무심코 왕도깨
비가 해준 말을 떠올렸습니다.그 때 문득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이런 생
각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지? 그래,맞았어! 이 나이를 먹도록 꽃님
이 말고 그 누굴 사랑한 적이 없었지! 도깨비였다는 걸 들킬까봐 늘 다
른 사람들과 담을 쌓으며 살아왔으니까!˝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너무
오랜 세월 사람노릇도 못한 채 나이만 잔뜩 먹은 게 부끄러워서.
˝그런데,이제부터 뭘 해야하지?!˝
할아버지는 마당을 왔다갔다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골목에서 재깔재깔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옳지! 이제 얼마 후면 정월 대보름인데 아이들에게 멋진 연을 만들
어주자! 요즘 신식 할아버지들이 어디 나만큼 연을 잘만들라구!˝
할아버지는 그 날부터 부지런히 연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대나무
살을 자르고,창호지를 오리고 붙였습니다.얼레도 만들고 굵은 연실도 준
비하였습니다.
하루하루 할아버지의 방에는 방패연,가오리연,치마연,호랑이연,까치연
같은 온갖 연들이 쌓여갔습니다.

마침내 달이 휘영청 밝은 보름날이 되었습니다.뒷산 높이 둥싯둥싯 둥
근달이 떠올랐습니다.아이들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얘들아,얘들아! 이리 온! 할애비랑 연날리기 하자꾸나!˝
나이많은 할아버지가 부르자 아이들은 쭈빗쭈빗 뒷걸음질을 쳤습니
다.산비탈 토담집에 혼자사는 할아버지가 어쩐지 무섭기만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할아버지 손에 들린 연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야아,도깨비 할아버지가 연을 만드셨다!˝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던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달려왔습니다.
˝할아버지,이 연,진짜 저희들 주실꺼예요?˝
˝그래.어서 뒷산으로 올라 가자꾸나!˝
신바람이 난 아이들은 연을 하나씩 집어들고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곤 하늘 높이높이 연을 날렸습니다.
보름달도 덩달아 둥실둥실 춤을 추는 듯 했습니다.
그 날 이후 나이많은 할아버지와 마을 아이들은 친해졌습니다.할아버
지가 다 허물어져가는 토담집에 아이들을 불러다가는 옛날이야기도 해
주고 재미있는 도깨비이야기도 들려주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마을 담장 밑을 지나던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사
람들이 내쉬는 한숨소리를 들었습니다.
˝새해가 된다구 우리같은 농사꾼들한테 무슨 좋은 일이 있담!˝
˝그래도 내년에는 제발 대풍년이 들었으면 좋겠구먼!˝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아팠습니다.마을 사람들
이 평생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도 늘 어렵게 사는 걸 알기 때문이지요.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옳지,그래!´
곰곰 생각을 하던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혼자 빙그레 웃었습니다.그리
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동네 밭으로 달려나갔습니다.
˝영차,영차!˝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혼자 밭을 갈고 돌멩이를 골라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름진 흙도 퍼다 날랐습니다.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그렇게 날마다 샛별이 뜰 때부터 새벽별이 돋을
때까지 쉬지않고 일을 했습니다.
온 동네의 논이며 밭을 갈고 엎었습니다.그 옛날 나이많은 도깨비들이
사람들의 은혜를 갚느라 몰래몰래 밤일을 해주던 것처럼요.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이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힘들게 일을 하고
돌아와 곤하게 잠을 자고 난 어느 날입니다.
˝어,왜 이렇게 옷이 커졌지?˝
할아버지는 훌렁훌렁해진 옷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그제서야 할아버
지는 왕도깨비의 말대로 자기 몸이 조금씩 작아지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내 몸이 작아지고 있구나!˝
신바람이 난 할아버지는 그 날부터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몸이 점점 작아질 때까지.
˝이게 어찌된 일이지? 도깨비가 다녀갔나?˝
아무 것도 모르는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그리곤 봄
이되자 논이며 밭에다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람?!˝
가을이 되자 사람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믿을 수 없을만
큼 다른 해보다 열 배 스무배 더 많은 곡식을 거뒀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렇게 곳간 가득가득 곡식을 쌓아놓고 흐뭇해 하던 어느
추운 밤입니다.마침 하늘에서 나풀나풀 첫눈이 내렸습니다.
˝모두,잘있구료! 드디어 나는 떠난다오!˝
어느 새 몽당빗자루처럼 작아진 나이많은 할아버지는 천천히 집을 나
섰습니다.평생동안 간직해온 초록빛 구슬을 손에 꼬옥 쥐고서.
사람들은 그렇게 나이많은 할아버지가 하얀 눈길을 따라 사각사각 도
깨비 마을로 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달디 잔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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