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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바위 / 이동렬 |  | |
| 마을 어귀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위는 늑대의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늑대바위라고 부르기도 했고, 엄마바위라고도 불렀습니다.
비내리는 밤이면 가끔 엄마바위가 있는 마을 어귀에서는 산짐승 울음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그 소리를 사람들은 엄마바위가 우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혹은 늑대가 산에서 내려와 엄마바위를 보고 우는 소리라고도 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 산마을에 사람이 살기 전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이 마을에 자리를 잡기 전에는 동물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모두 착한 동물들이었습니다. 서로가 믿고 도우며 살았습니다. 울타리도 없고 법도 없었습니다. 무엇 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평화로운 생활이었습니다.
동물들은 산신령님을 마음 속으로 믿으며 산신령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착하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 밤이었습니다.
마을에는 이제까지 없던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재토끼네 막내가 짐승에게 물려간 것이었습니다.
평화롭던 마을이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서로 못믿어 했고 불안해 했습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동물들이 모두 재토끼네로 모였습니다. 재토끼네 식구는 넋이 나가 아무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반은 죽은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재토끼네한테 어젯밤의 이야기를 물어 볼 형편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몽둥이라도 들고 아기재토끼를 잡아간 놈을 뒤쫓아 봅시다!˝
제일 늙은 소 영감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옳습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우리 손으로 잡아내야 합니다!˝
동물들은 흥분해서 몽둥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야, 여기 이상한 발자국이 있다!˝
앞서 가던 누렁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모두가 긴장을 했습니다.
발자국은 흰눈 위를 급하게 뛰어 달아난 게 분명했습니다. 가끔 가다가 언덕이 진 곳에서는 아기토끼가 눈에 끌린 자국도 나 있었습니다.
발자국은 뒷산의 참나무 숲 속으로 숨어 들었습니다.
발자국을 따르는 동물들은 손에 잡은 몽둥이에 저마다 힘을 더했습니다.
발자국은 다시 싸리골을 지나고도 몇 잔등을 더 넘었습니다. 언 개울을
건너 뛰고 찔레 덤불도 빠져 나갔습니다.
동물들은 몽둥이를 잡은 손바닥에 마른침을 뱉고는 힘을 더 주었습니다.
발자국은 절벽에 휑하니 뚫린 굴 안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들여다보이는 굴 안은 컴컴하기만 한 게 무서웠습니다.
동물들은 서로 불안한 눈빛으로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한참만에 깡마른 누렁이가 앞으로 나셨습니다. 그러자, 곰도 나섰고, 말도 나섰습니다.
동물들은 불을 켜 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누렁이를 따라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습닏다. 밖에 남은 동물들도 ´와 와´소리를 질러 주었습니다.
그 때 굴 속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후다닥 튀어나왔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람에 놀라 모두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너무너무 갑자기 당한 일이라 몽둥이를 휘두를 짬도 없었습니다.
˝아니, 저건 늑대란 놈 아니냐!˝
밖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말 늑대였습니다. 그것도 같은 마을에 엄마와 단둘이 사는 어린 늑대였습니다.
동물들은 온 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어간 아기토끼의 털과 피를 보고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동물들은 아기토끼의 장례를 잘 치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에 숨어 있는 어린 늑대를 잡아다 마당 가운데에 묶어 놓았습니다.
˝자, 여러분! 대대로 평화스럽던 우리 마을에 갑자기 공포의 마을로 만들어 놓은 이 놈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제일 나이가 많은 소 영감이 떨리는 소리로 외쳤습니다.
˝죽여야 합니다! 우리 손으로 죽여야 마땅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아기토끼의 원수를 같고 다시 평화스런 마을을 만들어야 합니다!˝
젊은 동물들은 흥분해서 몽둥이를 휘두를 기세였습니다.
˝잠깐! 이성을 찾습시다. 아기토끼를 잡아 먹었다고 우리 손으로 또 늑대를 죽인다는 것은 결코 안 되는 일이오.
우리 동물들은 남을 죽여서는 안 되오. 그러니 우리 모두 저 놈을 마을 밖으로 쫓아내고 다시는 이 마을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합시다.˝
나이가 지긋한 염소가 말했습니다.
˝나도 염소 어른 말씀이 옳다고 봅니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목숨을 빼앗아서야 되겠습니까?˝
양도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그게 좋겠소. 그 말이 맞는 말이오.˝
˝그러면 여러분들의 뜻대로 이 시간부터 이 놈을 마을에서 내쫓기로 하겠습니다.˝
소 영감은 여러 동물들이 보는 앞에서 늑대란 놈을 마을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어린 늑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마을 밖으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동물 마을은 다시 평화로와졌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화로왔습니다.
그날 이후, 늑대 엄마는 몸져 앓아 누웠습니다. 아들의 잘못은 자기가 그릇되게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늑대 엄마는 새벽마다 맑은 샘물을 떠놓고 산신령님께 빌었습니다.
다시 착한 아들이 되어 돌아와 이마을에서 살게 해달라고.
마을에서 쫓겨난 어린 늑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돌아다니며 약한 짐승을 잡아 먹고 제 멋대로 행동할 수가 있으니 말이예요.
그러나 며칠이 지나가자 고향 마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도 보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저보다 힘센 동물을 만나서 도망을 칠 때는 더욱 더 고향 마을이 그리웠습니다.
어린 늑대는 며칠째 계속되는 장마비를 맞으며 먹이와 잠 잘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배가 몹시 고파습니다. 몸도 춥고 떨려왔습니다. 번쩍번쩍 천둥 번개가 칠 적마다 자즈러지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어린 늑대는 자기도 모르게 고향 마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고향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에 와서는 마을을 향해 큰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캐-앵-!˝
그 소리는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앓아 누워 있던 엄마늑대는 무엇에 홀린 듯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마을 어귀를 향해 힘차게 내달렸습니다.
엄마늑대가 마을 어귀에 다달았을 때 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이제까지 보도 듣도 못하던 이였습니다.
˝나는 너희들이 모시고 있는 산신령이니라. 네 마음은 미리부터 잘 알고 있었느니라. 그러나, 마을의 행복을 위해서는 아들을 만나게 할 수가 없느니라.˝
산신령님은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산신령님, 저는 어떤 벌이라도 내리시면 달게 받겠사오니 제 아들놈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셔요. 네 신령님!˝
˝어떤 벌이라도 받겠다구? 네 몸이 바위로 굳어 버리는데도…˝
˝네, 신령님! 저는 이미 다 산 목숨이니 제 자식이 착한 마음만 갖게 해 주신다면 바위가 되어도 괜찮겠습니다요!˝
˝네 마음이 정 그렇다면 알겠노라.˝
신령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늑대는 앉았던 모습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습니다. 늑대 바위로 변한 것입니다.
어린 늑대는 무엇에 이끌리듯 평화스런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고향 마을의 동물들도 예전과 똑같은 마음으로 어린 늑대를 맞아 주었습니다.
어린 늑대는 고향 마을로 돌아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집엔 그리운 엄마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동네를 다 찾아봐도 엄마는 없었습니다.
어린 늑대는 꿈 속에서 산신령으로부터 자기 때문에 엄마가 바위로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늑대는 슬펐습니다.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엄마 품 속에도 안겨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마을 어귀에 나가 늑대바위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동물 마을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금도 비가 오는 밤이면 늑대 자손들은 엄마바위를 찾아와 울다가곤 하는 것입니다. 옛 엄마를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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