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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의향연
사회주의 혁명시도의 실패이후, 계속적으로 맑시즘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는 맑시즘 안에서의 대안들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현실사회가 너무도 많이 변화했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적용시킬 수 없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맑스의 논의가 우리 사회에 있어서 어떠한 의미도 가지지 못함을, 계급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다지 필요치 않다는 식의 논쟁도 일어났었다. 그렇지만 저자는 여전히 맑스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맑스에 대해, 그의 사상에 대해 손을 뻗힌다. 그것은 단순히 예전에 사회를 이끌던 하나의 이론이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고찰할 만큼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많은 변천에도 불구하고 100여년전에 맑스가 이야기한 것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 틀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 아버지의 불행했던 삶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한 서점에서 구했던 맑스의 초기 저작에서 저자는 맑스주의 휴머니즘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맑시즘에 대한 경험들과 함께 어우러져, 그로 하여금 평생에 걸쳐 맑시즘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지난 날의 사회주의 혁명에서 보여준, 민중에 대한 또 다른 의미의 수탈과 착취. 사람들은 그러한 겉모습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뛰어난 이유로 꼽았고, 맑시즘이 내포할 수 밖에 없는 본연의 내적 모순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맑스가 이야기 한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지난 날의 그릇된 사회 모습에 어떠한 질문도 던지지 못한체, 그저 맑스의 사상을 부정하기에 바뻤던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맑스의 사상은 죽지 않았다. 그의 사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지 않게 자행되는 자본에 의한 노동자 수탈이 끝날 때 까지 죽을 수 없다. 여전히 그의 사상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노동력을 팔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지속되어야만 한다. 비록 노동의 유형이 직접적인 몸을 파는 행위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사무실에 앉아 무언가를 관리하는 행위로 나타나 혹자는 그것을 ´신쁘띠부르조아지´라고 부를지라도.... 자본은 자애로울 수 없었다. 기계를 놀게 하면 그마만큼의 손해가 나고 공장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 하나만을 들어 수많은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그리고 지난 날 그 ´노동자´라 불리우는 범주 안에는 희망의 덤불 안에서 끝없이 웃고 뛰놀아야 할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에겐, 그러한 부당함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못한 죄가 있다. 아니, 우리는 그러한 일자리가 있음에 감사하고, 그러한 노동을 함을 행복해 하는 일종의 ´허위의식´마저도 있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은 맑시즘의 등장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역할은, 맑스주의를 필요로 하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by 영풍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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