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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요어떻게읽을것인가 |  | |
| 언론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모습들을 보며 대중문화에 대해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문화의 주체 아닌 일방적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대중의 존재를 통해, 나는 대중 안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소외를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이들은 그들의 취향(?) 혹은 대세적 흐름에 따라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어나가고, 우리는 그것들에 영혼을 빼앗긴다. 그렇게 조금씩 잠식 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화가 내 것’이 아닌, 내가 문화의 것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런 나의 고민과 조금은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대중문화의 한 저변을 이루고 있는 ‘가요’에 대한 고찰은 이 사회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와 같은 고찰은 지금껏 일방적인 수용만을 일삼아왔던 우리에게 자신이 수용하는 문화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야기는 ‘가요’라는 명칭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용어이기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 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된다는 주장과 달리, ‘가요’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지던 명칭임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논쟁은, 그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고찰 부족과 더불어, 이 시대의 모든 음악이 ‘가요’라는 이름 하에 음악성을 상실하고 대중성에의 집착을 일삼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가요’라는 명칭에의 거부는 ‘가수’라는 정체성의 재정비로 이어지는 듯 하다. 상업성과 함께 무참히 쏟아져나오고 있는 수많은 이들 속에서 ‘뮤지션’이라는 이름은으로 불리우길 원하는 것은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차별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닌 싱어 송 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인정받고자 하는 하나의 흐름. 하지만 거대자본의 기획에 의해 스케쥴을 공지받고 움직여나가는 이들 역시 싱어 송 라이터 로서의 자신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지금에 있어서 ‘뮤지션’이라는 단어는 무색하게 느껴짐을 어쩔 수가 없다. 같음 속에서 다름을 지향하는 이들의 흐름과 달리, 처음부터 ‘저항’을 위해 이용되어지는 음악적 장르도 있었다. 작가는 힙합, 록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저항음악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있는 듯 하다. 기존에 존재하던 흐름을 깨고 좀더 거친 말투를 툭툭 내던지며 10-20대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이들 음악은 전통적 저항을 상징하는 포크의 그것과는 세삼스레 달라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저항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미 그 저항 뒤에는 그들의 저항을 정당화 시켜주는 기획사의 매니지먼트가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이박사를 통해 다시 보는 ‘뽕짝’ 이라는 장르가 의도적인 저항의 가식성을 폭로하는데는 더 적절치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부분을 통해 작가는 가요에 있어서 늘 논쟁이 되어지고 있는 대중성과 통속성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가요는 가요일 뿐 클래식일 수 없다는 식의, 가요에 대한 평가절하와 동시에 함께 공유하는 음악으로서의 가요에 대한 이중적인 관점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여성성’에 대한 이야기가 새롭게 느껴진다. 비슷한 레파토리를 담당하며 사랑을 미화시키는 가사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여성성’. 그 흐름을 깨어 나가고 있는 한영애, 이상은, 자우림의 김윤아 등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그들의 음악을 접했을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게 해줄 듯 싶다. 무조건 듣는 것이 음악은 아닐 것이며, 그 안에 숨겨져있는 너무 많은 이여기들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성을 운운하며 듣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 안에서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흐름을 읽어나갈 수 있다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by 영풍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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