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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
천재는 왜 단명하는 것일까. 아니, 단명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기억되기 때문에 천재인 것일까.
가끔씩은 삶과 죽음이라는 모호한 영역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모든 인간은 시대와 사회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유한한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몇몇 이들은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러한 운명을 뛰어넘으려 든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보다 깊은 불안감과 좌절감뿐이기에, 어쩌면 그래서 천재는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우리 세대는 그녀의 이름만을 어렴풋이 들어보았을 뿐, 그녀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는 기쁨을 맛보진 못했다. 그녀에 대해 무수히 난무하는 소문들을 긁어모아 우리 나름대로의 한 인격체를 상상해갔고, 그렇게 그녀는 현실 아닌 현실 속의 사람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는지 타살이었는지 어느 누구도 진실을 말해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 직전까지의 행보, 모습들 속에서 나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움켜쥐려 했던 그 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음을, 자신의 삶에 대한 궁극적인 포기였음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시대적 불행과는 격리된 삶을 살았던 그녀는 참으로 행운아였다. 하지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공부 이외의 것에 대해 허락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너무도 큰 존재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어쩌면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에 대한 양가감정은 훗날 부모님에 대한 그녀의 기록 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그녀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던 어머니에 대해 그녀는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반면 아버지는 너무도 크고 다가갈 수 없는, 무서운 존재로서 그녀에게 기억되고 있다. 어쩌면 대학에 입학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아버지라는 너무도 거대한 울타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자유를 꿈꾸었고 그 꿈은 끊임없이 그녀의 자아에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녀는 두려움을 뒤로 한 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학문에 있어서의 자유를 추구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독신주의자인 그녀는 결혼이라는 또 하나의 장막을 치게 되고 짧게나마 허락된 자유는 그것으로 끝이었던 것 같다.
그녀의 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과의 대화를 즐겼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어디에도 존재치 않았다. 삶은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다른 이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무언가 특별해야만 한다는 사고는 끝없이 그녀의 목을 졸랐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그녀의 강한 이미지 속에 잠재되어 있는 너무도 여린 그녀는 자신의 껍데기를 깨려 들 때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상처를 확인할 뿐이었다. 그녀는 말하고 싶었고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다스러워질수록 그녀의 이야기 속엔 핵심이 없었고, 사람들과의 시간 이후에는 잠 못 이루는 외로움만이 그녀와 함께할 뿐이었다.
그녀가 추구한 자유는 하나의 이상에 불과했다. 대학 강사로서의 그녀는 끊임없이 현실에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의 약한 가슴은 현실을 부정할 용기가 없었다. 철저히 현실에 안주해 살면서도 그 현실을 부정한 결과 그녀는 자신을 포기하는 것으로 세상과의 싸움을 정리한다. 세상은 그렇게 천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증명할 뿐이었다.
그녀는 떠났다. 그리고 오늘날 그녀보다 덜 똑똑하고, 그녀보다 조금 더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는 이 세상에 남아 그녀의 흔적을 쫓고 있다. 나의 인생이 어디까지 허락될지 조용히 내 자신에게 물으면서, 그녀보다 조금 더 치열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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