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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와 차돌멩이 /이동렬
호도와 차돌멩이


/이동렬


솔빛나네 집 화단 귀퉁이 땅굴 속에는 생쥐 형제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생쥐 형제는 힘을 합쳐 가게에서 호도 한 알을 훔쳐왔습니다.
˝아이고, 힘들어. 아이고!˝
˝어찌나 힘든지 등에 땀이 다 났네.˝
˝힘이 들어도 더 훔쳐다 놓자. 며칠 지나면 모두 팔아 버리기 쉬워.˝
˝조금만 쉬었다가 해. 너무 큰 것을 물고 왔더니 아래위 턱이 짜개지는 것 같고 이빨이 아파 죽겠어.˝
˝그래? 그럼 조금 쉬었다가 하자.˝
생쥐 형제는 땀을 들이며 앉아서 쉬었습니다.
등에 났던 땀이 식으니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자, 땀이 식으니까 추워진다. 어서 가서 또 물어 오자.˝
생쥐 형제는 호도가 있는 가게 안으로 살살 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제일 큰 호도를 골라 하나씩 입에 물었습니다.
오는 길에 힘이 들어 몇 번이고 땅에 떨어뜨렸지만 기어코 물고 왔습니다.
쥐굴 속에는 이제 호도가 네 개나 쌓였습니다.
그런 호도를 옆에 묻혀 있던 차돌멩이가 보았습니다.
´어! 저 돌멩이는 이상하게 생겼네. 무슨 돌멩이가 저렇게 쭈글쭈글하게 생겼담?´
차돌멩이는 바늘 끝 같은 아주 작은 눈을 뜨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차돌멩이는 궁금한 나머지 호도에게 큰소리로 물었습니다.
˝얘, 너는 어디서 온 돌멩이냐?˝
˝나보고 하는 소리냐? 나는 돌멩이가 아니야.˝
호도가 차돌멩이 쪽을 돌아보며 대꾸했습니다.
˝돌멩이가 아니라구? 돌멩이가 아니면 뭐냐?˝
˝나는 호도라구 불러.˝
˝하하하…! 호도? 호도라? 그것 이름 한번 이상하구나. 그런데 호도가 뭐
니?˝
차돌멩이는 처음 듣는 이름에 신기함마저 느꼈습니다.
˝호도는 우리를 보고 부르는 이름인데 사과처럼 큰 나무에 달리는 열매야.˝
호도는 주눅든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니? 그런데 참 불쌍하게 됐구나. 곧 생쥐들의 저녁 식사거리가 되어 먹히고 말테니 말이다. 그러기에 나처럼 돌멩이로 태어나지 않구. 그것도 단단하기로 제일가는 우리 같은 차돌멩이로 말야.˝
차돌멩이는 단단한 몸을 가볍게 흔들며 측은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뭐라구! 생쥐들의 식사거리로 우리를 먹을 거라구?˝
호도는 차돌멩이의 말을 듣고 나니 더럭 겁이 났습니다.
´아아! 이대로 내 일생이 끝나고 마는구나. 나는 싹을 틔워 내 종자들을 주렁주렁 열게 하려고 했는데….´
호도는 금세라도 생쥐 형제가 달려와 자기들을 깨물어 먹을 것만 갔았습니다.
˝우리를 한꺼번에 다 먹지는 못할 거야. 누가 살아남든지 꼭 싹을 띄워야 해. 너희들도 알았지?˝
˝맞아, 우리는 무슨 수를 쓰든지 우리의 종자들을 퍼뜨려야 해. 잘못하다가는 우리들은 영영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말지도 몰라.˝
호도들은 모두 불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컴컴한 굴 속이고 보니 더욱더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초조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순간순간이 호도들의 피를 말렸습니다.
˝찍찍!˝
그 때 밖에서 생쥐들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쥐들이 돌아온다!˝
˝……!˝
호도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모두 핏기가 하나 없는 얼굴이 되어 곧 닥쳐올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생쥐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은 하늘이 내린 운명이구나. 이제는 생쥐들에게 먹힐 염려는 없게 되었어. 그러니 그렇게 떨지 말고 안심하라구.˝
차돌멩이가 큰 소리로 일러줬습니다.
˝뭐라구? 우리가 생쥐들의 밥이 안 된다구?˝
호도들이 합창이라도 하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 아까 그 생쥐 소리는 고양이한테 잡혀가는 소리였어. 그러니까 안심하라구.˝
˝그게 정말이니?˝
˝와! 이제 우리 종자를 퍼뜨릴 수 있게 됐구나!˝
호도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들뜬 기분에 며칠을 보냈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주위의 흙이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땅이 점점 얼어들어 왔습니다.
호도들은 추워서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너희는 곧 얼어서 썩겠지만 나는 썩지 않고 몇 백 년이고 오래 살 수가 있다. 이제껏 살아온 것만 따져봐도 기억을 할 수 없을 정도거든.˝
차돌멩이가 호도를 보고 으스대며 말했습니다.
˝그건 모르는 소리야. 우리가 더 오래 살 수가 있다구.˝
한 호도가 입을 비쭉이며 대꾸했습니다.
˝뭐라구? 너희들이 나보다 오래 살 수 있다구?˝
˝그래.˝
˝너희들, 날이 춥더니 정신이 돈 모양이구나. 겨울만 나면 썩어 없어질 신세는 모르고……. 쯧쯧쯔!˝
차돌멩이는 안 됐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너는 누가 다른 돌이나 쇳덩이에 지어 던지면 깨져 버려 일생이 끝나지만 우리는 다시 새싹으로 태어나 큰 나무가 될 수 있지. 그 큰 나무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새싹으로 태어나곤 하면 너보다 더 오래 살 수가 있단다. 오래 살기 위해 우리의 몸을 잠시 죽일 뿐이야. 몸은 죽지만 영혼은 영원히 다음 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래? 그렇다면 잘해 보라구. 흥!˝
차돌멩이는 코방귀를 뀌었습니다.
호도들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이후 차돌멩이와 호도들은 등을 돌리고 지냈습니다.

기나긴 겨울이 지났습니다.
땅 속이 훈훈해지며 몸이 근질근질해졌습니다.
˝이제야, 새 봄이 오는군.˝
˝땅이 더워지는 것을 보니 그렇구나.˝
호도들은 가슴이 간지러워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다 못한 호도들은 가슴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딱!˝
˝따닥!˝
호도들이 가슴에 힘을 모으는 순간 호도 껍질이 갈라지면서 그 틈새로 노란 새싹이 고개를 내밀 준비를 했습니다. 콩나물싹처럼 아주 여린 한 점 새살이었습니다.
˝어! 너희들이 죽어 버리면 나 혼자 심심해서 어떻게 해.˝
차돌멩이가 깜짝 놀람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우리는 죽는 게 아니래두 그래. 너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해 다시 태어나는 거야.˝
˝정말?˝
차돌멩이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렇다니까. 우리들 싹이 자라서 땅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와 우리가 본 것을 죄다 너에게 전해 줄게. 그러니까 너는 우리 뿌리에 네 몸을 기대고 귀를 열어 놔.˝
호도들은 들뜬 목소리로 말하면서 열심히 흙을 비집었습니다. 흙을 비집는 속도가 무척 느렸지만 아주 행복했습니다. 흙을 비집는 손길이 한결 가벼워 보였습니다.

며칠 안 되어 호도는 연두색 새싹을 흙 밖으로 안테나처럼 내놓고 세상 이야기를 자기 뿌리에 기대 있는 차돌멩이에게 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자세하게.
차돌멩이는 될 수 있는 대로 몸뚱이를 호도 새싹 뿌리에 대고 신기하기만한 바깥 소식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호도싹은 호도싹대로 뿌리를 차돌멩이 쪽으로 뻗어 차돌멩이를 감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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