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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나 아저씨 ( 이영호 ) |  | |
| 보이나아저씨
이 영 호
반은 외고 읽으면서 아이는 금세 천자문 한 번 읽기를 끝냈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늘 천(天), 따 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천지현황이오.˝
˝천지현황은 하늘과 땅의 빛깔이 검고 누르다는 뜻이니라. 크윽 쿨룩쿨룩, 쿨룩 크윽…….˝
긴 담뱃대를 물고 조는 듯 앉아 계시던 아버지가 아이가 읽은 천자문 첫 구절을 잇달아 풀이해 주시고, 천자문 두번째 읽기는 끝까지 이런 순서를 밟도록 돼 있습니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는 좀처럼 끝나질 않았습니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아버지는 전신
을 흔들며 기침을 토해내시다가 갑자기 놋재떨이에 땅땅 담뱃재를 떠셨습니다. 담뱃대 속에서 쏟아져나온 아직 덜 탄 담배가 살아 있는 작은 괴물처럼 하얀 연기를 스물스물 뿜어올렸습니다.
아버지는 담배를 태우시다가 기침이 나기 시작하면 곧잘 애꿎은 재떨이를 땅땅 두들기십니다.
두 번 다시 담배 따위는 일없다는 듯이……. 하지만 기침이 멎으면 이내 담배통을 당기십니다.
아이는 숨이 꺽꺽 막힐 만큼 기침을 토하게 만드는 그 고약한 담배를 왜 자꾸 태우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기침이 가까스로 멎는 걸 보면서 아이는 펴놓은 천자문으로 마악 눈을 돌리려는데, 문 앞에서 사람 소리가 났습니다. 아버지를 찾는 소리였습니다.
˝거 누구요?˝
아버지는 새 담배를 재시던 손을 멈추셨습니다.
˝저올씨다.˝
아이는 얼른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열었던 아이는 화드득 놀라며 두어 발짝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눈썹이 다 빠져버린 뒤틀린 눈, 울퉁불퉁한 시뻘건 얼굴의 보이나아저씨가 꺼벙한 모습으로 댓돌 위에 엉거주춤 서 있었던 것입니다.
˝들어오게나. 쿨룩 크윽 쿨룩쿨룩.˝
˝여쭐 말씀이 있어서 …….˝
˝크윽, 들어와야 쿨룩쿨룩, 말을 할 게 아닌가. 너는 밖에 나가 놀아라.˝
아이는 튕기듯 옆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도망치듯 사랑채를 등진 아이는 씨근벌떡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보이나아저씨가 무엇 때문에 아버지를 찾아왔는지 아이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보이나아저씨가 바깥 출입을 하는 모습을 아이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방에서만 틀어박혀 지내는 모양이었습니다. 방안에서 글을 쓴다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그걸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대학까지 다녔다고 하지만 그것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가 뒷산 보리밭에서 어떤 젖먹이를 잡아먹고, 피묻은 입을 쩍쩍벌리며 엉엉 울더라는 소문은 어떤 소문보다도 진짜일 거라고 아이는 믿고 있었습니다. 보이나아저씨가 먹은 젖먹이가 누구네 집 젖먹이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것을 똑똑히 본 사람이 누군지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와 아이 또래의 친구들은 모두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아이 친구들은 보이나아저씨를 무서워했습니다.
˝보이나, 안 보이나. 보이나, 안 보이나.˝
어쩌다 떼를 지어 보이나아저씨 집 앞을 지나게 되며 아이와 아이 또래들은 합창이나 하듯 이런 소리를 곡조에 맞춰 소리칩니다. 흘깃흘깃 보이나아저씨 집을 곁눈질하면서 어쩌다 마당에 서있는 보이나아저씨를 만나게 되면 아이들은 질겁을 하고 도망치기 바쁩니다.
˝보인다! 보인다!˝
소리를 비명처럼 짜올리면서.
´보이나´는 ´나이보´란 말을 꺼꾸로 해서 만든 말입니다. ´나이보´는 ´문둥이´라는 일본 말입니다.
해방이 되기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돌아왔다는 보이나아저씨는 매일 듣는 아이들의 그러한 고함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문으로 뛰쳐나와 욕을 하거나, 겁주는 일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숨을 몰아쉬고 뒤란으로 발길을 옮겨 놓았습니다. 뒤란으로 돌아가면 이내 가파른 언덕배기입니다. 거기에 해묵은 모과나무가 서 있습니다. 아이의 세 아름이 넘는 그 모과나무 고목 아래가 바로 아이의 놀이터입니다. 굵고 가는 모과나무 뿌리가 수없이 언덕배기 땅 밖으로 내뻗
쳐 있습니다. 말 잔등처럼 생긴 것도 있고 또아리를 튼 뱀처럼 생긴 것도 있습니다. 모과나무 가지에 머슴이 매달아준 튼튼한 그네도 있습니다. 게다가 모과나무 밑둥치엔 수없이 많은 개미집이 있습니다. 가파른 언덕배기는 미끄럼틀보다 더 신나는 미끄럼틀이 되어줍니다.
학교에서 돌아와 숙제를 끝내고 천자문을 두 번 읽고 나면 아이는 노상 모과나무 아래서 해를 보냅니다. 아이 또래의 마을 아이들도 몰려와 어울립니다. 모과나무 뿌리말을 타고, 그네를 타고, 미끄럼을 탑니다. 꼬챙이로 개미집을 후비고, 가지가 많아 쉽게 타오를 수 있는 모과나무에 기어올라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릅니다.
그럴 때면 모과나무 위쪽에 있는 참나무 끝에 집을 짓고 사는 까치들까지 괜히 하늘을 휘젓고 다니며 지저귑니다. 뒤란으로 돌아가다가 아이는 주춤 걸음을 멈췄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이 모과나무 그루터기 밑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마주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개미집을 보고 있는게 틀림없었습니다. 아이는 다시 숨이 가빠오르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나가 어떻게 저런 이쁜 가시내를 낳았는지 몰라, 고 참 이쁘다.˝
아이는 문득 하림댁 머슴이 한숨을 내쉬며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이담 쟤들이 크걸랑 성구 네 각시로 하나 꿰차라잉. 어때?˝
아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하림댁 머슴은 머저리처럼 히히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게 목발을 손바닥으로 딱딱 치고, 걸걸한 목청으로 육자배기를 뽑아대며 아이의 곁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아이가 생각해도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은 참 예쁩니다. 얼굴이 마치 달밤에 보는 박꽃처럼 하얗습니다. 강동 잘라버린 단발머리가 나풀거리다가 반쯤 덮어버리면, 영판 박잎에 반쯤 가린 박꽃이었습니다. 얼굴뿐만 아닙니다. 옷도 순옥이가 입은 왕닷새 무명옷이 아닙니다. 누덕누덕 깁다
니 어림도 없습니다. 빛깔이 곱고, 무늬가 화려하고, 무슨 천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옷이었습니다. 이따금 새빨간 스웨터도 입긴 했지만 언제나 새옷같이 깨끗한 그런 옷만 입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언덕배기를 반쯤 추오르다가 한 발이 죽 미끄러졌습니다. 아이는 손을 짚으며 간신히 언덕 아래로 굴러내리는 걸 면했습니다. 아이는 다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려다보고 있었습니
다. 되게 놀란 얼굴이었습니다. 아이는 계면쩍게 씩 웃었습니다. 아랫도리에 힘을 불끈 쥐고 다시 걸음을 옮겨놓았습니다.
말잔등처럼 생긴 모과나무 뿌리에 앉은 아이는 몇 번 말 타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그만뒀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이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늬네 아버지 우리 집에 와 있다.˝
아이는 제가 무엇 때문에 그런 소릴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늬네 아버지 우리 집 사랑방에 와 있어.˝
아이는 다시 말했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큰딸이 말없이 고개를 두어 번 까딱거렸습니다.
˝지금 막 우리 사랑방에 들어갔어.˝
˝알아, 우리 아버지가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 줬어. 이 놀이터에 참 오고 싶었어.˝
아이는 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말잔등보다 더 위에 있는 뱀또아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아이는 머리 위에 축 늘어져 있는 그네를 툭 건드렸습니다.
˝그네 타도 좋아.˝
아이는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무서워서 못 타.˝
보이나아저씨의 큰딸이 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작은딸은 여전히 눈만 말똥거렸습니다.
˝개미집이 참 많아.˝
보이나아저씨의 큰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 개미들이 이 모과나무 맨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걸.˝
˝어머 그렇게 높이?˝
˝그럼 더 높이 올라 갈 수도 있을걸. 나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어.˝
˝무섭잖니?˝
˝까짓거 뭐가 무서워.˝
아이는 벌떡 일어섰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딸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 타는 재주를 보여줄 작정이었습니다.
˝개미들은 참 의가 좋은가 봐, 아무리 봐도 물리지 않아.˝
보이나아저씨의 큰딸은 엉뚱한 소릴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까짓거 난 매일 보는걸.˝
아이는 내뱉듯 퉁명스럽게 이죽거렸습니다.
˝아빠! 언니, 아빠 오셔.˝
그때 여태 꼼짝 않고 눈만 말똥거리던 보이나아저씨의 둘째딸이 발딱 일어서며 소리쳤습니다.
아이는 소스라치듯 놀라면서 홱 몸을 돌렸습니다. 보이나아저씨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질린 표정으로 두어 발짝 뒷걸음질쳤습니다. 어디로고 마구 내뺐으면 싶었지만 그럴 짬이 없었습니다. 몇 발자국 더 뒷걸음질을 쳤을 뿐, 아이는 전신을 떨면서 서 있었습니다.
˝잡히기만 하면 보이나아저씬 우릴 먹어 버릴거야. 맨날 욕을 들어 붓는 우릴 안 잡아먹고 그냥 두겠니? 아이들의 간을 내먹으면 문둥병이 낫는댔거든, 정말이래.˝
언젠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강호가 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이의 몸은 점점 되게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헛헛헛……넌 게처럼 뒷걸음질 선수구나, 응. 왜? 내가 그렇게도 무섭니. 이 보이나아저씨가 널 막 때려줄 것같이 뵈니. 헛허……아무래도 보이나니까 헛허허. 자, 미나야 그만 집에 가자.˝
말을 하다 말고, 보이나아저씨는 둘째딸을 덜렁 안아 올렸습니다. 둘째딸은 두 팔로 보이나아저씨의 목을 감고 빠안히 내려다봤습니다. 보이나아저씨의 괴상한 얼굴과 나란히 보이까 그 딸은 영판 썩은 초가 지붕 위에 핀 박꽃이었습니다. 그런 느낌과 함께 보이나아저씨의 표정이 아이에
겐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잘 있어.˝
보이나아저씨의 큰딸이 해말쑥한 손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손을 반쯤 들어 올리다가 뻣뻣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둘째딸을 안고 걸음을 옮겨 놓으려던 보이나아저씨가 갑자기 휙 돌아섰던 것입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뒤틀린 눈에 웃음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거참, 그러고 보니 하마터면 내가 인사를 빠뜨릴 뻔했구나. 네 친구들한테도 전해주면 고맙겠어. 내가 너희들의 ´보이나, 안 보이나´하는 소리만 듣고도 네 친구들의 재롱스럽고 귀여운 모습이 내겐 환히 보였단다. 정말이야, 그랬는데 우리 식군 모두 내일 멀리 떠난단다. 아주 멀리
말야, 잘 있어 공부 잘하고.˝
보이나아저씨의 뒤틀린 눈이 엄마 곁을 멀리 떠날 때의 아이의 눈처럼 축축이 젖어들고 있음을 아이는 보았습니다. 아이는 갑자기 어깨가 축 처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답답해 왔습니다.
점점 멀어져가는 보이나아저씨와 보이나아저씨의 큰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는 화드득 놀란 얼굴로 언덕배기를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안채를 지나 사랑으로 뜀박질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상반신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한문을 외우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보이나아저씨가 이사를 간대요. 지금 막.˝
아이는 숨을 씨근거리며 생각 없이 냅다 고함을 지르다가 찔금해져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이는 더럭 겁먹은 얼굴이 되었습니다. 너무 버릇없는 행동을 했다 싶었던 것입니다.
˝이노움 그게 무슨 쌍놈의 말버릇이냐 응, 고이연놈!˝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아버지의 입에서 벼락같은 불호령입니다. 커다랗게 흡뜨신 아버지의 눈은 무서웠습니다. 아이는 질린 얼굴을 아래로 푹 빠뜨렸습니다.
˝이놈, 이리 들어와 아랫목에 꿇어 앉아라. 얼른, 이놈!˝
화를 내신 아버지를 대하면 아이는 언제나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몸뚱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하학길에 아이는 정거장에 서 있는 기차를 보았습니다. 기차는 연기와 김을 물씬물씬 토해 올리며 물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걸 보자 괜히 신이 났습니다. 팔을 휘두르며 기차 옆으로 달려갔습니다. 정거장에 서 있는 기차를 볼 때마다 아이는 언제나 이렇게 신이 나는 것
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거장 안으로 기어들 수 있는 허수룩한 철조망 가에 바싹 다가선 아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치떴습니다. 보이나아저씨를 보았던 것입니다.
아이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보이나아저씨가 열차 차장에게 마치 개 몰리듯 열차 밖으로 몰려 내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이 울면서 뒤따라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보이나아저씨의 부인도 뭐라고 소리치며 뒤따라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재빨리 철조망을 치켜올리며 다람쥐처럼 정거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플랫폼 위의 사철나무 뒤에 몸을 숨긴 아이의 눈과 귀는 온통 보이나아저씨 쪽으로 쏠리고 있었습니다.
˝걱정 말고 안으로 들어가 있어요. 난 기차 지붕 위에 혼자 편안히 앉아 갈테니까. 들어가 빨리, 미나야 안으로 들어가래도!˝
보이나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꼭대기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싫어, 나도 아빠 따라 갈테야. 으앙, 으앙, 나도 따라가. 올려 줘. 흐윽 으앙 싫어, 아빠 같이 가!˝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악스러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손을 허우적거리며 아버지를 따라 기어오를려고 안달이었습니다.
˝여보, 우리도 당신과 같이 타겠어요. 같이 타고 가요.˝
보이나아저씨의 부인은 큰딸을 번쩍 안아 올려, 객차 지붕에 올라탄 보이나아저씨 앞으로 밀어 보냈습니다.
˝안돼, 춥고 위험해. 안으로 들어가래도!˝
보이나아저씨가 소리쳤지만 보이나아저씨의 둘째딸도 시꺼먼 객차 지붕으로 밀어 올려졌습니다.
이내 부인도 따라 올라갔습니다. 보이나아저씨 식구 네 명이 서로 껴안은 듯 객차 지붕에 앉았습니다. 그제야 보이나아저씨의 두 딸은 울음을 그쳤습니다.
˝꽤액, 꽤액, 꽤액.˝
기차가 성난 짐승 소리 같은 쇳소리를 토해 올렸습니다. 이내 덜컹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사철나무 뒤에서 튕기듯 몸을 드러냈습니다. 기차의 속력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저씨-- 보이나아저씨!˝
아이는 기차 옆을 따라 뛰면서 손을 흔들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보이나아저씨가 아이를 내려다봤습니다. 두 딸도 부인도 아이를 내려
다봤습니다. 그들은 한 팔로는 서로를 꼬옥 부둥켜 안고 다른 한 손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잘 있어. 공부 잘해. 잘 있어!˝
보이나아저씨가 소리쳤습니다. 레일을 갉아먹는 듯한 쇳소리 속에서도
그 소리는 똑똑히 들렸습니다.
˝아저씨 잘가요!˝
아이는 자꾸만 뒤쳐지면서 마구 소리쳤습니다. 기차는 굉장히 빨라졌
습니다. 악을 쓰며 따라 뛰던 아이는 플랫폼이 끝나는 곳에서 뜀박질을
멈췄습니다. 보이나아저씨 식구들을 실은 기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씨
근덜컹 잘도 달려갔습니다. 아이는 계속 손을 흔들었습니다. 보이나아저
씨와 두 딸도 한들한들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보이나
아저씨 식구가 서로 꼬옥 부둥켜 안듯 객차 지붕에 앉아 손을 흔들던
모습이 어느 틈에 모퉁이를 돌아 아이의 눈에서 사라졌습니다. 이내 기
차 꽁무니도 긴 기적 소리만 남기고 모퉁이를 돌아가 버렸습니다.
˝보이나아저씨--!˝
아이는 비명처럼 냅다 한번 길게 고함을 지르고는 힘없이 팔을 아래로 내려뜨렸습니다.
˝이제 보이지 않아. 영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기차는 사라진 산 모퉁이를 멍청히 바라보며 아이는 중얼거렸습니다.
진짜로 아이의 눈망울은 점점 흐릿해져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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