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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한 안경(김자연)
이상한 안경

지은이(김자연)
김제 출생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제 10회 방정환 문학상 수상


동네 빈 터를 지나가던 복이가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으휴, 아파!˝
무릎이 제법 욱신거렸습니다. 앞이 흐릿하여 발을 잘못 내디딘 것입니다. 하마터면 투명테이프로 붙인 안경마저 산산이 깨질 뻔했습니다. 안경이 깨지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경진이 녀석때문이야!´
생각할수록 복이는 경진이가 미웠습니다.
어제 일입니다. 복이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경진이를 보지 못하고 그 앞으로 지나갔습니다.
˝야, 넌 눈을 뒤꼭지에 걸고 다니냐?˝
경진이가 시비를 걸었습니다.
˝미안해. 급히 가느라고 그만.˝
˝짜식이 겁도 없이.˝
경진이는 다짜고짜 복이의 정강이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복이는 어처구니 없게도 그 자리에서 벌렁 넘어졌습니다. 그바람에 복이 안경이 땅에 떨어져 깨졌습니다.
˝아, 내 안경!˝
복이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경진이 때문에 안경이 깨진 것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 한판 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론 내 앞으로 지나가지 마. 알았어?˝
경진이는 도리어 눈을 부릅뜨고 복이를 노려보았습니다.
남보다 힘이 조금 세다는 이유로 경진이는 또래 친구들을 괴롭히며 왕 노릇을 했습니다. 걸핏하면 친구들에게 가방을 들고 가라고 하고 물건을 빼앗아 갔습니다. 심지어 제 앞으로 먼저 지나가는 아이도 가만 놔두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괴롭힘을 당한 아이가 부모님께 그 사실을 알리면 경진이에게 몇 배로 앙갚음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경진이에게 번번이 당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았습니다. 복이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아무래도 조금 쉬었다 가야겠는걸.˝
복이는 욱신거리는 무릎을 한 손으로 잡으며 구석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돌 틈 사이로 노란 민들레가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아직 건물이 많이 들어서지 않아 동네는 조용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곳은 도시의 변두리 낮은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도시 개발지역이 되면서 산이 깎이고 새 건물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직 군데군데 나무와 풀이 무성하지만, 이곳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어 주었습니다. 일요일이면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곳에 나와 마음껏 뛰어놀곤 했습니다.
˝얘들아, 그만 집으로 들어가거라. 늦게까지 있으면 도깨비가 잡아간다. 어서!˝
동네터줏대감 격인 수남이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종종 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수남이 할머니의 말을 믿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있어? 내가 도깨비다. 이히히 낄낄!˝
˝야, 나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도깨비다. 하하하!˝
물론 복이도 그런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도깨비가 있다면 경진이 녀석이나 잡아갔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지금 세상에 도깨비 어디있담!˝
복이는 홧김에 불쑥 던진 제 말이 싱거운지 혼자 씩 웃었습니다. 그러곤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입니다. 맞은 편에서 무언가가 반짝 빛나는 게 있었습니다.
˝엉? 저게 뭐지?˝
갑자기 복이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시멘트 벽돌위에서 분명 무언가가 반짝였습니다. 눈을 한번 감았다가 다시 크게 떴습니다. 틀림없이 무언가가 반짝였습니다. 복이는 숨을 죽이고 고양이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어, 이건 안경이잖아. 근데 멀쩡한 안경이 왜 이곳에 있는거지?˝
복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검은테 안경을 이리저리 훑어보았습니다. 안경은 햇빛에 유리가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자세히 보니 검은 테 옆에 하얀 무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복이는 하얀 무늬를 손으로 쓱쓱 문질러 보았습니다. 하얀 무늬는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볼수록 참 이상한 안경이네!˝
복이는 안경을 들고 주위를 휘휘 둘러보앗습니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안경은 복이에게 꼭 맞았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히지만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주인이 나타나 ´야, 내 안경 내놔.´ 할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잘못하다간 도둑으로 오해 받을지도 몰랐습니다. 복이는 얼른 안경을 제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집으로 가면서도 복이는 안경이 놓인 자리를 흘끔거렸습니다.
밤이 되자 복이가 놓고 간 안경이 조금씩 움찔거렸습니다. 이어 하얀 무늬가 점점 커지더니 털이 몽실한 도깨비로 변했습니다.
˝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내가 시험삼아 요술을 부려 본 건데!˝
몽실도깨비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 할아버지 몰래 요술을 부려본게 잘못되어 안경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평소 몽실도깨비의 꿈은 인간이 되어 아이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 도깨비는 몽실도깨비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옛날엔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쉽게 모습을 바꿀 수 있었지. 하지만 탁한 공기를 마시면서부터 우리의 힘은 약해졌어. 그걸 명심해야 돼. 나무로 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돌멩이가 된다거나, 개가 되려다 옥수수가 된 도깨비가 늘어났지. 도깨비들은 하나 둘 죽어 갔어. 더구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기는 하늘에서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어. 전설에 의하면 우리 도깨비 중 더러 인간이 되어 인간과 더불어 살다 간 도깨비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해. 우리가 옛날처럼 마음대로 변하려면 맑은 공기를 찾아야 해. 맑은 공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너도 그때까지 죽은 듯이 기다려야 해.˝
몽실도깨비는 할아버지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맑은 공기를 되찾을 때까지 땅 속 깊이 누워 있기는 싫어. 그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누가 알아.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마찬가지야.˝
몽실도깨비는 사람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변할 수 없다는 게 슬펐습니다.
˝경진이라는 애는 누굴까? 누군데 나보고 잡아가라는 거지?˝
문득 몽실도깨비는 조금 전에 복이가 말한 경진이가 누군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난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구나. 그럴 바엔 차라리 안경으로 며칠을 살다가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야겠어.˝
복이는 마치 몽실도깨비와 약속이 되어 있는 것처럼 빈 터로 달려갔습니다. 행여 그 사이 누가 안경을 가져갔을지 궁금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안경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야호! 복이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습니다. 복이는 그 안경이 몽실도깨비가 변한 모습이란 걸 알 수 없었습니다.
복이는 금이 간 제 안경을 벗고 새 안경을 썼습니다. 앞이 훨씬 잘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또 안경을 깨뜨렸다고 엄마에게 말하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잘 됐지 뭐야.´
복이는 뜻하지 않게 새 안경이 생기자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안경을 쓴 순간 복이는 기분이 약간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지만 용기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참, 이상도 하다!˝
복이는 새 안경이 생기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복이는 새 안경을 쓰고 학교에 갔습니다.
운동장 한모퉁이에 아이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상해서 가까이 가 보니 경진이가 반 친구 이내를 또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나쁜 자식.˝
복이는 저도 모르게 숨을 크게 몰아쉬었습니다. 복이를 보자 경진이가 대뜸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복이는 전처럼 경진이가 무섭지 않았습니다.
˝여, 한 복이, 너 이내와 친하지?˝
복이는 그런 경진을 보고 눈에 힘을 주었습니다.
˝어쭈, 이 자식이 지금 누굴 째려보는거야? 네가 노려보면 어쩔건데?˝
경진이가 예전처럼 복이 머리를 툭툭 쥐어박았습니다.
˝내가 이내와 친하냐고 물었는데 뭐가 잘못 되었냐? 어쭈 어느 새 다시 새 안경을 끼었네. 미안하지만 그 안경은 형님이 써야겠다.˝
˝이 안경은 너에게 줄 수 없어.˝
˝그래, 그럼 강제로라도 빼앗을 수밖에.˝
안경으로 변한 몽실도깨비도 경진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허, 세상에 저런 비겁한 애가 있다니. 이 애가 바로 경진이라는 녀석이로군!˝
안경으로 변한 몽실도깨비는 경진이의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안경의 하얀 무늬가 반짝 빛났습니다. 밤이라면 얼른 도깨비로 변해서 실컷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복이는 코밑으로 내려온 안경을 얼른 추슬러 올렸습니다.
경진이가 복이 정강이를 툭 걷어찼습니다. 복이는 비스듬히 넘어지면서 숨이 탁 막혔습니다. 그동안 번번이 당했던 일을 생각하니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맞서보지도 않고 피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야. 용기를 내. 그러니까 매번 경진이가 너를 만만히 보는거야.´
어디선가 잔잔한 울림이 복이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복이는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약간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이내와 나를 괴롭히지 마.˝
˝뭐야?˝
경진이가 눈에 힘을 주고 돌아섰습니다.
˝나와 이내를 괴롭히지 말라고.˝
복이가 다시한번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복이 자신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누구 앞에서 함부로 지껄이고 있어.˝
그러나 복이도 이번만큼은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내를 놓아 줘.˝
경진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복이를 노려보았습니다. 아이들도 깜짝 놀라 복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뭐야? 이 녀석이 갑자기 간덩이가 부었나. 못 놓아준다. 어쩔래?˝
경진이는 복이를 주먹으로 한 방 날릴 기세였습니다. 아이들이 복이를 말렸습니다.
˝ 난 너처럼 싸우고 싶지 않아. 그러니 이내를 놓아 줘. 괜히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옳지 않아.˝
˝뭐? 어쭈, 다시 한 번 말해 봐. 뭐가 어떻다고?˝
˝넌, 비겁해. 남보다 힘이 세다고 맨날 친구들을 괴롭혔어. 이내를 못 놓아 준다면 난 너에 게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하겠어.˝
˝결투? 너 말 다 했니?˝
경진이가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복아, 너 경진이에게 사과해.˝
아이들이 달려들어 복이를 말렸습니다. 그럴수록 복이는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 자, 어서 덤벼봐. 겁쟁이처럼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어서 덤벼 보라 는데도.˝
경진이가 자신있다는 듯 소리쳤습니다. 그러곤 번개같이 복이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복이가 앞으로 넘어졌습니다. 일어나려는 복이를 경진이가 다시 달려들어 넘어뜨리려 했습니다. 복이는 얼른 허리를 굽혀 경진이를 가볍게 피했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경진이 옆구리를 걷어찼습니다. 경진이가 비틀거리다가 똑바로 섰습니다. 경진이가 다시 공격하려 했을 때 복이가 정면으로 달려들어 옆구리를 한 방 날렸습니다. 그러고는 경진이를 손으로 깍지끼어 눌러 앉혔습니다. 몽실도깨비가 자기 힘을 안경테를 통해 복이에게 옮겨 주었습니다. 힘을 너무 빼면 사람들이 사는 곳에 다시 나타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안경테의 하얀 무늬가 점점 약해졌습니다.
˝와!˝
모여있던 아이들의 눈이 대번에 커졌습니다.
경진이는 복이 손에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바둥거렸습니다.
˝겨우 요 정도 힘으로 그동안 친구들을 괴롭혔냐? 진짜 힘 있는 사람은 너처럼 비겁하게 힘을 사용하지 않아.˝
경진이는 복이 발 밑에서 쩔쩔 맸습니다.
˝이제보니 복이는 힘이 있어도 그 동안 우리에게 숨긴 거야!˝
˝어쩜 복이는 태권도가 3단이 될지도 몰라.˝
경진이에게 당했던 아이들이 수군댔습니다.
˝너, 이제 다시는 나와 이내를 괴롭히지 않을 거지?˝
˝알았어. 약속해.˝
˝다른친구들도 괴롭히지 않을 거지?˝
˝알았어.˝
경진이가 아이들 앞에서 다집을 했습니다. 그러나 복이가 손을 풀자마자 경진이가 뒤에서 공격했습니다.
˝비겁한 자식.˝
복이가 재빨리 경진이를 다시 꿇어 눕혔습니다. 정말 순간적으로 한 일이라 복이도 자기가 한 일 같지 않았습니다.
˝잘못했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경진이가 절절 맸습니다. 복이가 경진이를 풀어주었습니다.
˝쥐도 어려움에 처하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랬어. 우리가 겁을 먹으니까 그 동안 우릴 얕잡 아보고 괴롭힌 거야.˝
˝맞아, 나도 이젠 당하지만 않겠어.˝
복이와 이내가 손을 꼭 잡았습니다.
깨어진 안경조각이 땅바닥에 널려 있었습니다.
˝좋은 안경이었는데…….˝
복이는 깨어진 안경들을 조심스럽게 주워 모았습니다.
´이젠 인간 세상으로 올 수 없을지도 몰라.´
깨진 안경 속에서 몽실도깨비 혼이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복이와 아이들은 세상의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안경으로 변했다가 말없이 사라진 몽실도깨비를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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